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성경을 읽을때에
끊임없이 반복하는 주제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계단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의 획기적 변화등
결코 평평하게 읽지 말아야 할 요건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성경을 한개의 단어나 한개의 구절 보다는 문맥이
더 중요하고 또 전체적인 흐름속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날보고 철학을 말한다고 하거나
설익은 이론을 설파한다고 하거나
그런 기초적인 판단조차 흐린 이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모태 재림교인이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삼육을 다녔다.
이놈의 울타리가 싫어서 세상으로 나가 보았던
몇년간의 방황도 있었다.
역시 모태교인인 아내를 따라서 그럭저럭 교회에 다니던 중
집사시절에 과정공부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었다.
꽤 잘 가르친다는 칭찬을 뒤로하고 나는 늘 고민에 빠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가 무얼 알고 있는지
더 나은 지식이 있을것 같고
더 나은 말들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목을 조르는 것이다.
말씀 그자체가 은혜롭다는 느낌만 있으면
어떤 이설이라도 받아 마실 준비가 되어있는 아내를 보며
남편으로서의 한계를 느낄쯤에
나는 내 직업을 팽개치고 일단은 신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회를 하려고가 아니고 가르치는 일 하나를 바로하려고 신학을 결심했다.
날마다 전화를 걸어서 의대를 가라는 어느 선배님의 성화를 뒤로하고
신학을 선택했다.
이미 신학을 하기 전에도
나는 성경을 한국어와 영어로 된 테잎을 날마다 매 시간마다
틀어놓고 거의 열번 이상의 성경을 경청했고 수없이 많은 의문들을
노트에 적어놓았다.
신학을 한 후에도 성경을 통으로 듣거나 읽는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성경에 빠져 살아온 날이 십여년이 넘어가는 어느날 성경의 숲과 나무와
이파리와 열매가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느낌을 가졌다.
그때 나는 이미 율법의 졸업이 아니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복음의
울타리 안으로 넘어가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우리교회가 지향하는 성경 연구의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메뚜기식이다.
영어로 말하면 proof text methodology 를 말함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뽕잎을 전체로 갉아 먹는 애벌레가 아니고
여기 저기로 건너뛰는 메뚜기식 성경연구를 한다.
주로 창세기 출애급기에서 다니엘 그리고 사복음서 위를 휙 날라서 요한 계시록으로
landing 을 한다. 심한경우엔 다니엘서에서 요한 계시록으로 직접 뛰어 버린다.
그리곤 그것에 필요한 이파리들을 여기저기서 뜯어다가 집을 짓는다.
그래서 교단의 목회자들이랑 어떤 기회에 복음서를 서로 이야기 하다보면 매우 궁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언서에 관한한 그들은 모두 박사정도의 레벨이다.
쉽게 말해서 편식을 하는 교회란 말이다.
만약에 애벌레가 뽕잎을 찬찬히 뜯어 먹으며 복음서를
통과 한다면 거기서 요단강을 건너는 경험
몽학선생에게서 예수께로 가는
나방으로의 변신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기는것에서 날개를 다는 단계로
그러나 너무 갔다고 할까
이런 나의 경험이 수용이 되거나 편안한 자리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
우리 재림교단의 풍토이다.
나는 지금도 교회의 행정적인 분야를 맡아서 봉사하는 나름의
신실한 교인이다.
이 민초에서 일어나는 똑같은 현상이 교회에도 있기 때문에
나는 설교를 언제나 사양한다. 그리고 안교교사도 사양한다.
내가 믿는바는 교리해석의 다름이나 율법의 졸업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이 화목이라는 주제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머물러 있고 또 인내도 하고 산다.
그래서 날강도 (?) 들이나 장사치들하고도 같이 웃으며 피트락을 할 수있고
함께 교회를 섬기며 잘 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에 한 장노님과 사석에서
"장노님은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전통적인 보수 재림교인인데
어떻게 저를 그리도 잘 받아주시고 또 협조해 주시는지 모를 일입니다" 라고
했더니 그의 말이
"님은 교회를 향한 진실한 헌신이 늘 엿보이는 사람이어서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나는 소위 이곳 민초에서 그동안 내가 배우고
감동했던 일들을 비교적 필명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메뚜기와 애벌레가 서로간 화목하고 협조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고
메뚜기 처럼 여지저기 뛰어 다니며 평평하게 읽지 말고
성경의 모든 이파리를 갉아 먹는 애벌레식의 성경 공부를 하는것을
권하고 싶다.
율법에 관하여
졸업에 관하여
복음에 관하여
누가 완전한 이해를 갖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메뚜기가 날아 다니면서 본것과
애벌레가 먹은 다음에 고치를 지은 그 속에서 본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것이다.
오직 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메뚜기들에게 드리는 권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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