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명복을 빕니다
유세차 모년모월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자 글로서 침자에게 고하노니...
고등학교때 배운 조침문의
일부입니다
그 당시에는 다 외었는데 60여년을 지나니 이것 밖에 안 외어지네요
아시다시피 조침문은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지은 수필로
국한문 혼용체지만
국문수필로 분류된다고 배웠습니다
문벌 좋은 집으로 시집갔는데 일찍 그 남편이 죽자 바느질로 세월
보내면서
시삼촌이 사다 준 바늘이 부러지자 한숨 쉬면서 적은 글이라는 것입니다
바늘 하나에 인간사 다 묻고 살았는데
그게
부러지니 사람이 죽으면 읽는 제문을 빗대서 조침문을 적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남편 죽고 돈 있어서 땡 잡았다 했겠지만
그 당시는 그런
생각 할 여유도 없었고 열녀문이나 세워질까 하는 기대 속에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요즘 부쩍 친구들 죽었다는 소문 들리고 인터넷
부고란에 이름깨나 보이는데
그러면 어떤 목사도, 장로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적습니다
그러면 그런 문구 영혼불명설이라고
야단치는 목사 장로 정해놨는데
아무리 못하게 말려도 종종 올라옵니다 왜 그럴까요?
영혼불멸설을 믿는 문구라고 아무리 말려도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7:2)
요즘은 부조울음 우는 사람도 없고 부의금 내고 나면 모두 웃고 떠들고 놉니다
그래서 초상집도 산자의 웃음이
넘쳐나는 곳이요 죽은 자만 말이 없는데
명복이란 단어 하나가지고 성경적이니 아니니 하고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불교의 나라입니다
200여년 전에 들어 온 기독교가 그 자리를 채웠지만 서민들의 머릿속에는
뒤뜰에 차려놓은 정안수에 기복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명복을 빌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명복은 글자 그대로 불교용어로 “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이지요
그래도
산자들은 돈이 아까워서 한지로 만든 엽전을 불사르기도 했는데
저승에 가는데도 노자가 필요한지는 몰라도 저승가는 노자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승은 이승의 돈이 필요 없고 가짜 종이돈도 통하나 봅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빌면 복을 받고 저주를 하면 욕을 당하던
시절 이야기
그래서 그 아들 이삭도 야곱에게 복을 다 빌어 주니
큰 아들인 에서에게는 빌어줄 복이 하나 뿐이었다는 구절이 맘에
걸립니다
창 27:38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런데 저승이 어딜까요?
극락이 저승일까요?
저승과 지옥은 분명
다른데 좋은 곳으로 가는 길에서 복을 받으라는 것은
우리의 언어로 말하자면 천국에서 만나자 또는 천국의 복 받으라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닐까요?
저들의 저승이 우리의 천국일진데 그 시간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단어를 반대한다면
말에 어폐가 있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데 그것이 억겁의 세월 뒤의 일이면 뭐하며
또는 저승에서 복을 받으라는 말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요?
동양적 사고방식의 언어도 교리를 앞세워서 저지해야할 정도의 잘못일까요?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 말도
정직한 언어로 말하자면 틀린 말입니다
며칠 후는 글자 그대로 며칠 후라야 하는데 백골이 진토 된 후
그것도 모자라서
억겁의 세월이 지난 후를 며칠 후라 표현하고 있다면
우리 언어의 잘못은 절대로 수정 안 될 것입니다
저들이 며칠
후라고 하면 잘못이라고 교리적 관점으로 말하고
우리가 며칠 후 라고 하면 천년이 하루 같은 것 잊지 말라고 들이민다면
기독교인들의 그
아귀 같은 특성이라고 나무라도 할 말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두 사람이 죽어 하나는 천국으로 하나는
지옥으로 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슨 이유를 붙이건 간에 둘 다 죽은 후에 바로 천국 지옥으로 갈렸습니다
만약 유대인들의 사상에 죽은
후 바로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지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께서 거짓말 한다고 난리 났을 것 같지 않은가요?
난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입니다
비유라지만 비유가 될 수 없는 한계점을 가진 것 표현은 아닙니까?
죽은 나사로를 위해 명복을 빈다면 틀린
표현일까요? 바로 천국에 갔는데요?
눅 16:22, 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그리고 부자는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합니다
명복을 빈다는 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라고 나도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번씩 해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지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