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보수 꼴통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청장년층이 노년층을 겨냥하여 얕잡는 말투로 사용하는 단어다. 이 경멸적 말은 특히 정치 논평에 자주 등장한다. 노년층이 청장년층의 비위를 거스른다고 해서 그들 입에서 자동 발사되는 구어다. 그러나 청장년도 머지않아 자기들 입에서 튀어나온 보수 꼴통의 대상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가관인 건 마땅히 보수 꼴통이란 경멸 대상인 어떤 늙은이가 같은 또래에게 보수 꼴통이라고 놀리는 꼬락서니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처신이다. 그러니까 자신은 늙은이지만 보통 늙은이와는 차별화된 늙은이라며 손을 높이 들어 보이는 꼴이다.
청장년은 자기 부모에게도 보수 꼴통이라고 놀려댈 건가? 늙은 부모는 경륜이 더해지면서 나름대로 자기에게 맞는 의식이나 생활 자세가 잡힌 것이기에 하나도 불편이 없다. 그런 걸 옆에서 자녀인 청장년이 뭐라고 그 부모에게 잔소리하면, 그 자녀가 철딱서니 없다고 핀잔을 줄 것이다. 부모 세대가 바라보는 정치나 사회를 자녀 세대가 수구 꼴통이라고 비아냥한다면 철딱서니 없다고 바라보게 마련이다. 그러니 청장년의 행동이 노년층의 노련미에 적신호다. 그런데도 청장년층은 노년층이 사회 개혁이나 발전의 장애물로 치부한다.
아침마다 산책할 때 도로변 시멘트 보도가 조성된 지 60년 가까운 걸 볼 때마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보도가 앞으로도 얼마나 오래 제 몫을 할지 모르나, 멀쩡한 보도를 한국처럼 쉽게 파헤쳐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 꼴통을 잠꼬대처럼 외치는 청장년층이라면, 멀쩡한 보도를 깔아뭉개고 다시 조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 게 청장년층에게 혁신이나 발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나 제도에 불편이 없는데도 자꾸 바꿔야 혁신이고 진보인가? 새로 바뀐 틀에 적응할만하면 자꾸 바꿔라! 그게 진보고 혁신이 아닌가?
그뿐 아니다. 소위 청장년층의 경멸 대상인 보수 꼴통이 이룬 바탕에서 청장년층은 숨을 쉬고 있다. 부모가 온갖 고생으로 키워 놓으니 제힘으로 성장한 것으로 헤뜩거리는 뒷 모습을 보는 부모의 감회가 얼마나 서글플까 생각한 적이 있는가? 철따구니 없는 덜 익은 처신은 부모 가슴에 못 박는 꼴이다. 청장년층이 철들 때면, 이미 자신의 머리가 희끗희끗하렷다.
보수 꼴통이란 비난 이전에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헛소리 하지 말기를 빈다. 누가 보수 꼴통인가? 너희도 머지않아 보수 꼴통이다. 그래서 중국은 대권 후계자를 정할 때 수십 년을 살펴봐 가면서 후계자를 정한다. 발전 속도가 다소 느릴 수도 있으나 단단한 기초에서 그들은 정치 발전을 꾀한다는 점은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들이 누구인가. 대국이다, 대국.
김재흠이란 분이 누구신지 궁금합니다. 혹 폐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실 분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