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도 그와 같이 선조들의 관습과 전통을 굳게 지키는 자들이 많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광명한 빛을 비춰주실 때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선조들의 처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그들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 탐구해 보지 않고 오로지 그 선조들의 모본에 의하여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수가 없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선조들의 것보다 한층 더 중하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빛에 대하여도 책임이 있지만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더욱 밝은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제 8장 의회앞에 선 루터.
각시대의 대쟁투 164.(원문)
아멘, 좋은 글입니다.
그러나
읽으면서 떠오르는 질문은
그 ‘오늘날’이 엘렌 화잇 당시에만 해당될까? 아니면 지금도 해당될까?
그 ‘선조’에 엘렌 화잇 자신도 후세에는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을까?
아니면 엘렌 화잇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을까?
‘더욱 밝은 빛‘을 지금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엘렌 화잇의 빛 보다 더욱 밝은 빛은 이젠 더 이상 없다는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질문이 드는 것은
아직도 우리 교단에서는 엘렌 화잇은 위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고 예외라 생각하고
엘렌 화잇 보다 더 큰 빛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치며 노골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은가?
그래서 결국에는 엘렌 화잇의 무오설(말로는 아니라 하지만)이 되고
그를 교주화, 우상화 시킨 이들이
교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지?
이런 사고가 과연 정상인지?
이들은 왜 이런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런 형태가 결국 이단 비난을 자초하고
전도의 문을 닫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조차 어떤 이들에게는 ‘불경죄‘가 될 것이다!
나 혼자만의 오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혼자해 보는 중얼거림입니다.^^
“오늘날도 그와 같이 선조들의 관습과 전통을 굳게 지키는 자들이 많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광명한 빛을 비춰주실 때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선조들의 처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그들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 탐구해 보지 않고
오로지 그 선조들의 모본에 의하여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수가 없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선조들의 것보다 한층 더 중하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빛에 대하여도 책임이 있지만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더욱 밝은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