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도 같은 것이 없는데
오늘 목욕탕엘 갔다
물론 남탕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는데
옷을 벗고 덜렁거리며 다니는 남자들 거시기를 보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이 무색했다
큰 것
작은 것
꼬부라진 것
다마를 넣어서 부풀린 것
지 멋대로 키만 큰 것
땅딸하게 생긴 것
왜 하나님이 같은 것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이렇게 다양하게 만드셔서
의사들 밥벌이 잘 하게 하셨을까?
거기다가 유대인들은 자기네들의 표시로 8일만에 할례라고 하는 것을 해서
남자의 거시기의 껍질을 벗겼을까?
요즘 심심찮게 언론에 희자되는 소말리아 여인들의 할례를 읽으면서 몸서리치기도 했는데
내 친구는 금구슬을 넣기도 하고 상아를 갈아서 넣기도 하고
어떤 장로친구는 목욕탕에서 거시기 숨긴다고 하길래 살짝 봤더니 군대가서 새롭게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가관이었다
목욕탕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서 곽건용 목사님의 “하느님 몸 보기 만지기 느끼기”란 책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하나님은 아담처럼 생겼을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 형상이란 글자를 가지고 장난을 무지하게 쳤다
하나님 대로 만들었느니 하나님처럼 만들었느니 하나님의 심령으로 만들어졌느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도록 문자화하기도 하고 영적 언어로 해석하기도 했다
결론은 뭐냐?
없다
인간들 하는 꼬라지 보니 하나님의 형상이란 그림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처럼 살거라고 발버둥치고
하나님처럼 될 거라고 율법이 어떻니 십자가가 어떻니 하고 난리버꾸를 치고 있다
아담이 가졌던 악한 생각만 가슴에 품고 살면서
아담이 가졌던 하나님 되고자 하는 생각만 가지고 살면서
아담이 가졌던 핑계거리만 가슴 가득 품고 살면서
그런 것들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율법이 와서야 겨우 그게 죄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게 바로 십자가로 가까이 가게 만든 주식투자쯤으로 생각하는 오늘 우리들
왜 기쁜 마음으로 발견한 십자가면 안 되며
꼭 죄인이어야만 발견하는 십자가여야 하는가?
율법은 모세가 줬지만 은혜와 평강은 예수가 줬다는 구절을
왜들 어둡고 쓸쓸한 것으로만 평가할까?
목욕탕에서 본 수 많은 다른 형태의 거시기처럼
오늘 우리의 신앙도 수 없이 많은 인생고통의 결과물이란 것을 왜 모를까?
나는 예수를 율법을 통해서 배우지 않았다
나는 예수를 십계명으로 인한 죄인이라서 배운 것 아니다
역사적 예언적 그리스도가 내게 다가와서 준 것은 절망이었고
죄인이라는 것보다 더한 환희로 다가온 예수가 내게 절대적인 분으로 자리매김하게했다
난 오늘도 내가 죄인이라고 예수 믿는 것 아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 예수는 울고 계셨고
내가 의인이라고 자부심으로 다가갔을 때 그분은 웃고 계셨다
같지 않은 수 많은 환경에서 오직 그분은 우리의 구주셨다
내가 죄인이라고 나 같은 죄인 없다고 말한 괴수 바울은
그가 율법으로 의인이라고 잘난 척했던 것을 회개할 때 했던 말이지
그는 예수로 인한 진정한 의인이었다
그도 우리들처럼 거시기 차고서 목욕탕에 갔을 것이고
오늘 같으면 바울의 거시기가 누구만 했을까 하는 우스개꺼리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수많은 다른 거시기처럼 우리들 신앙도 수많은 종류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을 것이라
나는 그리 여기고 웃고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시기도 같은 게 없는데
우리들 같은 신앙한다고
내가 믿는 것처럼 믿어야 한다고
그래야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분들
죄인으로 평생 살고 싶으면 그대로 하시게나
하나님의 성전 같은 소리 하고 있네요
그 하나님의 성전이 변하면 하나님의 상전이 되기도 하지요
저녁 잠자리에서 밀담은 영 안해 본 사람처럼
왜들 이래요?
거룩한 백성들도 밤이 되니 산당으로 가고
벼라별 놈들 많더구먼
종말이 비참해진다?
어디 물어 봤는데?
명도 옆방에 살던 사람들처럼
진짜 웃겨
좀 진지하게 인생사 돌아봐요
별 것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