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전율 - 2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
생선 비린내와 뻘 내음으로 얼룩진 선창가를 거닌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감기가 올려는지 마른 기침을 자주 내 뱉는다
오늘 따라 왠일인지 마음이 울적하고 고향 집이 그리워진다
집을 떠난지 벌써 몇 해든가 ?
막달라 이 어촌 마을로 내려온지가 오랜 세월 지난 것처럼 까마득 하기만하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검은 그림자들이 눈 앞을 어른거리면 나는 눈을 감는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 인생 내 팔자는 왜 이리도 억센지 모를 일이다
오빠와 언니는 잘 지내시는지
오래 전부터 병든 몸이신 오빠는 근황이 어떠하신지 궁금하다
지난 달 부터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인지 모르지만
우울중에 빠지는 날이 많다
세상 만사가 다 귀찮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무기력증이 자주 자주 내 전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오로지 육신의 욕정에만 탐닉하는 인간들을 더 이상 보기도 싫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저주스럽다
돈 돈 돈 돈의 노예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고깃배로 살아가는 이들의 품에 안겨 온갖 추태를 한 몸으로 받아내는 내 팔자가 한스럽다
얼마전부터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병들었다고 추측하기도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들과 상종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몸과 내 영혼은 이미 병들었고 내 삶은 폭탄에 함몰된 구덩이와 같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 잠을 깊이 들지 못한 탓에 졸려서 겨우 낮잠을 청하였다
사라 언니가 급하게 날 깨운다
마리아 마리아 일어나봐 누가 널 찾아왔어
누가 날 찾아왔는지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곳으로 날 찾아 올 만한 이가 없다
나는 다시 이불을 머리까지 올리고 애써 모른척하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사라 언니의 앙칼진 소리가 귓전을 다시 울린다
마리아 마리아 어서 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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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꾼듯 머리를 대충 만지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봐도 내 모습은 정신이 나간 여자이리라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올라 햇살이 따사롭다
눈이 부셔 정신이 더욱 몽롱하다
아침 안개는 거의 사라지고 멀리서 뱃 고동 소리가 애처롭다
아이를 낳은 산모처럼 내 얼굴을 부어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민 낯이다
날 찾아 온 이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거니와 아니 호기심 조차 없다
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보니 마른 체격에 훤칠한 키에
알 수 없는 어느 남자가 서 있다
햇살을 뒤로하여 자세한 얼굴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본 느낌은 저 아침 햇살처럼 따사롭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남자는 거침없이 나에게 다가서더니
자신을 소개하며 나를 정다이 반긴다
오랜 친구처럼 지인처럼 마치 오누이 대하듯 날 대하여 다가선다
자기는 오빠와 언니의 부탁으로 이곳까지 내려 왔노라고
오빠와 언니는 잘 지내고 있으며 동생 걱정만이 유일한 걱정이라고 일러준다
사라 언니의 끌림에 두 사람은 어느새 내 방에 자리를 옮겼다
사라 언니가 건네주는 음료수 잔을 들고서 그를 맞이하였다
날 바라보는 그 분의 눈 빛은 여린 눈을 가졌다
마치 사슴처럼 우수와 연민이 가득한 너무나 순결한 눈매를 가졌다
마치 나를 친 동생처럼 아니 딸처럼
내가 처한 이 암울한 형편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만큼 여린 마음이다
나사렛이 고향이며 오빠 집에서 자주 기거하며
언니가 베푸는 음식을 잘 먹는다는 이야기
언니가 무슨 음식을 가장 잘 요리하는지도 농을 곁들여 던진다
오빠와 언니의 간절한 바램을 전하며 그 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나 따뜻한 눈물에 나도 그만 울컥하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지금까지 날 위해 이리도 끈끈하고 애절하고 따뜻한 눈물은 처음이다
그는 내가 처한 형편을 훤히 알고 있는듯 하였다
나에게 어떤 설명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눈치가 역력하다
나의 모든 허물 나의 모든 잘못의 근원과 그 과정을 다 알고 있는듯이 보였다
오빠와 언니와는 매우 가까운 지인인것 같다
그 분은 내 손을 잡고서 무릎을 끊고서 기도를 드렸다
하늘의 하나님께 날 위하여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하셨다
나의 허물과 나의 잘못 내가 저지른 모든 죄를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날 위해 기도하시는 그 분이 왜 이토록 눈물을 쏟으시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분이 과연 누구일까 ?
이 분이 날 위해 기도하시는데 내 속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심령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뜨거움이 용솟음쳤다
온 몸에 흐르는 전율이 날 휘감는다
새로운 활력이 새로운 생명이 나에게 강력히 임함을 느낀다
온 지체가 활활 타오르는 햇불처럼 생기로 충만하다
그 분의 손길이 내 머리에 안수하는 그 순간에 나의 가슴은 터질것 같았다
날 위해 용서의 기도를 올리시는 그 순간에 나는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내 온 몸을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
엄마의 젖가슴처럼
아빠의 넓은 등짝처럼 나의 모든 짐이 이 분에게 전가됨을 알게 되었다
흐르는 눈물은 회개의 눈물로 바뀌고 이제는 감격스러움이 샘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지난 세월 나의 암흑처럼 어두운 그 깊고도 깊은 터널을 빠져나와
아침 햇살 대하는 어린아이 마냥 나는 즐겁고 행복하였다
가슴에 맺힌 온갖 회한들이 다 사라지고 깃털처럼 가벼운 심령이다
이 분이 누구일까
오빠와 언니가 보낸 이 분이 과연 누구일까
한참후에 이 분이 입을 여셨다
마리아 자매님 저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온 메시야입니다
메시야 하나님의 사자 메시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구세주 메시야
나는 미친 것처럼 뛰었다
메시야 하나님이 오늘 이리 날 찾아 오신 것이다
펄쩍펄쩍 뛰는 소리에 사라 언니가 놀라서 방문을 연다
마리아 마리아 왠일이야 어디 아프니
아니야 언니 나 오늘 메시야를 만났어
이 분이 바로 메시야라는 분이셔 언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어라 메시야 메시야
사라 언니의 눈은 놀란 또끼마냥 그의 입은 다물지 못한다
지옥의 사슬이 풀리고 깊은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온 나에게
메시야는 새로운 삶을 허락하셨다
이 분과 함께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꿈의 고향 베다니에 도착하였다
나사로 오빠와 마르다 언니는 눈물로 날 반겼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나의 전 생애를 그 분께 바쳤다
살아도 죽어도 오로지 그 분만을 위해서 살고 죽기로 결심하였다
그 분이 집에 오시는 날이면 내 가슴은 망둘이질을 시작한다
그 분을 보는 것만도 나에게는 영광이고 축복이기 때문이리라
내 삶을 재 창조하신 메시야 예수님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신 자비로우신 예수님
십자가의 그 날도 그 밤도 나는 뜬 눈으로 보냈다
내 생명을 던지고픈 그 날 그 밤에도 난 오로지 그 분만 바라보았다
슬픔의 그 날이 지나고 나는 그 분의 부활한 몸을 처음 대하는 영광도 누렸다
끝까지 나에게 자비로우신 예수님이시기에 나는 이리도 행복하다
누가 나보다 그 분의 사랑을 더 받았을까
누가 나보다 그 분을 더 사랑할까
나는 틈이 나면 골고다 언덕으로 오른다
그 분이 가신 그 족적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
움푹 파인 곳에 고인 그 분의 피 눈물을 나는 새로이 본다
늙어 기력이 다하는 그 날까지 나는 오르고 또 오른 곳이 바로 골고다 언덕길이다
그분을 못 박은 십자가 그 구덩이가 보인다
멀리서 바라 본 그 분의 십자가 나에게는 소망이요 행복이요 영광이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오르고 또 오른다
무릎이 아파 오르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계속 오를 것이다
손자들의 손길에 의지하여서라도 나는 오르고 또 오를 것이다
나는 보고 싶다 그 분이 달리신 그 십자가의 흔적을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용서의 그 흔적을 말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따뜻한 온기
그 분이 내 손을 잡아 주셨는데 그 때의 그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내 영혼에 내 심령에 내 손안에 변치않고 남아있다
예수님 그 날 저를 찾아오신 그 아침 나절의 햇살이 지금도 비취고 있다오
저 햇살이 비취는 날까지 주님 사랑 변함이 없을 것이지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막내 손녀가 흐르는 내 눈물을 살며시 훔치는 아침이다
저 만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의 광채가 날 휘감는 아침이다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비추고 있을 골고다 십자가의 빛이다
애들아 이 할미를 부축하려므나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자
가서 주님을 만나야지 어서 준비하렴
네 할머니 기다리세요
오늘은 아빠도 엄마도 같이 가신데요
오늘이 안식일이잖아요 할머니
손주 손녀들의 행복한 웃음 소리가 시냇물 여음처럼
들려오는 행복한 날이다
저만치서 동네 멍멍이들의 합창소리가 아름답게 여울져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