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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 치의 방과 한 달 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 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낭독 : 안현미


  • ?
    김원일 2013.09.07 22:12

    감사!

  • ?
    바다 2013.09.08 13:52

    눈물이 납니다

    꼭 같은 내용은 아닐찌라도 예전의 내 모습이 겹쳐집니다

    해마다 서울의 달동네를 전전하면서

    나는 달라 나는 다르다 를 가슴에 새기며 살았더랬습니다

    높고 화려한 빌딩속 나의 작은 모습이

    극복하기 힘든 경제라 할지라도

    나는 광화문 책방을 내방처럼 다니며

    지적 사치로 위안했고

    투쟁같은 안식일준수로 하나님이 내곁에 계신다고

    스스로를 북돋웠더랬습니다

     

    그 시절 내가 감사와 자존감이 없었더라면.....

     

    살다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바 없다 할지라도

    돌이켜 보면 암울했던 그 때를 지켜주신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
    박희관 2013.09.08 15:37

    "그 시절 내가 감사와 자존감이 없었더라면...".

    .

    나도 그런때가 있어 이 말씀에 깊게 공감 합니다.^^

     

  • ?
    김주영 2013.09.09 02:54

    감사,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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