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옷(1)-형들을 찾아

by 열두지파 posted Oct 28, 2013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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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걸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곤비한 여정이었지만 마음은 사뭇 가뿐하였다. 새벽밥을 먹고 떠나온 길이 벌써 점심나절이 되어 오고 있었다. 이 길은 나에겐 익숙한 길이었다. 하란을 떠나올 때 우리 권속들이 거쳐온 노정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숲에는 상큼한 내음이 발산되고 공중에는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걸음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리듬감은 청아한 새들의 노래와 그대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한참을 또 걸었다. 배도 고프고 발도 많이 아팠다. 나는  개울  건너에서 쉬어가기로 하였다. 개울 너머에는 자갈밭이 깔려있었다. 내리쬐는 가을햇살을 받으며 자갈 위에 누웠다. 하늘은 더 없이 푸르렀고 구름은 뭉게뭉게 어디론가 계속하여 흘러가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들은 병풍처럼 나를 에워싸고 있었고 군데군데 민둥한 암반들도 보였다.

 

개울 저 아래에는 민가를 배경으로 한 떼의 양들이 모여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양들 옆에는 그들의 목자가 하늘을 향해 누워있었다. 안전하게 쉬어 갈 수 있는 최적지였다. 양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하늘을 향해 누었다. 푸른 하늘과 구름은 포근한 이불이 되어 나를 살포시 덮어주고 있었다. 어제 밤 아버지의 당부를 다시 되새겼다.

 

“요셉! 형들이 집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버렸구나. 이번 세겜 길은 어쩐지 불길한 마음이 드는구나. 형들을 만나면 그곳에 너무 오래있지 말고 빨리 돌아오도록 일러주어라.” 세겜 사람들이 디나의 일로 너희 형제들을 어찌 대할지 걱정이 크구나.“

 

형들을 찾아 나서는 나를 위해 작은어머니가 새벽부터 아침을 준비하시고 주먹밥과 호밀빵을 챙겨주었다. 내일까지의 식량은 넉넉하지 못해 길가의 과일과 산의 과실로 요기를 채우고 저녁에 싸 가지고 온 것으로 끼니를 채울 작정이었다. 빌하 작은 엄마는 나와 베냐민을 늘 챙겨주시고 친근히 대하셨다. 우리는 빌하를 작은 엄마라고 불렀다. 작은 어머니는 원래 우리 엄마의 몸종이었다.

 

아버지는 큰엄마 레아에게서 형들을 넷이나 얻었지만 우리 엄마는 한동안 출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고심 끝에 빌하를 아버지께 드리고 단형과 납달리형을 얻어내었다. 빌하어머니는 우리 엄마 라헬에게 늘 다소곳하였고 엄마는 단과 납달리형을 친 아들로 대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오랜 기다림 끝에 내가 태어나자 빌하 엄마는 누구보다 기뻐하였고 단과 납달리형도 나를 많이 사랑해주었다. 빌하 엄마가 나와 베냐민을 사랑하신 이유는 엄마의 죽음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어머니 라헬은 아버지의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할아버지 집에서의 오랜 더부살이를 정리하고 아버지의 고향을 향하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아우 베냐민을 배에 담고 아버지의 고향을 향하고 있었다. 고대하던 산기가 왔지만 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난산 끝에 결국 베냐민을 유복자로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 나이 97세 내가 6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너무도 슬퍼하였다. 그 모습이 무섭기도 하고 비장해 보였다. 아버지는 통곡하셨다. 통곡은 운율을 띠며 절규로 변하였다.

 

“라헬! 왜 그냥 가오! 그 뭉친 한을 가지고 왜 그냥 가는 것이오.

내가 그대를 어떻게 얻은 줄을 그대는 왜 모르는 것이오.

나는 열 여인을 원치 않았소. 그대는 나의 온 세상이었소.

아이를 달라고 내게 그렇게 투정하더니 이제 이 두 놈을 내게 남겨주고

이렇게 떠나는 것이오.

 

내 고향 가나안을 그렇게 가고파 하고

내아비의 얼굴을 그렇게 보고파 하더니

이렇게 객사하여 길에 묻히는 것이오.

검게 변한 내 마음의 색을 따라 그대의 비석을

검은 돌로 준비하였오. 라헬“

 

엄마가 돌아가시자 빌하 엄마는 베냐민을 챙겨주었고  수유는 하란의 유모가 전담하였다. 빌하엄마는 내게도 늘 지극한 마음이었다. 그녀도 오랜 시간을 슬픔으로 보내었다. 엄마에 대한 그녀의 애절한 슬픔은 우리에 대한 애정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단과 납달리 형도 빌하 엄마를 따라 나와 베냐민을 애틋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그때 엄마의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몰랐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엄마의 죽음과 사람의 죽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이 처한 특별한 구조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형들을 찾아 나서는 길에 나의 마음은 엄마에 대한 회상으로 절절이 복받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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