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율법 하는데 얼마나 법을 연구해 봤소?
여기 육법전서 한 번이라도 읽은 분 계시오?
여기 형법 전문 하신 분 계시오?
아니면 나라마다 다른 민법 논쟁이라도 해 본 분 계시오?
더 좁혀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나 군의 조례라도 읽어본 분 계시오?
계명계명 해 대는데
십계명 이해에 대한 책 한 권 써 본 분 계시오?
아니면 제1계명이 내게 무슨 의미로 다가왔는지나 아시오?
우린 맨발로 맨땅에 해딩하는 것처럼
제4계명에 목숨 줄 걸고서 살아오지 않았소?
법이란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인 한자에서 보듯이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순리를 바탕으로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지키고자
세워진 최종적 기본원칙입니다
즉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의 흐름과 같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힘이 연약한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법이 적용될 때 진정한 평화와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법을 우리는 예사로이 대접합니다
제4계명이 빛났느니 하면서 하나에 몰입합니다
모든 법은 평등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사도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로 10을 평가하는다는 말이지 10가지를 모두 범법한 것이라는 안된다고 봅니다
도둑질을 한다고 살인은 합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안식일을 범한다고 우상숭배를 합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법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꼴이 됩니다
내가 쓴 십계명 해설서가 있는데 거기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출간하지는 않았습니다.
법은 잘못하면 폭력이 되고 감정적이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고 외쳤던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예수를 하나님을 참칭한 죄를 물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에 의거해서 정죄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에 의거해서 병자를 고친 예수를 나무랐습니다
그것이 저들이 법적 논리로 나온 제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야웨는 오직 유일하신 분인데 네가 감히 야훼를 참칭하다니
그래서 십자가 위에는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19:19)이라 적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기에 자칭이란 단어를 추가하기를 원했지만 빌라도가 반대해서 적지 못했습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법질서와 사회의 안녕을 파괴할 경우에는
국가적 신뢰를 가진 법이 될 수 없습니다
환경의 파괴로 물과 공기를 더럽히면 그 결과를 우리가 뒤집어쓰듯이
우리가 법과 질서를 어길 경우 그 피해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고유의 민법을 만들어 저들의 관습에 대한 거래들을 책임져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구약에 예시된 수많은 것들 배제하고
오직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법으로 계명으로 존재하게 한 것 잊었습니까?
구약에는 수많은 민법이 있습니다
그 법 폐했다고 하면서
구약에 있는 수많은 예식 법 이것 폐했다고 하면서
오늘 우리는 거기 부수된 법의 극히 일부만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들 알면서 모른 척 하면서 사는 것 아닙니까?
좋은 게 좋다고 처음 배웠던 것에 타성이 생겨서 그냥 그것 고수하면서
지계표를 지킨다고 떠든 적은 없습니까?
법은 국민 각자의 정당한 권익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민 모두의 합의 아래 만들어진 공동약속이며
법을 준수함은 자유에 대한 속박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상호보장인 것입니다
이게 법 원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에 대한 상호보장을 배제하고 속박으로 여기도록 견제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들은 제사법부터 민법 그리고 십계명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국민 합의가 없는 공동 약속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법입니다
이 법은 절대권력이고 이스라엘을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끄는 몽학선생이었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법이 오늘에도 같은 권력을 가지는 것에 나는 반대합니다
지금은 신권시대가 아니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시대입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민주정부가 아닌 나라에서는 기독교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법들이 강제될 수나 또는 도덕적인 수준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지워진 법의 잣대를 오늘 우리에게 일률적으로 지우는 것도 불가합니다
내가 지기 싫은 짐을 남에게는 쉽게 지우는 오늘 우리의 행위는 벌 받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말한 많은 법과 계명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을까요?
로마서 7장의 율법과 갈라디아 3장의 율법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다음 장을 봅시다
로마서 7장-율법에 일반적인 원리와 이로부터의 해방.
율법의 무능함 즉 율법의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입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죄를 밝혀 주고 정죄할 수는 있어도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음.
갈라디아 3장-율법에 역활과 사명
율법은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함.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님.
율법에 사명은죄를 깨닫게하며.
그리스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예수님(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율법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로 결론.
몽학선생 옹호하시는
수련생님들
이제 그만 졸업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