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생이 최고라는데
우리는 영어 성경에서 말하는 요3:3을
평생 born again-중생. 거듭남-으로만 읽고
있었다
오늘 곽건용 목사의 설교문을 읽고
헬라어 성경을 찾아 봤더니 born from above(γεννηθη
ανωθεν)이었다
평생 예수 믿었다
그게 예수 믿음이라 생각했다
내가 예수 믿었는데 그게 예수 믿음이지 내
믿음인가?
그래서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은 내 믿음이 아닌 예수 믿음이란 말이었다
그럼 나는 뭔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의 주체가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나”를 위해서 악전고투하면서
나를 위해(危害)한다 싶으면
죽어라 하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게 참 신앙인 줄 알고 살았던 것이다
지극히 작은 부분인 교리에
목을 매고 그것 지키지 않으면
지계표나 헐고 교단을 허무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었다
내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의 압권이 이사야 53장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나는 조용히 이사야 53장을 읊으면서 운다
그의 고난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앞선다
그의 고난이 내 죄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다
일반적인으로 우리들은 내 죄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내
죄를 위해서만 그가 죽으실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아도 그는 돌아가셨을 것이고
우리 교회 교인들 없어도 그는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런데 내 죄가 아닌 이 우주의 권위를 위해서 그가 돌아가셨다는
내 생각에서 나는 울고 있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이 깨달음일까?
깨달음이라면 득도하는 것 하고 뭐가 다를까?
득도가 믿음이라면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은
천국이해 못할 거다.
저녁에 깨달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데
날 밤새고 새로운 날이 와도 득도는커녕 요 모양 요 꼴로 살아가는
내가
무슨 재주로 득도를 할건가?
그런데도 조용한 시간 이사야 53장을 읊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왜
눈물이 나는지 이유조차 모른채 나는 울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성경에는 내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예수께서도 성(性)을 이야기 하셨는데
성적으로 거시기 하는 사람보다 그 거시기에 문제가 있으면
내시가 되는 한이 있어도
하늘가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 하신다
그 중 대표자가 바로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환관장 즉 내시장의 부하였다
환관장은 내시만
다스리는 사람이지 내시이외의 관원은 자기 권한 밖인 사람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내시였다
그의 자식 이름도 없고 그의 가계 이야기도
없다
필요 없어서 적지 않았을 것이라 하는 분들 있는데 그 보다 못한 사람 이야기
성경에 부지기수로 많다
행
8:30,31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그를 위해
오늘도 자기 믿음을 세운 많은 이들이
빌딩이 숲을
이룬 뉴욕의 거리에서부터 아프리카 오지까지
개똥밭에서 뒹굴어도 살아 있다는 것이 좋은 이 세상에서
한 목숨 바치기를 훈장처럼 즐기면서
살아간다
기독교 공동체는 아름다운 우정을 꽃 피우는 곳이다
그런데 그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시들 우려가 생긴다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는데 나도 남 탓 하고 있다
내 행사는 안 보이고 남의 티만 보인다
이건 내 믿음이 별로라는 말이다
나도
나를 죽이지 못했는데 남들보고 죽으라고 하니 안 되는 일이다
인생의 소매 끝이 다 낡아 간다
내시면 어떤가?
개똥밭이면
어떤가?
짧은 인생 그저 왔다가 가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시도 아니고 개똥밭도 아닌 멋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솔로몬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이를 악물고
런던에서도 떠들고 있다
나도 등달아 떠들고 있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 알면서 말이다
천국이
저 만치서 손짓을 한다
모두 버리고 준비하라고.....
2012.08.07 19:48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생이 최고라는데
조회 수 1768 추천 수 0 댓글 3
- ?
-
?
이은상님의 시 고향 생각 2절입니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씻는 물결이요
배뜬곳 바라보니 흰구름만 뭉개뭉개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여기서 끝 구절 "때 묻은 소매를 보니"를 생각하며 적은 글입니다
-
?
글을 앍다보니 인생은 공空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살아있으나 죽은것 같고 이승이나 저승이나 있는거나 없는거나 난 때때로 죽음을 기대합니다. 때론 멋지게 죽고 싶기도 하구요. 죽을 기회를 옅보기도하지요. 그렇다고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운 건 아니랍니다. 오늘 길을겉다가 절벽에 매달려 죽을똥 살똥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생각 나더군요. 손을 놓으면 떨어져 죽고 매달려 있으니 힘들어 죽을 것 같고 하나님은 뭐라고 하실까?? 그냥 손을 놓아라 라고 하지 않을까??
글을 읽으며 “끝자락에서 돌아보는 여정”이란 단상이 생각납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생이 최고”
아니지요. 우리의 세상을 전혀 모르는 말씀입니다.
일생을 순항해도 삶과 세계의 본질을 달관하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한 인간이 삶의 주기를 다해가며 그 말미에 섰을지라도 전혀 낯선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존방식에 익숙해졌을지 모르지만 세계에 무지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과 세계가 낯설게 보일 때에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되지요. 잔여의 숨이 소진되고 다음 의식이 있을 때에야 세상을 넘어다보며 한 인간의 궤적을 어느 정도 바르게 보게 될 것입니다. 피조물의 지체로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위대한 현장을 스쳐왔다는 것을!
선택 없이 태어난 세상에서 진정한 생의 선택을 놓치게 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