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안식일교인들에게
종말론은 교회로 들어오는 문이었다.
다니엘/계시록이 그랬고
다가오는 위기, 일요일 휴업령이 그랬다.
성경에서도 그런 것 같다.
요 밑에 '시냇물' 님이 인용한 성경이 그렇거니와
바울 서신 중에 '종말론'을 다루는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쓴 성경 서신들 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다.
그의 신앙과 생각이 어떻게 성장? 하여 갔는지는
옥중서신들이나
최후의 서신인 디모데후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언젠가 얘기했거니와
성경은 원래 요한계시록으로 끝나서는 아니된다.
우리 전통적인 이해에 의하면
요한은 밧모섬에 있다가 돌아와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며
요한복음을 썼다고 했다.
신앙은
복음에서 시작하여 종말론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에서 시작하더라도 복음으로 마치는 것이다.
신자는 종말론으로 살 수 없다.
신자의 삶은 더욱 근본적인 복음에 터하여 있는 것이다.
비상상황(그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에 기초하여 신자의 삶을 설계할 수는 없다.
신자의 삶은 정상/일상의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일상에서 찐하게 의미 있지 않은 삶이
비상에서 히트칠 거라는 생각은 로토의 사행심이다.
엘렌 화잇도 그랬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들어온 수많은 종말에 관한 이야기들
의뭉스러운 교리들 (144000, 특별부활...)
초기문집에 터하여 있다.
초기문집은 문자 그대로
화잇의 십대 어간의 경험이다.
대실망 이후
중구난방으로 방황하던
한줌의 밀러주의자들과
지지고 볶던 시절의 이야기다.
(밀러운동에 참가했던 대다수는 날짜 정함을 후회하고 본류로 돌아섰다.
당시 끝까지 날짜 정한 것이 맞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다수가
의뭉스런 spiritualizer 들이었다)
대쟁투는 어떤가?
이곳 저곳에서 여러번 말한 대로
원래 대쟁투의 기초가 되었다는
소위 '대쟁투 묵시' 는 1858년에 있었고
그 묵시에 의한 초기 기록들 (1870-1884) 의 내용은
지금의 '대쟁투'와는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일요일 휴업령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크게 개정된 1888 년 판은
당시 정치 사회 상황 (일요일 휴업령, 카톨릭의 약진, 강신술) 에 대해
계시록을 주석했던 우라이아 스미스의 해석과
화잇의 독서로 인한 역사기록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물론 화잇 개인뿐 아니라 그 편집 비서들, 그리고 대학 교수 프레스캇 같은 이의 감수가 큰 역할)
그 후의 개정판은
이미 화잇의 손을 거의 떠난 것들이다.
화잇의 말기 저작들은
시대의 소망, 치료봉사등
기독교계의 다른 저작들을 많이 참고한
소위 '에큐메니칼'^^ 한 것들이다.
우리가 마치 종말론 시나리오를
복음 이후 경험해야 하는 어떤 단계 높은 지식/신앙으로 가르친다면
거꾸로 가는 이야기다.
하나님 나라라는 궁전에
그 문으로 들어왔더라도
(문은 각종 다양하게 여러가지가 있다)
제발 궁전 본 건물 자체의 휘황함에 압도되고 영감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