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자와 십자가에 함께 못박힌자
십자가의 무게 (영육간)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의 육체로는 지고 가기가 어려운 무게였습니다.
율법의 요구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육체가 이 땅에는 없는 것입니다.
범죄전의 아담과 또 그 상태의 육신으로 왔다고 하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치워달라는 그의 육신의 부르짖음이 그것이었습니다.
오직 그일을 이루는 일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명령에 아들이 순종하는 길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순종의 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짐은 율법을 일점 일획도 빠지지 않고 지켜야할 율법준수의 무게가 있었고
그 다음은 그것을 지키지 못한 첫째 아담과 그 후손들의 선고인 영원한 사망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 잔을 내게서 치워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율법의 마지막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올라가시는 갈바리의 길에서 비틀거리는 주님에게
어떻게 보면 그 짐을 함께 지고 가는것이 더 필요한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일을 감당했지만 성경은 그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성경은 함께 못박힐 자들에 대하여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함께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면 우리는 제각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몬이 되고 제각기의 십자가를 만들어 거기에 못박힘을 당하는 율법주의자들이 될 수
밖에 업습니다.
노파심에 한마디 한다면 십자가에 함께 못박힘에 참여하고서도 졸업이 되지 않는다고 우기는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주의자임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을 옹호한다고 생각할 지언정...
오늘은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고 싶어하는 시몬의 교회들과
십자가에 함께 못박히기를 원하는 사도바울 (제자들)의 교회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요
다음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에도 두 종류가 있슴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