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집’에 시인 박인환, 작곡가 이진섭,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 등이 둘러앉아
거리 곳곳은 물론 목로주점 안에도 6․25전쟁의
매캐한 상흔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지분거렸지만 나애심은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거나 말거나,
박인환은 주모에게서 받은 누런 종이에
잠시 뒤 성악가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왁자지껄 주점으로 들어섰다.
양은술잔에 거푸 막걸리 석 잔씩을 권한 뒤
이진섭이 임만섭에게 악보를 건네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렁찬 테너로 「세월이 가면」을 열창했다.
노래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세월이 가면」은 드물게 성악곡으로
세인들에게는「명동엘레지」로 널리 알려졌다.
훗날 애잔한 음색의 대중가수 박인희가 원제인
「세월이 가면」으로 리바이벌하여
10년 전에 타계한
첫사랑 여인의 기일을 맞아 망우리 공동묘지를
다녀왔다.
「세월이 가면」은 피를 토하듯 그 첫사랑에 얽힌
애절한 추억을 한 올 한 올 반추한 정한情恨이었다.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랑잎이 나뒹구는 옛 연인의 헐벗은 묘지를
그러나 사람은 가더라도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
사라질 리야 있겠는가.
그 처연한 심사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1956년 3월 29일,
자택에서 잠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과음에 의한 심장마비.
(요절이 애통하기는 하지만 이 얼마나 부러운
죽음인가!)
이 땅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세계를 펼친
‘명동신사’ 박인환은 동료 문인들의 청을
받아들인 미망인의 양해 아래 망우리 공동묘지
옛 연인의 묘 옆에 묻혔다.
어디 있으랴.
마도로스파이프로 유명했던 조병화 시인도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 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