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님 이 씀:
지키려 할 수록 믿음이 떨어지고 관계가 멀어지는 천국이 우리가 붙잡고 살아가는
이상한 나라임을 그대는 한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오직 예수라는 말이 성립이 되려면 우리는 그의 아들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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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한 나라를 한번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지키려 할 수록 믿음이 떨어지고"
계명을 지키려 할 수록 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주 동의합니다.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 아니겠습니까?
암 그렇고 말구요!
이 대목에서 이것도 정직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어떤 분들에게는 자기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 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바리세인 vs 세리 경우)
그러나 "믿음이 떨어지고" 라는 것은 좀 성급하게 결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믿음이 더 생길 필요가 생긴 것이 아닐까요?
"믿음이 떨어지고" 라기 보다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인 것을 깨닫고" 라고 해야 바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순간이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그래서 "나라는 인간은 오직 은혜가 아니면 살길이 없구나!"라고
통절하는 순간이 아니 겠습니까?
동시에 바로 이 순간이 다시 거듭나게 되는 순간이요.
바로 이 순간이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 나는 순간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자라나면 어린아이가 아니죠.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해야 되는 것은,
그래야 날마다 이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머무를 수가 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적으로 성숙하여 진다는 말은 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오직예수"만을 의지하게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모든일이 "계명"의 역활없이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계명의 기능을 제쳐 놓고 구원을 논하는 것은
결국 도덕이나, 수양으로 혹은 지식으로 믿음을 만들어 보려하지만
다람쥐 채바퀴 돌 듯 그자리에 다시 오는 경험을 수 없이 하게 되는 것 입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키려 할 수록 믿음이 더 필요함을 느끼고 천국을 더 사모하게 됨을
그대는 한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그렇게 읽을 수도 있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제가 이 글에서 사용한 믿음이란 단어는 성경적인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매우 일상적인 차원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중심이 된 내용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아니하는 자는 결단코" 라는 의미도 님이 말하는 바로 그 순간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님의 인용글
"동시에 바로 이 순간이 다시 거듭나게 되는 순간이요.
바로 이 순간이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 나는 순간이 될 것 입니다."
그 순간이 자신이 무엇인가 해 볼려고 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서 오직 어린아이 처럼 의지함으로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말입니다.
절망을 경험한 후에 오는 이 상태에 대한 과정적 설명은 이 글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과 좀 다른 방향이어서 짤라낸 것일 뿐 그것을 저의 글에 대입을 한다해도 아무 무리가 없는 일입니다.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썼다고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시고 서로간 동행하면서 배워가는 여정에서 각자의 생각이나 소리를 분명하게 내는것이 좋은일이지 않습니까?
요 아래 댓글에 꼬리가 보이는 아무개 진도개 처럼 무조건 짖어대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