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나야 하고, 실제로 정체성의 정치 그 이상의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철학인데, 왜 여성만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와 니라 유발데이비스(Nira Yuval-Davis)가 제안한 횡단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유일-보편주의(uni/versalism)와 상대주의(relativism)(혹은 다중 보편주의poly/versalism)의 이분법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 멤버십에 기반을 두면서도(rooting)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으며, 타자를 동질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황으로 이동(shifting)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대화가 횡단의 정치다.
대화의 시작에서 동일성을 가정하고 일반화하는 보편주의나("우리는 같다") 대화의 끝에서 지나치게 특수성을 강조하여 배제로 끝나는 상대주의("우리는 다르다")가 아니라, 보편화하지 않는 특수를 지향한다.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정체성의 정치가 문제적인 것은, 사회적 범주와 사회적 그룹들을 동질화, 자연화하여, 겅계의 이동과 내부의 권력 차이와 이해 갈등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횡단의 정치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과 그 개인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구별하며, 대화의 과정을 정치적 목표로 삼는다. 초월적 보편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보편을 지향하며, 기원이나 본질이 아니라 자신을 '오염'에 개방하며서 '오염'된 자신을 드러내면서, 움직이는 현실을 타고 넘나드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성별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자들과의 소통, 그리고 다른 사회적 모순과 성차별의 관계에 주목한다. 때문에 여성주의는 그 어느 정치학보다도 다른 사회적 차별에 매우 민감하며, 다양한 피억압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연대와 제휴의 정치이다. 여성이라는 범주, 여성 억압은 젠더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 사회적 불평등은 계급, 민족 등 어느 한 가지 사회적 요인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하다. 계급이든, 민족이든, 젠더 모순이든 모두 다른 사회 문제와 관련성 속에서 작동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에서
"페미니즘은 정체성의 정치 그 이상의 세계관", "인류 보편의 철학", "초월적 보편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보편"....
인상적인 단어들이 참 많네요.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아서 올려 봅니다.
우리의 '다름'이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차이'였으면 하고 꿈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