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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3 17:24

사돈 남 말하는 목사

조회 수 1083 추천 수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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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2013.08.03 08:05

박진하 조회 수:187

 

쉽게 하기 어려운 말을 하려고 합니다.

예언의 신을 사랑하고 선지자를 신뢰하는 남은 백성들이

그 기별들이 제시하는 변화되는 삶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별을 주신 바른 목적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재림 교인들이 좀 더 예언의 신을 많이 읽고

그 기별대로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나는 신학교 2학년 시절부터 예언의 신과 시골 생활에 심취했고

그래서 내가 학생 전도사로 일하던 교회에서 그 기별을 가르쳤고

그 결과 여섯 가정을 시골로 보내 드렸고(땅 매입부터 모두...도와드리며)

방학때면 어김없이 강원도 시골 궁벽한 곳들에서

시골 생활하는 분들의 거처를 돌아 다니며

금식도 하고 전도회도 해 드리고 농사도 도우며 지냈습니다.

 

신학을 졸업하면서도 논문도

'시골생활에 대한 한 연구'로 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교단에서 목회를 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이 중 하나도

교육 전도사 시절,

바로 시골생활을 가르치며 교인들을 시골로 이사하게 했던

그 교회의 담임 목사와와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수년동안 합회에서 요청한 마지막 관문인

그 목사님에게서의 용서를 결국 받지 못해서

저는 평생 갈망했던 한국 교단에서의 목회가 좌절되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예언의 신을 많이 읽고

오직 예언의 신만을 외치는 사람치고

성격과 품성이 제대로 된 사람

별로 못 만나 봤습니다.

(저도 그러한 한 사람으로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스테리입니다.

 

이것은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얻은 저의 결론입니다.

그래도 다른 성도들보다 더 말씀으로 산다고

자부하며 시골 깊은 곳에 들어가 사는 분들을 비롯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보고 겪어본 저의 결론입니다.

 

큰 빛인 성경을 위한 작은 빛에 너무 골몰하고

그 방대한 예언의 빛 중 "일부분"에 치우친

극단주의자들은,

선지자의 기별을 정죄의 수단,

타인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겨우 몇가지를 순종하여 사는 삶을

모델 혹은 기준으로 하여

자신과같지 않은 이들을 향해 칼날을 갑니다.

언제나 영적 우월감(남들은 잘 하지 못하는 시골 생활,

채식, 하루 두끼 먹는 이식, 새벽 기도, 금식 등 등에 대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목사고 누구고 자신들이 따르고 있고 실천하는 빛에

거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세속화된 사람들로 단정하고

목사가 설교할 때도 예언의 신만 읽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에 가보니 생애의 빛(견고한 토대)에 빠진 분들이

대개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나는 10여명의 그곳 사람들을

아파트에 모아 놓고 하루 종일 잘못된 율법주의적 신앙에 대해

지적하며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설명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가 권면한 채식을 하지 않는 목사는 타락한 목사요

세속적 목회자로 정죄하고 자신과 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은 모두 믿음이 없는 이들로 몰아 부칩니다.

 

이들의 극단적 사고와 신앙의 긍극은

누구라도 자신들에게 어떤 충언이나 권면을 하면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성벽이 드러나며

냉혹하고 보복적인 성격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내가 잘 아는 한 목회자(이설 등으로 교단에서 파면된)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언의 신 추종자요 도시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언제나 안식일 후면 저 시골 궁벽한 곳으로 몇 몇 교인들과

함께 들어가 시골생활하던 분이었는데,

이 분 성격으로 말하자면 정말 ...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외롭게 목회하는 동생을 위해 그 늙은 누이 집사님이

모든 돈을 헌금하고 교회에 오면 늘 그 추운 겨울에도

난방도 제대로 안되는 교회에서 잠을 자곤했는데

한 번은 그 목사의 형님이 누이만 있는 교회에 찾아와

과거 그 형님이 희사했던 앰프와 마이크 등을 무단으로 가지고

가는 일이 있었는데 누이가 그것을 보면서 지키지 못했다며

그 아무 죄도 없는 누이에게 상상할 수 없는 폭언과 분노를 표출하고

그 누이가 덮고 자는 모든 이불 등을 가져다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 때 황당해 하면서도 동생 목사에게 아무 말 한마디도 못하시던

도시에 사시던 그 연로하신 여집사님의 품성이 

시골 생활하며 철저한 채식 주의자였던

그 목사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의 기별에 누구보다 철저히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채식이나 시골 생활, 뉴스타트의 진정한 핵심인

'사랑'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율법주의적이고 바리새적인 신앙의 극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궁벽한 시골에 거하며 하루 이식하며

밭에 가서도 제일 먼저 하늘을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하며

신실하고도 경건하게 살기를 그토록 소망하던

몇 몇 가정들이 모여 살던 한 시골 골짜기에서

아이들까지 다 해도 겨우 20여명 남짓한 자그마한 시골 교회에

수석 장로 자리 때문에 마주 보는 집에 살면서도

원수 중에 대 원수가 되어 보는 사람마다 상대를 비난하고

서로 말도 안하고 살던 장로님들을 비롯하여.....

그 후 그 중 한 분은 암에 걸려 돌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영육의 건강을 위해 평생 채식하고 하루 이식하던

그의 삶이 결국 암으로 죽는 열매를 맺고 말았습니다.

 

아들 교육을 나에게 맡기는 관계로 알게 된 한 집사님은

시골 생활도 '궁벽한 곳'에서 선지자가 하라고 했다며

시골도 아주 첩첩산골... 그것도 집을 올라 가려면

한 사람이 겨우 등산하다시피 나무와 숲속을 헤치고

올라가야 하는 곳에 거하면서 걸핏하면 아내를 두들겨 패고

자신의 권면대로 살지 않는 자녀들을 개패듯 때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 결과 그 자녀의 성벽이 참으로 극악하게 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성년이 된 아들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언제나 자신이 누워있는 위로 물건 등이 날라다니며(싸우면서

짚어 던지는 바람에) 아버지가 엄마를 두들겨 팬 것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안식일에 아랫 동네에 있는 교회에 가서 점심 시간에

자신이 먹지 않는 흰쌀로 된 가래떡을 교회에서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집에 오자마자 아들을 두들겨 죽듯이 때리고

그러한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고 아내에게 몹쓸 폭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분의 예언의 신은 거의 전권이 전 페이지가

모든 단어들마다 동그라미 표기가 몇번씩 총천역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단상에 설때면 예언의 신을 거의 몇권씩

들고 올라가고 모든 가정 예배부터 모든 설교가

다 예언의 신을 그대로 낭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이분이 어떤 의사들도 그 병명조차 알 수 없는

휘귀병에 걸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조차

모자란 청년에 성격이 포악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직접 가까이에서 목격했고

그 아들을 몇 년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뻐져리게

예언의 신을 잘 못 읽고 잘 못 이해하고 잘 못 적용할 때의

그 심각한 부작용과 그로 인한

아주 비정상적인 신앙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청정지역에서 평생 채식하며 사신 그분의 장모님 역시

눈 밖으로 암 덩어리가 축구공만큼 삐져 나온 모습으로

내가 드려드리는 예배도 거절하고 예수님을 거부한채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선지자의 기별에 순종하려고 몇 몇 가족들이 모여사는

한 시골 궁벽한 마을에 전도회 관계로 일주일여 머물던 시절입니다.

그 골짜기 재림 성도 가족들은 얼마나 신실한지

자녀들을 모두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홈스쿨하며

예언의 신 등으로 교육 시키며 하루 2식을 하는 등

참으로 신실한 재림 성도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 뒤 늦게 합류한 한 장로님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먼저 들어와 터를 잡고 사시던 한 장로님이

늦게 들어 온 다른 장로님에게 자신의 소유 땅을 팔았는데

늦게 들어 온 장로님이 그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주변 땅 시세 등을 알아 보니

시세보다 땅을 더 비싸게 팔았다고 생각하여

이미 지불된 땅 값의 일부를 돌려 달라고 떼를 쓰다가 거절당하니

밤 12시쯤에 식칼을 들고 땅을 판 장로님 댁 안방에 들어가

잠자던 장로님 부부와 가족들이 기겁하여 일어났고

그 식칼을 든 장로님이 그 후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습니다.

 

심장이 멎을만큼 너무도 놀란 그 순박한 장로님 가족들은

울며 불며 찬미가를 부르고(그 장로가 죽은 줄 알고) 야단이 났습니다.

내가 그 때 당시 그 현장에서 머지 않은 또 다른 장로님댁에서 을 자다가

나를 황급히 깨우는 한 청년의 전갈을 듣고 일어나 뛰어 올라가 보니

당시 신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어린 내가 봐도

그 장로님은 죽은 척 쑈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겁을 주어 땅 값을 돌려 받고자하는 계산에서였지요.

 

순박하기 그지 없었던 그 골짜기 재림 가족들은 그 한 밤중에

모두 모여 미친척, 죽은척하는 그 장로님 앞에서

얼굴들이 백지장이 되어 열심히 찬미를 부르며

그 장로님의 부활(?)을 염원하며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상황을 눈치챈 내가 모든 분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 드리고

그 미친척하는 장로님 집에서 그 자녀들과 함께 잠을 자며

그날 그 집을 지켜 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결국, 심장이 멎을 만큼 놀란 순진한 장로님이

그 미친척 한 장로님에게 땅 값 일부를 돌려 드리므로

그 촌극은 막을 내렸지요...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는 볼성 사나운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얼마전 어느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장로님...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금도 변화되지 못하시고

수십년만에 만난 나를 길거리에서 세워 두고

내 앞에서 자기 자랑, 자식 자랑, 돈 자랑,

불려 놓은 사업, 재산 자랑만 실컫 늘어 놓는 것을 보고

참.... 사람의 성품이 변해야 하늘 간다는 말씀

새록 새록 마음에 새겼더랬습니다.

-------------------------------------------

 

물론 우리 주변에 선지자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순종하면서

균형지고 아름다운 품성을 건설해 나가는 훌륭한 분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훌륭한 장로님이나 성도들을 만나 보기도 했습니다만,

예언의 신을 사랑하고 더욱 철저히 믿는다고 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일반 성도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무섭고 냉혹스럽고

보복적이고 형제 자매를 용서치 않고 증오하고 미워하며 살아가는

참으로 이해난망인 그런 경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믿겠다고

선지자의 기별에 더욱 잘 순종하겠노라고

홀연히 모든 것을 버리고 궁벽한 시골로 떠나 농사를 지으며

채식을 하고 어떤 경우는 하루 2식을 하면서

자녀들 학교 보내지 않고 홈스쿨하며 사는 분들 중...

여려 경우들이 왜 그렇게 극단적이고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품성이 괴퍅해지고

공격적이고 냉혹스러워지고 용서성 없어지고 황폐해지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안스러운 경우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경우들을 경험하면서 왜 저들이 그 예언의 신에서

우리에게 언제나 수 없이 강조하고 반복하여 말씀하는

품성 변화에 실패하고 오히려 가까운 형제 자매들과 반목하고

서로 비난하고 서로 높아지려하고 틈만 나면 타인을 헐 뜯고

절대로 타인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을 허용치 않고

교만하고 거만스러운가를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의(義)'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시골 생활, 채식, 2식, 자녀들 일반 학교 안 보내기 등을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선지자의 기별에 기쁨을 순응한 결과가 아닌,

자신이 남보다 더 좋은 믿음과 행함으로 자신 스스로 이루었다고 하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만들어 낸 '자기 의'가 충만한 결과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삶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을 볼 때 자신들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생각하며

동정하고 오히려 더욱 불쌍히 여겨 그들을 이해하고 기도하며 사랑하기보다는

'왜 저렇게 밖에 못 사는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라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죄 의식이 가득차고 언제나 자신과 같지 못한 성도들을

예언의 신으로 지적하고 경고하는 일을 마치 사명처럼 생각하고

사랑의 기별을 채찍과 정죄의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마지막 선지자인

화잇 여사의 영감된 예언의 신의 말씀들을 사랑하고

순종하면서 그 기별들이 긍극적으로 추구하는

주님 닮은 아름다운 품성을 건설하는 하늘에 가까운 이들을

앞으로 많이 만난 보길 소원하고 소망해 봅니다.

 
  • ?
    사돈남말하네 2013.08.03 17:26

    카스다에서 보니 자신의 의견에 맞지 않으면 난리도 아니더구먼..이렇게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퍼나름. 

  • ?
    네이버뉴스 2013.08.03 17:55

     박진하 목사님보다 더 목회 잘하는 목사가 재림교회에 있던가요?

     

     

  • ?
    사돈남말하네 2013.08.03 18:17

    박진하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 ?
    지경야인 2013.08.03 18:22

    사람이 악해지고 사나워 지는데에는 경제적 원인이 가장 큽니다

    처음 부터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시골생활 기별을듣고 

    도시의 편하고 윤택한 생활을 찾아가지 않고 여전히 시골의 불편하고 가난한 생활을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의 성품은 극단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안정된 생활에서 갑자기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 사나워지고 모나지고 공격적이 됩니다.

    저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시골에서 시골생활이 좋다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외 따로 독립가구로 살면서 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녀 교육을 홈 스쿨로 할 자신이 없고 부모님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시골 마을로 나와 생활하엿습니다.

    세월이 또 흘러서 경제적으로 다시 어려워져서 도시로 나왔습니다.

    시골에서의 경제적 어려움과 도시의 경제적 어려움은 또 다르더군요.

    작은일에도 화를 내고 사나워 지더군요.

    이젠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되니 쉽게 내던 화가 다시 느긋합니다.

    신앙이 좋아도 경제가 한 순간 무너지면 집안이 쉽게 파탄 납니다.






  • ?
    카톡 2013.08.03 18:56
    네이버뉴스

     "박진하 목사님보다 더 목회 잘하는 목사가 재림교회에 있던가요?"


    박진하 목사 목회하나요?

    요양원 원장이라면서요?

    이젠 필리핀 목사라고 하겠지요?

    몇 달에 한 번식 가는 목회지가 목사하는 짓인가요?

    재림교회 식으로 인사이동 시켜 볼까요?


    재림교회에 그런 목사보다 목회 잘하는 목사 많아요

    우리 교회 목사도 그보다는 나아요

     

  • ?
    네이버뉴스 2013.08.03 19:32

     박진하 목사 요양원도 하고 명광교회라고 목회도 합니다.

     

     박진하 목사보다 목회 잘한다는 현직 재림교회 목사 실명하고 소속교회 좀 까보세요.

     

     

  • ?
    카톡 2013.08.03 23:29

    저질

    명광교회 초교파 목사하면서

    왜재림교회 목사라고 나불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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