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교인들의 똥 같은 머리에는/계명을 님
어제 안식일 우리 교회에서는 성만찬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생각지 않던 십자가상의 강도가 왜 그리도 보고 싶은지
그 친구 정말 복 받았다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더군요
그렇게 험하게 살다가 한 마디의 구원 요청에 복을 바가지로 받은 녀석
그 강도가 얼마나 부러운지요
안식교인들의 똥 같은 머리에는
우리 교인들의 똥만 찬 머리에는
율법이라 하면 십계명이란 등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율법 즉 토라를 이스라엘이 어떻게 우려먹었는지
오늘 우리는 또 어떻게 우려먹고 있는지
그것 생각이나 하고 글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마서7장은 십계명을 설명하는 장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아니요 십계명이 맞아요 하는 근거 한 구절도 못 대면서
주구장창 다른 소리만 하고 있네요
내가 말하는 율법은 십계명을 말하고
졸업하는 율법은 탈무드와 장로의 유전과 이스라엘이 가졌던 율법에 대한 편향된 사상을 말한다 해도
무슨 말인지 감도 못 잡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군요
율법 없이 은혜를 논하자구요?
그건 안 된다는 말을 뒤에 설명하는데
머리 둔한 사람들은 못 알아들으니 다시 반복해 드리죠
“율법은 근간이 되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십계명 이야깁니다
“없는 듯이 졸업하자” 이건 현대판 탈무드라고 말했습니다
손에 잡혀 줘야 말귀를 알아듣습니까?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정말 그렇습니까?
붉은 글씨는 내가 설명하면서 글을 쓴 부분입니다
율법 없이는 은혜가 없다구요?
그건 도의 초보를 걷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예수를 발견하는데 그 예수가 내 죄를 위해 돌아가셨는데
그것 깨닫는 사람은 법 없이도 산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그 말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표현했는데
그런데 율법이 언제까지 우리를 억누르고 있어야 한단 말이요?
율법이 몽학 선생일 때는 은혜로 가는 길잡이를 했습니다
은혜로 간 다음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 것 보다 은혜 아래 살았던 양심이 깨닫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에 심어진 법을 가진다고 바울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돌에 새긴 율법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그럼 마음에 새겨진 그 법은 어찌하렵니까?
아직도 돌비에 정신 팔려서 잣대질 하고 계실 겁니까?
오늘 우리가 가진 마음의 빚은 은혜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갚지 못한
양심의 가책입니다
그런 것도 아니고 아직도 십계명 문자 자락이 문지방에 걸려서 해매이고 있다면
몽학선생에게서 더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매일 죄 용서만 받을 거라고 은혜를 구한다면 아직도 몽학선생의 슬하에서 자란다고 봅니다
더 크고 높은 이상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우리가 아직도 율법을 자구에 얽매어서
죄 용서만 바라고 있다면 무한한 은혜와 사랑은 언제 맛보는데요?
매 안식일마다 교회라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 죄 타령만 하고 산다면
우리의 신앙에 대한 기쁨은 다른 이에게 어떻게 전할 건데요?
아직도 율법 없이 은혜 받는 법도 못 배웠다면 매일 죄 타령이나 하고 산다면
그게 무슨 은혜 가운데 사는 모습일까요?
죄가 없으면 은혜가 없습니다
그 말 맞습니다
바울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매일 죄 가운데서 은혜를 구하면 “은혜 중의 은혜”란 예수를 닮는 일은 언제하나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정죄함을 받지 않으면 없는 듯이 졸업이 가능합니다
그런 막대기 같은 율법은 졸업이 가능합니다
아직도 내가 졸업하자는 법을 십계명이라 우기려면 졸업하지 마십시오
시편에는 율법이 6개
말씀이 90개
율례가 31개
도가 11대
법도가 25개
계명이 27개
증거가 33개
법이 9개 등 230개의 법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것이 십계명을 지칭하며 어떤 것이 일반법을 지칭하는지 연구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건 모두 십계명을 지칭한 건가요?
한 번 설명해 보실래요?
율법을 졸업하면"남편이 죽는 것" 입니까?
율법을 졸업하면 남편이 죽습니까?
오히려 내가 물어 봐야 할 말이군요
바울이 말하는 남편이 누군데요?
누군지 알기나 합니까?
함부로 죽이지 말고 답해 보세요
하나님의 율법을 탈무드나 일반 사회법으로 보는 시각이
아주 잘 못된 시각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힌 오해들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누차에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탈무드로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님들이 잘못 읽어서 그렇게 각인되어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은 것뿐입니다
사회법이나 유대인들의 일반법이나 뭐가 다르지요?
오늘 우리는 유대인들의 일반법 즉 사회법을 일부는 계명이라 포장하여 지키고
일부는 폐지된 법이라고 안 지키지요
섞어 짠 베, 눈썹 사이의 털 미는 것, 사생자는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말아라
등등 수많은 것 폐했다고 스스로 장담하지요
그러면서 내가 이런 법들이 일반 오늘의 사회법과 같다고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어쩌고 하면서 헛다리짚고 있지요
바울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활을 합니다.
세상 어느 법이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주는 법이 있나요?
세상 많은 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지요
세상 법이 오늘 우리의 육비에 새긴 법과 동일 할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부모에게 효도해라
그게 하나님의 법에만 존재하던가요?
세상 법에도 그것 세분해서 존재하거든요
우리는 두 법을 적절히 혼합해서 양심껏 지키지요 안 그래요?
종말로 내가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도 우리가 양심에 따라 행하지 않고 법에 따라 행하면
졸업하셔야 합니다
안식일이 계명으로 존재하게 되면 졸업하셔야 합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그 날이 다가옴을 환영하고 감을 아쉬워하는
그런 신앙이 안 되면 평생 율법 붙잡고 살으셔야 합니다
어떻게 일반사회법과 감히 비교를 하다니요.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십니다.
님도 매우 감정을 앞세우는군요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말은 내가 할 말인데요?
막가파 식의 대답을 하시는 군요.
몽학선생 밑에서 빨리 해방되십시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