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 김원일의 개인 블로그 아니다: 김운혁 현상 앞에서 이 누리를 다시 생각한다.

by 김원일 posted Aug 22, 2014 Likes 0 Replies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거의 사 년 전 옆 동네로부터 나와서 이 누리를 시작하려 했던 이유 
단 하나였다. 

실명제. 

옆 동네에서 
누리꾼들에게 묻지도 않고 갑자기 실명제를 선언했다.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래서 나오기로 결심했다

진보 사이트를 만들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필명 누리꾼들에게 돗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른 이유는 정말 없었다. 

그런데 그곳 새 관리자는 
실명제 외에 
그동안 그곳에 올라온 어떤 글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길게 언급했다. 
관리자의 자격으로였는지 누리꾼의 자격으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실명제로 탈바꿈하지 않았어도 
새 관리 체제가 저런 관리 체제라면 어차피 나는 나올 수밖에 없었겠다고 
그래서 그때 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오기 바로 전에
누구 함께 진보 사이트 하나 만들 분 없느냐고 
조금은 치기 어린 마음으로 묻기도 했었지만
막상 나올 때는 여전히 진보 사이트 만들겠다는 것이 이유는 아니었다.)

자세한 얘기는 그곳을 나오면서 했기에 여기서 반복하지 않는다. 



이 누리를 처음 시작할 때 개인 블로그 형식이었는데 
그건 옆 동네와 같은 형식의 대규모 사이트를 운영할만한 인터넷 지식도, 시간도 없어서였다. 

그러나 뜻밖에 많은 분이 참가해주셨고 
그 양을 개인 블로그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거기다 기술적으로도 누리꾼에게 불편한 점이 많아 고민하던 차에 
마침 기술 담당자님을 누가 소개해주셔서 
옆 동네와 흡사한 형식으로 이 누리를 열게 되었다. 

하지만 한 번 더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내가 처음에 블로그 형식으로 시작한 것이
그리고 피치 못해 결국 이 누리를 연 것이 
개인 진보 블로그나 그 비슷한 사이트를 운영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방법을 배워서 작은 규모로 운영할 만한 것이 블로그였고 
그 블로그 안에서 누구든 실명, 필명으로 
신학관, 신앙관, 정치 이데올로기를 막론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돗자리 깔아주고 싶어서였다. 

허형만 목사님이 관리자로 운영하시던 옆 동네 자유 게시판을 참고하며 
작은 규모로나마 나름 내 방식과 철학으로 
조금은 다르게 한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


김운혁님의 글 왜 삭제하지 않느냐 
왜 IP 차단하지 않느냐 
이 누리 그 때문에 망했다 
이런 글 종종 올라온다.

심지어는 내가 김운혁 현상(증후군?)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고까지 한 누리꾼도 있다.

내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고, 그렇게도 시간이 남아돌아 간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런 현상을 즐길 시간 있으면
영화 한 편 더 보고 소설 한 권, 시집 한 권 더 읽는다.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그의 글이나 그에 대한 반응을 즐기기는커녕 읽지도 않는다.
너무 재미없어서.



긴 얘기 짧게 하자면 이렇다.

이 누리가 내 개인 블로그라면
김운혁님의 글을 비롯한 많은 글
이곳에 얼씬도 못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누리를
개인 블로그가 아닌 공공 대화의 장(public forum)으로 열었다.

김운혁님의 글은
그 대화의 광장 한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뿐이다.

소리가 좀 잦고 큰 건 사실인데
그래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은 피해 가면 된다. 
나처럼. ^^

아무리 자주 올라오고 큰 소리 나는 글이라 해도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글이다.



얼마 전 LA McArthur Park (LA에서 가장 북적대는 곳 중 하나다) 옆을 지나며 본 풍경인데 

어떤 친구가 확성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큰 소리로 전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멈춰 서서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그는 외쳐댔고
나는 그 옆을 지나며 미소 지었다.

이 누리를 생각하면서. ^^




옆 동네에서 자주 듣던 말 하나.

왜 여기서 이러느냐.
그런 얘기는 제발 다른 데 가서 해라.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읽지 마시라.
나는 실명만 사용하니 
내 이름 보는 즉시
어마 뜨거라, 그냥 지나가시라.

내 소리는
내 글을 열고 들어가 읽지 않으면 안 들리는 소리이니
그냥 지나치시면 된다.




이제 이곳에서 관리자의 입장에 있으니 
마음도 말도 바꾸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내 글을 역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역겨우면 읽지 말라고 
누리꾼으로서 느긋하게 한마디 하던 내가
이제 이 공공의 누리 관리인이 되었으니
상당수 누리꾼이 싫어(혐오)하거나 지겨워하는 글을 
삭제하거나 규제해야 한다고 정녕 생각하시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누리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김운혁님의 글 역겨우신가.
열고 들어가지도
읽지도 마시라.

여기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
열심히 하시라.

바쁘면 
여기저기서 퍼 날러 와서라도 
하고 싶은 말 하시라.

하고 싶은 말 없고
쓰거나 퍼 올 시간 없으면 
골라가며 그저 읽으시라.

읽고 싶은 것마저 없으면 
읽지 마시라. 

그러나 다시 말한다.
여기는 내 개인 블로그가 아니다.

그러니
역겨운 글 자주 올라온다고 
그 글 삭제 및 아이피 차단을 요구하지 마시기 바란다.

나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 없다.

설령
어떤 한 누리꾼 때문에 많은 누리꾼이 이 누리를 떠나간다 해도
나를 포함한 어떤 특정, 혹은 다수 누리꾼들의 맘에 들지 않는 이데올로기, 신학 등을 삭제, 차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누리는 아직 공공의 포럼이므로.


우리 잊지 말자.

우리가 몸담은 이 교단은
기독교인 다수가 보기에 역겹고 진절머리나는 "이설"을
큰 소리로 떠들다가 쫓겨난 사람들이 만든 집단이다.

내 모국에서는
아직도 이단으로 몰려 주변화된 (marginalized) 사람들의 공동체다.
(내가 사는 미국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현 국회 상원 원목이 지난 11년간 안식교인이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김운혁님의 글이 역겨우신가.
역겨워하시라.

그러나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그래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잊지 마시라.


............



물론 고백하자면

이 누리를 내 개인 블로그로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럴 권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이 누리를 만들어 열고 들어올 때 

아예 문밖에 놓아두고 들어온 권리이므로.





이 누리의 질과 성향은 

관리자의 (간혹 어쩔 수 없는) 제제나 참견이 아닌,

올라오는 글/댓글의 질과 양, 성향, 그리고 조회 수가 결정한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보시다시피"라고 할까.


You are what you eat, 

즉, 네가 먹는 게 바로 너다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 누리가 먹는 게 바로 이 누리다.


글 올리던 많은 사람이 떠나며 남긴 공간 속에서

재림 교리의 "기형아" 취급받는 글이 비교적 높은 조회 수를 누리며 쉬임없이 올라오고

그 글에 대한 댓글 또한 끊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의 글보다

그의 글이 상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듯 줄줄이 엮이는 댓글이

훨씬 더 신기하다. ^^


하긴,

지금까지 이 교단이 고수해 온 재림 교리는 건전하며 정상이고

거기에 비추어 김운혁님의 글은 기형이라고 보는 바로 그 사고의 틀이

비교적 높은 조회수와 빈번한 댓글을 창출해 내는 것이리라.


역시 우리가 "재림" 교인은 "재림" 교인이라는 생각도 든다. ^^





한 번 했던 얘기지만


야곱의 환란이 어떻고

144,000이 어떻고

교황이 어떻고 하며

말세의 시간표를 놓고 홍야홍야하는 집단에서,


김운혁 현상이 뭐 그리 이상할 것 있는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형제자매여.


그런데 그중 적잖은 수는

마치 기형아 구경하는 심정으로 웃으며 읽는 것 같고


더러는

좀 심하게 말하면

별로 곱지 않은 심성으로 때려잡을 듯 달려들어

개 패듯 패기도 한다.

(그와 대화하는 모든 분을 두고 하는 말 물론 절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길 가던 어떤 정신 이상 십 대 소년이 

뭐라고 소리 지르며 철조망 울타리 너머로 운동장에 있는 우리에게 조약돌 몇 개 던지자

옆에 있던 어른들이 그를 몰매로 때렸고

선생님 한 분이

때리지 말라고, 그냥 말리면 될 것을 왜 때리느냐고 하셨다.

(조형일 선생님이셨는데--삼육 출신들 조영일 선생님과 혼동하지 말기--졸업 후 한 번도 못 뵈었다. 어디 계실까.)


김운혁님은 정신 이상자도 아니고

나름 믿는 바에 집착하며 외칠 뿐이다.


그리고 그의 외침 그 바탕에는

이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


그 신뢰를 무자비하게 깨는 것 또한 이 누리의 누리꾼들이다.



자, 생각해 보자.


이 누리는

참여하는 누리꾼 수가 처음보다  꽤 줄었

그 빈자리에 김운혁님의 글이 꽤 올라온다.


한 페이지에 80개의 글이 올라오는데

그는 보통 그 십 분의 일인 8~9번 정도 (때론 그 이상) 글을 올린다, 한 페이지당.

숫자만 놓고 보면

통제해야 할 만큼 자주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옛 프리지아님 같은 분이

채빈님 같은 시인이 

그 정도의 글을 올린다면

불평은커녕

우리는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김운혁님의 글 

조회 수 만만치 않고

댓글 또한 그렇다.


어쨌든 이것이 이 누리의 현주소다.


그러나 주소가 어떠하든

문패에 올라 있는 이름은

김원일이 아니라

민초다.



절대 바라지 않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이 누리가 극우파의 인해전술로 

우왕좌왕이 아닌 우왕우왕으로 ^^ 그림이 바뀌어도 그냥 둘 것인가.


그 반대로 

좌왕좌왕만 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본다.

그때가 오면. ^^



Everything changes except change itself, 

변화 그 자체 외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이 명언을 구태여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누리도 변해왔고 또 변해갈 것이다.


앞으로 이 문패의 주소나 이름이 어떻게 변할지 나는 모른다.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아침저녁에, 

그리고 그 사이에 

들여다볼 수 있는 만큼 들여다보며

오늘 내가 이 누리에서 해야 할, 할 수 있는 

지극히 제한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행동할 뿐이다.





부제가 이 누리를 다시 생각한다였다.


다시 생각해도

이 누리는 처음처럼이다. 


아직은. ^^





여러분의 건강과 건필을 빈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