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지망생

by fallbaram posted Dec 12, 2013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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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지망생

질문
뎃생을 잘해야 수채화도 잘하나요?
친구가 미술하는데 뎃상을 잘하면 수채화 할때 도움이 많이 되고
확실히 수채화를 잘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맞는말이에요?
 


 
대답1
뎃생이 그림의 기반이죠..
 
대답2
맞는말입니다. 수채화를 그릴때에도 밑그림을 그리잖아요?
밑그림그릴때 뎃생의 기본이 필요합니다. 표현, 기본적인 명암표현부터
틀이 잡혀있어야만 수채화를 수월하게 들어갈수가 있습니다.
이제 표현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으로 감각이 따로 필요하긴하지만
뎃생실력이 있다면 수채화의 밑그림,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가 나온다고
볼수가 있습니다
 

어린시절 주변에 화가들이 많았던 환경에 살면서 그림을 한번도 배워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생각들이 있었다.

생각1
언젠가는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

생각2
나도 그정도는 그릴 수 있겠지, 아니 더 잘 할수도

서양화를 전공하는 화가들은 이 뎃생을 필수적인 초기 과정으로 사용했다.

1 정확한 형태 표현 (Morphology)
2. 질감 (Saturation-intensity)
3 명암 (Contrast-black and white)

뎃생을 잘하게 되면 그림의 삼대요소라고 할 수 있는 위의 세가지가 그림에 잘 표현이 될 수 있다

고학의 지긋지긋한 가난이 끝이나고 나는 1978년 어느날 소공동에 자리한 한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따뜻하고 배부른 시절이 시작 되었다.
두세달이 지난 후 나는 어린시절의 꿈을 안고 화방을 찾아가 뎃생에 필요한 도구들을 샀다.

그러나 더 잘할 수도 있으리라는 나의 착각이 착각으로 밝혀지기엔 딱 네시간이면 족했다.
네시간만에 화지에 나타난 아그립바 상은  차마 그이상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을 만큼  괴상한
얼굴이 되고 있었다.

화선지를 찢어버리고 화구들을 벽장에 쳐박아버리고 나는 머릿속에만 맴돌던 그 자신감이
어떤 자괴감같은 것으로 순식간에 변한다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두세달이 그렇게 지나는데 내 깊은 마음 속에는 그 괴물과 같이 변질된 아그립바 상이 비록 화지를
찢어 버렸어도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시시각가 나를 향해 비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는 어린시절의 그 꿈 때문에 그림을 그릴것이 아니라 내 속의 그 흉측한 귀신(?) 때문에.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차례가 왔다.

닷새를 휴가를 내고 하숙집 주인에게는 하루 두끼만 가지고 와서 방문앞에 놓고 가라고 한다음
빤쓰 하나만 걸치고 작업에 몰두했다. 다시한번 실패하면 내 속에 박혀있는 그 흉물을 빼지못하고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할 그 운명이 두려웠다.

이제는 자를 가지고 아그립바 상의 코와 입 귀와 눈의 거리를 재고  이마와 턱의 거리도 재면서
화선지에 정확하에 점을 찍어가기 시작 했다. 꼬박 다섯시간쯤 점을 찍어가는데 서서히 아그립바
석고상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거기에다가 조심조심 선으로 연결해 보니 그 근엄한
아그립바 상이 나하고 마치 대화를 하고싶다는 표정으로 나타난다. "환희" 라는것을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다.

나는 이것을 통해서 인생을 배웠다.
골프에 빠질 때도 나는 뎃상 (Swing 의 mechanism)을 기억했고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이 직업에도 뎃상 (morphology) 을 도입했고
내가 신학이라는 분에 넘치는 것을 추구할 때도
   가족을 이끌고 삼년이 넘게 (빤쓰 바람?)  이 뎃상의 과정을 거치는 터전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밤을 지새며 읽었던 동의보감이라는 소설의 한 장면이 떠 오른다.
명의 허 준의 선생 유 의태가 반위(지금의 위암)에 걸려서 그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게 되면서 제자 허 준에게 몇날 후 몇시에 어디어디로 오라는 편지 한장을 넘기고 경상도
밀양의 황천곡 (오래 되어서 이 동굴의 이름이 가물가물)으로 떠난다.

미리와서 제자를 기다리던 선생이 제자의 자태가 계곡아래에 나타나자 곧바로 동굴로 들어가서
동맥을 끊는다. 제자가 동굴로 들어와서 선생의 시신을 안고 오열할때도 시신을 해부 하기에
적당하도록 따뜻했다. 선생의 손에 자기를 해부하고 공부해서 천하의 명의가 되라는 편지가
들려 있었고 제자는 그 뜻을 깨달으며 다시한번 오열한다.

거기서 허 준은 삼일 삼야 (?)를 지새며 인간의 몸을 속속들이 파헤지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소설의 작가는 그 과정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지만 그런 선생의 희생과 헌신  제자의 명석한
이해와 심취가 어우러져 의술의 진리가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것 같다.

그때 마침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조심조심 내 마음속 화지에 찍어가고 있을 때의
일이라 배경이 불교인 그 작가가 어찌 성경적 (신약적) 시간과 숫자들을 쓰게 되었는지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적어도 내게는
아그립바 석고 상은 선지자와 율법과 역사를 통해서 만들어 간 성령의 작품이다.
그 성령의 작품 그대로 아그립바 (예수 그리스도)가 왔고 그 아그립바는 자기의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이다고 했다.
침례 요한은 구약의 모든 손가락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성령이 빚어낸 아그립바 상 (구약)이
곧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적시에 알린  인간 (구약의 인물 중에서)으로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광야의-모세가 살던)였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가슴 (삶)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에서 다른 눈들이 보지 못하는 성령의 역사를 보는 신약의
최고의 지성이고 선생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이다. 그 사랑에 대해서 요한처럼 표현한 성경의 다른 저자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모든 분들이 지금은 다시 우리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우리의 말세(?)에 다시 살아서 승천한 아그립바가 성육신 할 동안 하셨던 약속과 모든 말들과 비유 (비유가 아니고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시 그의 동역자 성령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그가 내 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그렇다. 그 성령의 가르침과 임재를 통해서
하늘로 가신 그 분과 우리는 늘 함께 있는것이다.

거듭남도 성령의 경험 이지만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것도 성령의 경험이다.

민초의 사람들아
돌을 던지기 전에 제발 빤쓰 바람에 삼일 삼야라도 좋으니 겨울밤 지새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음이 진정
무엇인지 눈으로 읽혀지는 구절들을 점찍어 보며
볶은 곡식의 그 홍 아무개 처럼 토해 보기도 하며
말세를 사는 바른 자세를 추구해 보자.

겨울이 닥아 오는데 이 아침엔
요한 다음으로 좋아하는 선생
사도 바울님 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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