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by 헐크 posted Nov 19, 2013 Likes 0 Replie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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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숱한 기독교 중에서

우리는 운명적으로 재림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부모님으로 부터

가족으로 부터

재림교회 학교를 통하여 여러 경로를 통하여

우리는 지금 재림 성도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70 년 60 년 50 년 40 년 30 년 20 년 10 년 5 년

기간이 다를뿐 우리는 모두 한 소망으로 살아왔고 살아 갈 것이다.

 

젖먹이 때 익힌 재림교회의 이모저모

유년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평생을 이 교회를 보아왔다.

재림교회의 정통성과 마지막 남은 교회라는 금 딱지를 말이다.

찬란히 빛나는 그 금 딱지를 말이다

 

민초는 진보도 아니다

민초는 보수도 아니다

이곳은 두 개념의 어느 편에도 편중하지 않는다.

진보 보수 둘 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다름을 인정하고 비방하지 않는다

이곳은 다름과 같음을 일직선상에서 사고하는 곳이다.

 

민초의 흘러간 세월동안 -------------------

우리는 많은 것들로 인하여 고민하고 고뇌의 세월을 보냈다

 

학교 교실에서 배웠던 많은 교리적 이론들

장성한 후에 다시 살펴보니 실체가 아닌 것들이 많고도 많았다

 

하나 하나 지적하여 말하면 어느 한 순간에 이 교단의 역적이 되어버린다.

 

이 교단은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다른 이론들은 결코 용납하지를 않는다

 

이 교단의 지침이라는 팔레시와 교리는 메데파사 법이다

이미 만고불변의 진리가 되어 버렸다

 

이곳에서 아무리 외쳐 보았자 허공에 지르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다.

 

한 예로 최근에 벌어진 한 사례가 증명한다

여자 합회장을 반대하는 대총회장의 말씀이 그러하다.

그 분의 말씀 한 마디가 곧 법이요 팔레시다

 

옆 동네 ( 카스다 ) 는 진보와 보수 갈등으로 흥미롭다

보수가 뭔지도 모르고 진보가 뭔지도 모르는 모습 같다

깊은 동정심과 측은지심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재림 교회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재림 전 까지 그럴 희망과 기대는 난망이다.

 

동성애 문제가 그렇다

너무나 편향적인 시각으로 고정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교리적 이해 문제도 그렇다

성소문제 2300 주야 문제 조사심판 문제 등등

이 시대 안으로 해결하고 털고 가야 하는데 말이다

 

성질이 급하신 분은 발만 동동 구르다가 ------- 힘 다 빠진다.

 

교리는 생명줄이 아니다

교리가 우리의 구원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교리 믿고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지극히 당연한 논리 조차도 비 논리로 치부된다

 

요즈음 교과에 등장하는 성소문제

교회마다 아우성이다.

고요한 교회보다 시끄러운 교회가 훨씬더 희망적이다

 

하늘 성소와 지상 성소 ( 실제냐 모형이냐 )

하늘 지성소 - 예수님은 언제 지성소가 들어 가셨나 ?

 

이것 하나도 우리는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말하는 명확한 답은 지극히 성서적이라는 말이다

이 기초가 예언의 신이 아닌 성서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찾지 못하면 예언의 신에서 찾으면 된다는 사고에 동의하지 못한다

성서에 없으면 없는 것이다.

성서에 없으면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아야 한다.

 

화잇의 글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이 화잇의 글을 해석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주객이 전도된듯한 느낌을 많이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인간의 제한적이고 죄악적인 사고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지각으로 고착화 시킨다

하나님이 인간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인도한다

 

하나님을 성소로 지성소로 인도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시기를 정하여 제한한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절대자를 우리는 시공으로 제한한다

인도자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사심판에서 재림전 심판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같은 내용이라고 말한다

정말 같은 내용일까 ?

만든 사람의 이해력일까 ?

읽는 사람의 이해력일까 ?

 

예수의 증거가 예언의 신이라고 한다

화잇의 글들을 우리는 예언의 신이라고 부른다

예수의 증거가 화잇의 글로 바뀐 것이다

예수의 증거를 제한용법으로 한정한 것이다

화잇의 글만이 예언의 신의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다

 

예수의 증거에 대하여 다른 이야기를 말하면

교회를 허는 작은 여우로 여긴다

교회의 근간을 허무는 이적죄에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북미주에는 소통되고 논하여지고 이미 담론으로 되어진 것들이

한국 땅에서는 금기시 되어있는 현실이다

 

논리적 허구는 이미 진리의 옷을 입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진리는 반드시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 논리적 근거가 반드시 성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논제이다.

 

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서

전부 다 진리에 속하며

성서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논리적 탐구의 결과인가 ?

 

옥수수 밭에서 바라 본 지성소의 환상이

성서에 기초한 논리적 바탕인가 ?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의문이 사라지고

고뇌가 사라진 집단은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한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우리는 변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천주교회가 2 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많은 부분에서 거듭났다

그래서 2 차 공의회 전 후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재림 교회도 바티칸 2 차 공의회가 필요하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털고 갈 것은 용기있게 털고 가야한다

이것이 진정한 진리를 가진 자의 하늘 용기가 아닐까 ?

 

그래서 우리는 고뇌한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면

하나 하나 털어보고자 한다

때로는 먼지 투성이가 될 것이다

때로는 쨩 돌이 난무할 것이다.

 

나는 재림교회를 사랑한다

이 교회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엄마따라 이 교회 문을 밟은 사람으로 나는 이 교회를 자랑한다

그러므로 이 교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리는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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