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과 식생활에 관한 증언
나 이 책 무지무지하게 많이 읽었다
증언 가운데 유일하게 약 10번쯤 읽은 책이다
고기 먹는
내가 왜 그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내가 전에 그 이유를 말한 적 있다
그 가운데 과학적으로 틀린 것 없는가
그것
찾으려고 읽었다
그리고 결론 내렸는데
그 책은 과학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요
그리 먹지 않으면 하늘 못 간다 하는 것도
아니요
그 먹는 것으로 성도들을 판단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것 먹으면 안 돼
하면서
자기는 30년이 넘게 먹고
그러다가 어느 동물 보호단체의 아주머니에게 한 대 맞고서
난 다시는 안 먹을 거야 했던
책이었다
중용
그렇다
기독교는 중용의 종교였다
이것 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하는 종교가 아니라
또 그랬구나
어쩌지? 잘못을 아니? 그럼 없던 것으로 해 줄게 하는
그런 종교였다
십자가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다
잊어주고 씻어주고 버리도록
권유해 주는 종교였다
내가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잊어 줄게 하시는 종교였다
그런데 그 끝은 붙잡고 있어라 하는 종교였다
그를
안다고만 해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종교였다
우리 중 어느 누구가 그런 것 아니야 하고 아무리 방방 뛰어도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 개인의
구주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가?
기독교가 사람을 잡고 죽이고 체포하고
자잘한 것 먹고 마시고 하는 것으로 사람
판단하고
두들기고
교리 만들어 놓고 그것 거어 놓은 선 넘나들면 죽일 너므로 만드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예수 그분
자신은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 후예라고 자칭하는 무리들이 새로운 금을 긋고
그 금을 넘나들지 못하게 막는다
그것을 무슨
개혁자연 하면서 거들먹거린다.
무엇 안 먹는 것을
마누라는 먹어도 참아주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훈장처럼
여긴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대부분 하지 않는다
그것 통해서 자기 약점을 잡히기 싫어서이다
자기를 숨기는데 이력이
났는데
우리 중의 어떤 이들-나를 포함해서-은 자랑으로 여긴다
교리를 수호하는 것도 자랑으로 둔갑한다
꼭 십자군들 보는 것
같다
이건 나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화잇은 먹고 마시는 것에 많은 토를 달았다
꼭 유대인의 유전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설교하는 목사들이 설교한 만큼 생활하지 못하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말이다
목사가
설교한대로 산다면 그게 어디 목사냐 성인 반열에 올라가든지
아니면 하늘로의 직행열차를 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루는 황희
정승이 문하생들과 도덕을 논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그 마누라가 이랬데
“저 양반 밤에는 저렇게 안하면서....어쩌고
저쩌고”
근엄하게 논하는 도덕과 잠자리 문화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창조함을 받은 그 날 밤 그 두 부부는 뭣했을 것
같은가?
신혼이니 거시기 안 했겠는가?
마찬가지로 목사나 교인이나를 막론하고
말한 대로 살지 못하고 교리대로 살지
못하고
가르친 대로 살지 못한다
그게 인간의 한계점이다
그런데 가르친 대로 살라고만 악을 쓴다
이 교단에 교리가 없어서
이러는가?
우리가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신천지나 안상홍 파를 보라
그들 나름대로의 진리가 판을 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만의 리그에 젖어서 그 좋은 진리(?)조차 포장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뭘 먹을까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 하는
근심이라 했거든
우리는 지금도 이방인의 근심 속에서 날밤을 새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자기 확신만 거세어서
그 확신이 어디로
가서 없어지는 신기루 같은 것인지조차 모르면서
북극의 오로라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음식물과 식생활에 관한 글을 그토록 많이
읽고서도
아직 고기를 먹는 이유를 아는가?
하늘가는 백성들 밥상에 고기가 웬 말이냐 하고 일갈하던
그 여인도 먹고 있었다는데서
착안한 것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먹는 것으로 하늘가는 것 아니구나
그래서 바울의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란 말이
진실이구나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내 속에 건설된 하늘나라가 내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만 건설되지 않고
오히려 먹고 마시는 것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진실이라는데 내 방점이 찍혀졌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절 하나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분 나에게 와서 하시고자 하는 것이
바로 나로 더불어 먹고 마시자는 것이다
나와 함께 먹고
마시자는 말이다
그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자는 말을
우리는 다른 뜻으로만 해석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
모르는가?
외형적인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난 안 먹지만 너희들 먹는 것은 용인해 준다
그러나 어느 시점 되면 꼭 끊어야
해
하늘가는 백성들 밥상에는 고기 없어야 해
그런 사고방식의 종교가 나는 싫은 것이다
기독교의 순수가 그렇게 훼손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구원이 먹고 마시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난 항상 이렇게 비꼰다
“스님이 제일 먼저 구원
얻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