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님은 안식교 때문에 망했습니다!

by 계명을 posted Oct 28, 2014 Likes 0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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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님,

님의 글을 읽고 저는 참으로
당황스러우면서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안식일교회 교리 때문에
완전히 망한 사람이다."

예수님 재림하신다고 해서
자녀들 학교까지
그만두고 온 식구가 지리산에 들어갔다가
인생 망친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다.
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재림교회의 교리가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였습니다.

한 특정한 지역 사회에서,
한 특정한 시대에,
한 특정한 지도자가 잘못 가르침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이였습니다.

전적으로 개인의 신앙과 선택의
문제 였습니다.
아무리 그 범위가 넓었다고 하였어도
말입니다.

지금 저희가 논의하고 있는 율법과 구원 문제도
그렇습니다.

한 때 재림교회가 님이 주장하는 것 같이
그렇게 가르칠 때가 있었습니다.
한 특정한 지역 사회에서,
한 특정한 시대에,
한 특정한 지도자들에 의해서,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변했던 것이 아니라
있어 왔습니다.
한 지역에서 잘못 가르쳐 왔습니다.

님은 그 잘못을 알고
그 잘못된 것을 지적해 온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 까지 계속 지적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생각 하고 믿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각주구검이라 하지 않습니까?
세월은 흘러 한 참 왔는 데,
옛것을 가지고 계속 잘못 됬다고 하니...
개가 달 그림자보고 짖어대는 꼴이란 말입니다.

제가 어디에서 잠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만.
Text 는 같은 데 context 는 변했단 말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제는 우리 그 단어를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 단 말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이 변했단 말입니다.
재림교회의 교리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못 가르쳐 왔고 잘못 해석들 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옛날같이 내 주변에
율법주의에 얽메여 있는 사람들 별로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말입니다.

님은 우리 것은 틀렸다고 하면서,
님은 다른 데서 찾으려고 애쓰고 다녔을 것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찾아 다녀 봐야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님은 계속 우리 것은 틀렸다고,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님 자신은 답은 없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님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온전한 율법을 행하는 자유를 누린다"
는 단순한 말조차 이해를 못하면서,

교인들이 불쌍하다 느니,
집필자가 몰라서 한 말이라고 헤대시니...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겠습니까?
진짜, 누가 불쌍한지 모르겠습니다.

님과 저희가 틀린 점은 이런 것 같습니다.

님은
재림교회의 가르침이 틀렸다.
그래서 밖았에서 찾자,
그러나 님은 아직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없으니깐요.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그 것을 재림교회 안에서 찾았습니다.
원래 있던 것이 였습니다.
일부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쳤던 것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 율법"이라는 말에 아멘 하지만,
 
님은 무슨 개잡는 소리냐교 볼멘소리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돌비의 계명은 폐했다느니,
계명을 졸업했다느니,
안식일 때문에 계명을 주장한다느니(그게 어때서),

별 소리를 다 헤대고 있단 말입니다.

님을 포함한 몇 분들이... 

그 허잡스러운 개신교의 은혜주의를
끌고 들어와 "은혜" "은혜" 하고 있단 말입니다.

법에서 자유하기 위해 법을 없애버리겠다!
그 것보고 무법천지라 그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주장했던 "자유의 율법" 이라는 그 context 를 전혀 모른 단 말입니다.
율법이라는 text 에 갇혀서 말입니다.

한가지 님에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리 님이 공부해도 "자유의 율법'이라는 말이 
님의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님이 "개고기",  "머리에 똥만 차있다"라고
떠들어 대시는 동안에는 말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이 말의 뜻이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 단 말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야 깨우치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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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 님:



개고기 진짜로 삶아 먹기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 부른다

달다 라는 말인지는 모르나 검색을 하면 이런다

북한에서 처음에는 개고기국개장국집 등으로 불렸으나,

지난 1985년 김일성 주석이 단고기로 바꾸도록 지시해

보신탕 집을 단고기 집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개고기 하면 몸서리를 치는 분들도 있고

맛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개를 키우는데 웬만한 목장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고기로 분류(?)했기에

개고기 삶아 먹는 소리란 부정어에 속한다

물론 이런 소리 하면 발끈할 사람들 내가 안다

나는 이런 발끈하는 사람들을 개고기 삶아 먹는 사람들이 말한다

 

계명을 님/

이곳에서 복음주의자들이라 한 것은 일반 개신교들이 주장하는

계명은 폐했다고 주장하고 은혜만 주장하는 자들을 일컬는 말입니다.“

 

이런 말 하는 사람들 머리에는 똥만 차 있다

너희들 율법 졸업했다고 하는 것 보니

일반 개신교회가 계명을 폐했다고 주장하고 은혜만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구나

아마 그렇게 지래 짐작을 하고 글을 쓰나보다

 

율법을 님은

깨달음을 중요시 하다가 율법으로 이웃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 기초적인 것은 다들 아는 것이다

나 역시 하는 말도 다들 아는 것이다

그것을 어떤 기교로 풀이하는데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없기에

그분이 대신 지켜주신 것이라는데 나는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율법을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킨 사람도 없다

예수께서 대신 짐을 지시고 우리를 당신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셨다

그분의 덮어주시는 은혜의 옷자락을 들치고 나올 때는 우리가 죄인이지만

그 옷자락에 숨어 살 때 우리는 의인 된다

그런데 우리는 수시로 그 옷자락을 들쳤다가 숨었다가를 반복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인이 되기 위해서 계명이 필요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그 반대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심으로

그 안에 있을 때는 언제나 의인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벗어났다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 죄를 알게 된다

이건 내가 교인들의 율법에 대한 여론을 조사해 본 결과다

율법으로 죄인되거나 율법의 의인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기준에 의하고 양심의 소리에 의해서 죄인된 것이라는 거다

어떤 이는 이것을 깨달음이라 하지만 깨달음이 가지가지라서

그런 언어의 수사로 결정하는 신앙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각자의 깨달음이 달라서 어떤 깨달음은 다른 이의 깨달음에서 볼 때

죄 속에 거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이 먹는 사람들의 깨달음 수준을 하늘 못가는 수준으로

폄하하고 비하하고 저질스럽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라 형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율법의 저주란 말은 무슨 뜻일까?

저주란 한마디로 말해서 죽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율법의 저주는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그분만이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그 저주를 이길 수 있는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우리가?

그래서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난다는 표현을

온전한 율법을 이룬다 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율법의 저주는 속박을 의미한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속죄를 행하신 그분께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고

결국은 인생사 다들 왔던 길을 가는 수준일 뿐이다

 

하나 물어보자

율법의 저주를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율법의 저주에서 깨달음으로 벗어 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다음

온전한 율법을 뭐를 말하는 걸까?

예전에는 불완전하고 불온전한 율법을 지켜서 율법의 저주를 받았나?

구약 내내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즐거워하던 것은 그럼 거짓말이란 말인가?

그런데 온전한 율법이 와서 그 율법을 행하는 자유를 누린다?

그런 말이 어디 있나?

우리는 율법의 종류를 불문하고 하나로 통일하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건 의문의 율법이니 제사법이니 국법이니 하고 핑계를 댄다

어떤 때보면 참 한심한 생각까지 든다

 

우리는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분의 사랑이 율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율법의 저주는 그리스도의 저주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를 용서 받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얻는다그 삶 속에서 우리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표현

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자유로 말미암아 그렇게 한다."(안교교과)

 

구원을 얻으면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가?

깨달음에서 오는 자유라는 것이 뭘까?

개인적인 깨달음에서 오는 자유에서 율법의 정죄를 피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런 깨달음을 가지면 예수도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율법을 통해서 깨달았는데 예수가 무슨 필요인가?

그런데 율법으로 죄를 깨달았지 의를 깨달았는가?

그렇다면 그는 신의 존재다

우리가 율법에 대한 순종의 표현할 수 있다는데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야고보서의 율법이란 단어에 얽매이게 해석해서 일어난 해프닝을

구원을 얻었기에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표현해도 맞는 말인가?

 

율법을님/

일반 복음주의 자들은 율법을 없애야 자유가 온다.

그러나 재림주의자들은 율법을 살려야 자유가 온다.“

=================================

재림주의자들이 율법을 살리면 계명주의자가 되고

일반 복음주의자들도 율법을 없애지 않는다는 기본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것이 하나뿐이다

10계명 중에 4째만 폐했다 안 했다고 하고 싸우는 중이란 사실을 알자

그것을 율법 전체를 폐했다고 우리는 억지를 부리고 있지 않는가?

 

자유의 율법

우리는 이 말의 뜻이나 알고 사용할까?

내가 지키지 못하는 것을 대신 지켜 주면 자유의 율법이란 말인가?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자신다는 말이 아니든가?

일반 복음주의 자들은 "율법이 없어야 자유케 되리라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율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속박하고 저주한다

그 저주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뿐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중시한다면서

그 깨달음은 루시퍼를 숭배하는 것이라고 목에 핏대 올린 사람이

이 게시판에 있었는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던 사람을

사탄의 종자라고 못에 핏대 올린 사람이 있었는데

노자의 깨달음은 신앙이 아니라고 떠든 사람도 있었는데

기독교의 깨달음은 해탈하는가?

뭘 깨달았는데?

 

만약 기독교인들이 에센파처럼

수도 중에 깨닫는다면 그것은 도를 어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필요하다

항상 율법 속에 묻혀서 그 율법이 주는 의미보다

그 율법의 지킴에 앞장서는 모습으로 자유의 율법이라 포장하는 기술만 늘 것이다

성령을 아무데나 붙이면 기뻐하는 여기 재림교인처럼 말이다

 

계명을 님/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성령과 함께하는 체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

 

성경절 똑 바로 적자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의에 대하여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뜻이 같다고 보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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