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장를 이해하게 된 기가 막힌 장소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헬라인 디도라도 강제로 할례를 집행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전도를 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는데요
특히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로인하여 게바 즉 베드로를 강하게 책망하는 이야기를 갈라디아에 있는 신자들에게 교훈하면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야 구원 얻는다는 그런 분위기를 일소시킬 필요를 가르쳐주는 이야기인데요.
여기서 특별히 베드로라는 예수의 수제자를 강하게 책망한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즉 그때의 상황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서술해보겠다
안디옥에는 세 가지의 신자 부류가 있었습니다.
1,정통 유대인으로 예수의 신자가 된 부류.
2, 이방인중 예수의 신자로 할례를 받은 부류.
3, 이방인으로 할례와 전혀 상관없는 예수의 신자 된 부류
안디옥 교인들과 늘 함께 식사를 하는데
대부분이 무 할례 신자들이다 보니
할례 자들의 겉모습은 이방인이지만 구약의 율법을 유대인처럼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특히 식사에서의 모습은 레위기 11장에 부정한 음식과 정한 음식의 차이를 정확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의 대부분의 이방인 신자들은 무 할례자들이었습니다.
무 할례자와 할례자가 얼굴에 표시 나는 것도 아닌데 왜? 베드로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신자들을 두려워하여 식사하다말고 피했을까요?
그 음식에 보이지 말아야할 어떤 음식이 끼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레위기 11장에 분명하게 금하여진 부정한 음식이 다수 들어있었다는 것이죠.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이 얼굴에 무 할례자라고 쓰여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안식교도들의 식사형태를 보면
1, 완전 채식을 행하는 신자들
2, 정한 고기는 금하지 않고 드시는 신자들
3, 어떤 음식이나 금하지 않고 드시는 신자들.
그런데 제가 경험한 자리는 이 3가지가 공존한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요.
3번의 신자들은 처음부터 그런 부분에 대하여 전혀 인식자체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함께 식사하는 목사나 장로가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은 것입니다.
마침 베드로가 야고보가 보낸 정통유대인 신자들이 찾아오자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아 함께 식사에 동석을 요구했더라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올 일도 없었겠지만
식사에 손님이 동석할 수 없는 음식이 다수 놓여있으니 안 먹은 척 입을 닦아버렸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또 다른 몇몇 신자들과 바나바까지 함께 동참했습니다.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2: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2: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안식교회의 건강기별은 레위기 11장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리 잡은 레위기 11장이 신자의 생활을 제약합니다.
화잇부인도 육식이 아니면 식사를 못하셨고 한참동안 석화(굴)을 잡수셨고 어느 날 동물 애호 활동을 하는 여성 신자에게 크게 질책을 당하시고는 육식을 끊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새로운 기계문명으로 환경오염이 갑자기 급증하였습니다.
육식이 증가하고 육식의 수요를 위한 대량사육이 이루어 지다보니 위생에 치명적인 해가 자주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지배계층에서만 이루어지던 탐욕적 식생활이 일반 대중에게 값싸게 공급되다보니 육식으로 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질병이 만연하였습니다.
그래서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양식 있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채식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게 안식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안식교회의 건강기별은 채식이지 레위기 11장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그날 식사자리는 뷔페식이었는데요
목사님들과 장로들은 순 채식으로 잡수시고
레위기 11장을 기반으로 소고기와 채소를 잡수시는 잡식파와
꼴뚜기 조개 꽃게와 소고기 채소를 겸한 화려한? 식사를 겸한 자리였습니다.
아무도 이 자리가 불편하지 않은 분위기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