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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집단' 국정원 보아라...이게 전라도 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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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댓글왕'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인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민들이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적으로 여론조작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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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였다. 지금껏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봐 왔던 국가정보원 요원의 모습은 판타지였다. 가족과 연인을 속이면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비밀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정의로운 요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얼추 그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시는 줄 알았다. 적어도 국정원 직원들이 PC방, 원룸에 박혀서 '쌍욕' 댓글 올리는 업무를 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국정원 댓글, '판타지 코미디 블록버스터' 

박장대소 했다. 언론에 보도된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의 범죄일람표(관련기사-"홍어·전라디언들 죽여버려야" 국정원 요원, 하는짓은 '일베충')는 일상에 지친 나에게 큰 웃음을 줬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웃겼다. 그야말로 '욕의 향연'이자 '욕의 배움터'였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욕도 많았다. 욕쟁이 할머니도 울고 갈 국정원 직원들의 작문 수준이 참 우스웠다. 

국정원 댓글을 외국어 공부하듯 한 자, 한 자 읽어가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리도 자유롭게 저질 욕을 구사하는 비결은 뭘까. 국정원에는 쌍욕을 지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나. 아님 욕으로 댓글을 다는 필기시험을 보나. 

논술 1.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국민들의 대대적인 추모열기를 비판하는 댓글을 종북, 좌파, 전라도와 연결시켜 쌍욕으로 논하시오."

개그콘서트 작가들을 힘 빠지게 하는 코미디의 진수다. 그렇다면 상식을 깨는 국정원의 이러한 '창조'적인 업무는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계획하고 지시한 것일까. 이건 그냥 비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 당시 특정 지역과 정치 세력을 비난해 국민 여론을 분열, 조작하는 데 개입했다. 

더구나 그 분들은 아무 목적도 없이 행동할 분들이 아니다. 이쯤 되면 국정원 댓글 사건은 판타지와 코미디를 넘어서 블록버스터로 진화한다. 이 엄청난 '판타지 코미디 블록버스터'의 한 가운데에 전라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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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0페이지 분량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범죄일람표'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범죄일람표'. 검찰이 작성한 것으로 총 2,120페이지 분량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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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종북좌파 전라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국정원이 전라도를 종북, 좌파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간 사실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5·18민중항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라도는 대한민국 '흑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전라도를 권력의 제물로 삼고 호의호식하는 정치인들을 숱하게 봐 왔다. 슬프지만, 소외와 차별은 전라도의 오랜 벗이었다. 

맞다. 난 전라도 사람이다.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전라도에서 산다는 것이 대체 무슨 대역죄라도 되나. 우리도 열심히 일해서 낸 세금으로 국정원 직원 월급 주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인종차별이라면 세계의 정의로운 지구인들에게 도와 달라 호소라도 하지. 지역차별의 소외는 한이 되고, 분노는 때로 맨주먹이 됐다. 

하지만 만약 전라도 사람들이 국정원의 말대로 종북좌파 불온세력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다. 또 전라도 사람들이 그의 한과 분노를 국정원의 주장처럼 폭력적으로 표출했다면, 현재 우리 사회는 분명 다른 모습일 테다.

'빨갱이 전라도인'에서 '종북좌파 전라도인'로 옷을 갈아입은 실체 없는 관념. 관념이 존재를 대신하는 이 실존적 절체절명의 문제를, 전라도 사람들은 평화와 화합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풀어 왔다. 그러했기에 민주주의는 우리 삶 속에서 조금씩 싹 틔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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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클리앙'의 한 회원이 "국가정보원이 지역감정 조장했다"며 올린 게시물
ⓒ 클리앙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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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의 비열한 두 얼굴 

생색내려는 게 아니다. 분명히 알자는 것이다. 국정원이 기도 안 차는 쌍욕 댓글로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국민의 안위인지, 권력 집단의 안위인지 알아야 한다. 국정원이 치졸한 스킬을 동원하며 여론을 조작한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 척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절호의 기회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우리 사회 모순의 집결체나 다름없다. 이처럼 정치권력의 검은 속내를 적나라하게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겉으론 '국민행복' 운운하면서 다른 얼굴로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국가 권력의 비열한 두 얼굴. 그들이 21세기에도 '종북좌파 전라도'라는 만능 도깨비 방망이로 국민을 요리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우리는 '호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국정원 댓글 요원님께 조언 한마디. 그저 '아따'와 '~당께'를 붙인다고 다 전라도식 욕이 되는 게 아니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 몇 해 전에 돌아가신 홍어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가 당신들을 봤다면, 분명 이렇게 '욕' 해 주셨을 게다. 

"워메, 짜잔한 놈들. 징한 짓거리 엔간히 하고, 이리 와서 밥이나 한 숟깔 묵자잉." 

우리네 욕은 이렇게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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