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이 설교 예배에 접어들자, 화두가 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였던가 하는 질문으로 몇 주 전 설교 서두로 삼았던 걸로 희미하게 기억한다.
천국을 부정하는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 Stephen William Hawking(1942년생)도 있어서 유신론자를 무시하기도 하니, 신앙인의 조롱을 받는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하는 학자의 양심이 신앙인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하는 꼴이 되었다. 결국, 과학의 잣대로 정신세계를 재단하려는 자세는 인간의 이상을 초토화하는 무익한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을 인정하는 처지라고 해서 천국은 물리적 실체로 볼 게 아니라 정신적 존재로 인식하더라도 천국에 입성하는 작업이 그리 순탄치 않으리라. 즉 예수의 가르침을 잘 따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렷다. 문제는 예수를 따르는 일이 간간이 시험들다 보면 자신을 잃을지니, 이를 두려워한다.
갈대가 바람결에 맡기면서 자족하고 사후에라도 천국행을 탐하지 않으면 이를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게 세상살이에 보다 쉬우리라. 그러고 보면, 천국행은 인간의 또 다른 욕심이 아닐까. 사실 세상살이를 이처럼 하기에 이토록 아주 평범한 인생을 영위하는가 보다. 하여간 강박과 초조를 모르고 여태껏 평안하게 살아왔다.
누구나 축재를 통하여 언젠가 보람을 찾으려고 아등바등하느니 차라리 축재를 포기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이치처럼 천국을 체념하면, 사물을 관조하는 느긋함을 음미하리라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 이는 미련한 착각일까? 그래서 그런지 천국을 찾아 헤매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혀를 찬다. 왜 욕심이 그토록 극성인가 싶기에 그렇다. 뒤틀린 생각인가?
물론 천국이 좋다고는 생각하나 자신이 없기에 체념으로 만족한다는 의미다. 천국은 위선, 허욕, 만용, 불의, 음모, 왜곡, 불손과 연줄이 닿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이를 싫어하는 체질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천국행 기회가 딱 막힌 건 아닐진대 발버둥치고 싶지 않다는 심사다. 그러므로 천국 유무를 가릴 필요도 없이 자기 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천국이 아니더라도 후회 없는 인생을 누리리라.
이렇게 천국(天國)을 몰라 어리석으니( 癡), 다른 게 아닌 천치(天癡)다. 그래서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오다가 새삼 천국을 생각하니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신사복을 입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매력을 모르는 이치와 같다고 할까. 하기는 운명이 임박하여서도 목사님에게 침례를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면, 대부분 침례를 원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낱 희망의 연줄을 매어보고자 하기에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인가?
좀 다른 결에서 말씀드립니다. ‘천국론’이란 제목은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논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명쾌한 인식 없이 어찌 논을 펴실 수 있겠습니까? 외람되지만 제목은 ‘천국푸념’이 적절할 듯합니다.
천국을 갈망하는 것은 또 다른 욕심이 아니라 마음을 돌이킨 자들의 돌아갈 본향입니다. 살다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지요. 천국을 정신세계로 가둘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가신 곳을 뚜렷하게 가리켜야 합니다. 시대는 벼랑 끝으로 내달리는 자들과 천국문턱으로 가고 있는 자들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천국도 있고 예수께서도 계십니다. 아이처럼 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