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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6 18:24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억울한 죽음은 문학의 애도를 시험한다. 애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국가, 자유, 이상 등 우리 안에 자리잡은 추상적인 것을 상실한 것에 대한 반응”(프로이트)이다. 애도의 강도는 애정의 깊이에 비례한다. “우리는 죽어가는 자들과 함께 죽는다./ 보라. 그들이 떠나고 우리는 그들과 같이 간다.”(엘리엇, <사중주>) 죽은 이들과 같이 갈 수 없지만, 애도의 슬픔은 죽음의 고통만큼 크다. 한 맺힌 죽음은 개인적 애도를 넘어선 정치적 애도의 대상이 된다. 잇따르는 참사에 따른 죽음이 그렇다.

지금의 죽음을 빨리 잊고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런 비윤리적인 주장은 모른다. 삶에는 급히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애도가 성공하려면 합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억울한 죽음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애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들의 몸을 찾아줬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몸짓 자체가 윤리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에게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멈추라고 하며, 무엇이 어디까지 허용될지를 정한다.”(왕은철, <애도예찬>)

영화 <역린>을 보면서 뜬금없이 <햄릿>을 떠올렸다. 정조와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 편하게 애도할 수 없다. 그들의 아버지들은 살해되었다. 그때 애도는 개인적 차원의 층위를 벗어난다. 억울한 죽음은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유령이 출몰한다. 아버지가 죽은 지 몇 달이 지났어도 “내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두 시간밖에 안 됐다”는 햄릿의 말, 혹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정조의 선언은 정치적 애도의 표현이다.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품은 원한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한다. 햄릿 앞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유령이나 정조의 기억 속에 강박적으로 나타나는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의 이미지들은 그런 요구의 목소리다. 산 자가 죽은 이의 부름에 응답할 때, 어긋난 것을 바로잡을 때 죽은 이들은 평안을 얻는다. 억울한 죽음들은 해원(解寃)을 요구한다. 그때 정치적 애도도 비로소 끝난다. 지금 이 사회의 죽음들이 그렇다.

‘광주’를 다룬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를 나는 정치적 애도의 한 표현으로 읽었다. 특히 학살된 중학생 정대의 시점에서 그려진 2장은 독자를 전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었던 그 밤의 모든 것. 늦은 밤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던 습기 찬 바람. 그게 벗은 발등에 부드럽게 닿던 감촉. (중략) 네 부엌머리 방 맞은편 블록담을 타고 오르는 흐드러진 들장미들의 기척.” 학살은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한다. 억울한 죽음 앞에 섣부른 망각과 애도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이제 빨리 잊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말하지만, 이런 죽음 앞에 그런 말들은 모욕이 된다. “서울 거리는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고 윤리다. 사람들이,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는데, 이제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수 있을까. 윤리는 죽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세월호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이름”이 된다. (그동안 이 칼럼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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