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판과 지성소의 알현
현대진리의 원수들은 예수께서 닫으신 성소의 문을 열려고하며
그가 1844년 열어 놓으신 <지성소의 문을 닫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 문은 아무라도 닫을 수 없음을 나는 보았다(초기 41,42)
*결국 지성소의 삶은
성소에서 동시에 조화롭게 배양된 세 능력이 자아소멸의 은혜를 지나 순복을 증거로
그분의 형상이 그의 백성에게 나나타는 편린들이며
이것은 영적 하나됨의 연합으로 이어져 서로의 부족이 봉합되고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선악을 대조적으로 보는 양 극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귀화 하는 성장을 거듭하는 지성소의 부분적 인치심의 생애를 나타낸다.
재림교인 이라도 성소에 머무는 피상적 교인은 조사심판의 대상이 아니며
피를 힘입고 지성소로 나아가 경험을 통한 능력의 증거를 만나는 안식을 통하여
그의 만나를 먹고 싹이난 지팡이를 들고 그분을 자랑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역동적 기도운동에 동행하는 어린양을 따라 하나님과 화목관계를 이루는 동행을 나타낸다.
그러나 게으름과 이기심의 동기로 기회로 주신 순복의 은혜(새 마음의 창조)를 거절하는
성령을 훼방하는 교회들은 일원론의 헵시바를 잃어버리고
여전히 성소의 능력을 명목과 이론으로 우상을 만드는 기회주의자가 되고
말씀과 생활이 별개인 이원론의 자식이 되는 슬픔을
그리스도가 닫은 <성소를 열려고 한다>는 표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성화의 자라남을 경험하지 못하기에
배울수록 악해지는 사단의 품성을 두려움이 열인 휘장이 보이지 않는
성소에만 머무르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개신교회의 뜰에 머물고 마는 는 칭의주의나
재림교회의 성소에 머무는 이원주의는 같은 미련한 처녀에 속할 뿐이다.
이들은 다른이의 흠을 찾아 자신의 완고함을 감추기 위한 변명을 일삼고
보지못하는 영적 소경이며
성소 안에서 휘장가운데 열린 새롭고 산길을 가로막고 현대진리를 가로막는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는 소제된 귀신의 처소로 버려진다는 것이다.
나는 사단이 자기 대리자들을 통하여 여러가지로 일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진리를 거역한 성직자들을 통하여 일했는데 멸망을 가져올 만큼
무서운 기만에 빠져 있었다(초기43)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진리로 깨우침을 받지 않은 자들은
시내산의 모든 번개와 천둥으로도 감화 받지 못할 것이며
천사들이 기별을 전한다 할지라도 깨우치지 못할 것이다(초기50)
우리는 삶이 세상사람과 달라야 하며
세상과의 교제를 끊고(선교와 상관 없는)
자신을 기쁘게하는 이기심에서 돌아서고
세상에서 죽어가는 자와 가난한자(빛이 없어)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초기46)
나는 현대진리의 부족으로 죽어가는자들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맡기신 자금>을 제공하지 않음으로
<자신 스스로가 멸망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부자 법관처럼)
근심하여 돌아서자 곧 재앙이 내려 자신과 그 모든 소유를 쓸어버렸다(초기48)
재림전 심판이라는 신학용어는
개인의 현실적 신앙세계와 다소 느슨한 느낌을 주는 피상적인 듯 들리나
사실적 국면의 중요성은
1) 역사적 사관과
2) 개인적 적용의 두 국면이 상존하며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내 삶의 선택적 동기의 순결정을 통하여
지성소의 중보에 의한
<내 삶의 변화>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나를 옹호하시고 도우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임재와
인간을 구원하시는 선교현장의 필요에 의한 증거적 이끄심을 자각하는 <동행>을 통하여
인간의 인격 성소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새겨 주시는
인치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남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며
그 적용의 시제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지금>을 가르키고 있으며
<지금의 상태>가 시간이 지나면서 섭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믿음(과거)의 발판을 제공하고
반복된 경건의 훈련은 인치심으로 안식하게 되어 소망(미래)을 갖게 하는 하늘을 향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의 사랑(현재)을 나타내는
율법의 완성자가 되게하시는 은혜의 천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아소멸의 금식으로의 전진과
이끄심을 따르는 늦은 비의 역사로 전진하는
하늘의 뜻이
이 땅의 성소들에게서 이루시는
셋째천사의 기별과 맥을 같이하는
열처녀의 비유에서 이루는 그리스도와의 혼인관계를(대하112) 나타냅니다
그런즉 믿음 사랑 소망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더 크니라)(고전 13:13)
조사심판은 삶의 향방이 자아가 부인된 안식일인 지성소를 향하는 기원이며
이것은 <지금>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지성소의 알현을 나타내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분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에게 여러분을 온전히 빌려드리십시요
그러면 우리는 기뻐하게 되며
그분을 높이기 위해 엎드러지게 되고
안식 속에 나타나는 그분의 놀라우신 증거를 보면서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안식일의 참 예배를 만나게 되겠지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믿어주시고
나를 밀어주시며
나를 쓰신다는 밀실(헵시바)의 행복을
안식일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지성소의 주님의 사역입니다
지성소는 하늘에서 중보하시지만
그분이 하시는 일이 내 관심의 첫째가 되어
내 인격의 성소에서 나나타는 감격의 예배인 셈입니다
이런 경험으로 들어가는 것을 안식일을 지킨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기에 이르는 말이 안식일인 셈이지요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빨리 이런 빛을 내 성소에서 이루시고
그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시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많이많이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게 나타나신 구주를!!
구주를 따라가며 나를 따르라고 교만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내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겸손은 조용히 뒤로 빼는 거짓교리가 아닙니다
내게서 큰일을 이루신 그분을 자랑하는 것이 선교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의 무덤으로 가지 마시고
현장의 갈리리에서 만나자 하셨으니
나의 갈리리
우리의 갈리리에서
못자국을 지니신 감격의 주님을 뵙게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