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안에는
알을 많이 낳는 좋은 닭이 있고
알을 많이 낳지 못하는 나쁜 닭이 있다
목장에도 가보면
젖을 많이 내는 좋은소와
그렇지 않은 나쁜 소가 있다
물론 정육점을 생각한다면
살이 빨리찌는 좋은소와
살이 잘 안찌는 나쁜소도 있지
교회안에도
그 교회가 만든 교리안에서
좋은 교인이 있고
나쁜 교인도 있다
교회의 부억안에는
밥잘하는 좋은 교인과
밥하고는 담을 쌓은 나쁜 교인이
있기도 하고
영리의 전쟁터에는
그것에 필요한 좋은 사람과
그것에 적합하지 않는 나쁜 사람이 있다
이기적 이권에
기초한 이 세상의 일이다
민초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마음속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을까
율법의 살기등등한 울타리 속에는
나쁜 사람은 있을 수 없고 오직
의로운 사람만이 존재할 수 있다
갈바리의 십자가 속에는반대로
스스로 의로운 자들은 들어올 수가 없고 오직
죄인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구멍 (좁은 문)이 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우리 모두가 다
죄인들이라고 일러 주셨다
누구나 다 여기로 들어 오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와 율법이라는 새 과정책이 그
구멍을 막고 있다
아빕월 15 일이 그 구멍을 막고 있다
넷째 계명을 잘못 해석한 자들의 횡포가
이 구멍을 막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문이라는 이 십자가의 길을
막았다
성경은 나에게
“아직도 너는 지켜서 의롭게 된 자들을
마치 원숭이가 사람이 된것을 본일이 없는것 처럼 보지
못할꺼야!” 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십자가로 가기만 하면
그리고 거기에 머물기만 하면
무슨 수 (신의 능력과 신의 사랑)를 써서라도
너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수 있도록 해 줄께”
라고 약속하고 있다
그 약속이 너무 쉽고 의심스러워
어떤 무리들이 울법이라는 쓰레기 통을
다시 뒤지고
1900년 이상이나 골동품이된 모세의 넷째의문을
다시 끄집어 내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고린도 후서 3장 전체를 통해서
그것으로는 예수의 형상을 가리는
수건일 뿐이고
예수에게로 나 있는 좁은 구멍을 막는
구멍 마개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율법은 원래 예수에게로 가는
그 구멍을 파고 그 구멍을 지키라고 주었지만
율법의 기능을 잘못 이해한 자들이
그 구멍을 막고 있다
요사이의 민초에서 고군분투하는
김모씨가 말하는 개기 월식처럼
그 구멍을 막고
그 빛을 막고
율법이 십자가의 빛을 막고있는
그 개기 월식 (작은빛이 큰빛을 가리는 캄캄한 현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아빕월은 민초에 깔아 놓은
우리의 희망같은 구멍들을
꽉꽉 막고 있다
성경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그 성경을 잘못 해석한 자들의 잘못이
남아있을 뿐
그래도 예수 안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좋은 사람도 없고
다만 죄인들 만이 있을 뿐이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인인것을 깨닫게 된다.
율법의 요구를 깊이 알수록 우리는 처절한 죄인이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그 은혜가 모자라서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고
지킨다는 의미가 썩 좋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눈치를 채고는
궤도 수정을 하고있다.
"이제 다시 예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고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재 도전을 하게 된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고 거짓없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등장하는 그런 날이 나에게 올것인가.
그러나 분명하게도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그리스도의 은혜안에서도 우리의 육신은 늘 방황하고 있다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우리교회안에는 또 율법의 울타리 안에는
하나님보다 더 거룩하고 경건한 무리들 (가짜 하나님) 이
참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안에는
깨달은 죄인과 깨닫지 못한 죄인
그리고 굳이 한마디 더 하자면
잘못 깨달은 죄인들도 있다!!!
가라지 (잡초)를 뽑지 말라는 그분의 부탁이 없었더라면
확 뽑아버리고 싶은 인간적 생각 (민초)은
가을바람속에 외롭게 흩날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