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과시간에
예수님에게 (십)계명은 무엇이었나
예수님 이후 우리에게 (십)계명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늘 그랬듯
교과는 쳇바퀴 논리다.
계명은 선하다
우리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이 죄요 그 결과는 죽음이다
예수님은 그 댓가로 대신 죽으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은혜로
우리는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지 폐하러 오신것 아니다...
뭐 이런 얘기다.
하나님보다 더 확실하고 능력있고 영원한 것이
계명(율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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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그 자체로 거룩한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십계명에 너무 많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누가 했다.
'법은 그냥 법이다
지고지순한 것 없고
거룩하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십계명이 우리의 최고 도덕률이라고?
보아라
거기에는 자기를 희생하라는 명령도 없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없지 않은가?
십계명은 초보다
왜 십계명을 절대화 이상화 영광화하는가'
누가 이런 말을 하니까
다른 반생이
'십계명은 모든 율법과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손으로 새겨 주신 것이다.
그만큼 특별하지 않으면 손으로 친히 새겨 주셨을 것인가?'
라고 했다.
그러니까 제 3의 반생이
'새 언약에서는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진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돌에 새긴 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나?
십계명은
이집트에서 잡신들 사이에 살던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노예민족에게
나는 이런하나님이다 라고 주신
초보의 법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다 하지 않았나?
그런 무지한 백성들에게
다른 신을 두지 말아라, 우상을 새기지 말아라...
그러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셔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지 않았나?
자꾸 십계명 십계명 하면서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 아닌
돌비에 새긴 그 계명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무지했던 시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어찌 그럴 수 있나?'
아멘 했다.
십계명
우리 진작에
졸업했어야 했다
십계명과 율법은 예수님께서 고안하시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율법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입니다.
안식년제도, 희년제도, 노예로 하여금 안식일에 쉬도록 하는것,
여러 민법들, 그리고 위생에 관한 법, 음식에 관한법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랑과, 평화와, 위로와, 자비를 원하신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신정정치 시대가 아니므로 이 일이 현실적으로 시행되기 어렵지만 이 시대에도 이 일들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빈부의 격차가 줄어 들고, 질병이 줄어 들고,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사회가 이룩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이 율법의 원본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고귀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말씀 하신 모든 율법의 근원적 광체를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을 볼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이끌려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입니다.
즉, 여러 제사 율법속에 나타난 구속의 경륜을 볼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볼때, 우린 구속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그 실체 이신 예수께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비단 제삿법뿐 아니라 모든 민법, 위생법, 음식법,등 모세의 율법 전체가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와,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의 원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것이 바로 의문의 율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의문의 율법은 죽어 있는 문자 이므로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오직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깨달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영을 부어 주시며, 또한 우리를 개인적으로 아시고, 우리를 능히 구원하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행동하게 되며 진리 안에서 자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율법은 그 율법 조항자체가 사랑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으로 기인된 행동은 가장 선하고 옳바른 행동 입니다.
"다윗이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자기도 먹고 또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준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한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율법의 근본 시작이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시여자께서 어떠한 성품을 갖고 계신 분인지 깨닫게 될때에 비로서 그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고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것은 어떤 철학적 교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자로 적혀 있는 율법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베풀어 주시는 능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려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하셨습니다.
지성소를 생각해 봅시다. 가장 거룩한곳인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으로 등불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그 곳의 가장 중심에 법궤가 있습니다. 그 법궤 뚜껑을 시은좌라고 부릅니다. 즉 은혜를 베푸시는 보좌란 의미 입니다. 그리고 그 법궤 안에는 우주의 근본 기초석인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문자로 표현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땅에 성육신하여 오셨을때 우린 그 율법의 원본이 인간의 육신속에 계신것을 보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지성소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 주기 위한 실물 교훈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10계명의 조항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하라는 법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10 계명의 조항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지성소에 들어가는 경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깨닫게 되는것, 또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것이라고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이 말씀은 결국 예수님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율법의 원본이시며 근원이시고 완성이시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심판 하실 때에도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 하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최종 결정권자이시며 그분의 심판은 언제나 공의롭고 의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