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요한복음 11 장에서 예수님이 군중들에게 나사로는 "잔다 " 히셨다가
또 "죽었다" 라고 반복하시면서 횡설수설하시는 내용의 의미를 한번 짚어보았다.
그것이 횡설수설이 아닌것은 그분이 언제나 자신이 하시는 말씀의 대답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는 모든 질문의 대답이시다.
알파와 오메가 이시다.
죽었음에도 "잔다" 가 성립이 되는것은 그분이 깨우실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자마다 간음함이니라" 의 질문도 그분 한테서
해답이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전체를 읽어 보면 우리는 율법의 그 준엄한 요구를 따라 살만한
능력이 없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 준다고?
한쪽뺨을 때리면 다른쪽도 내어준다고?
원수를 사랑하게 된다고?
호리라도 갚지 아니하면 나올 수 없는 율법의 감옥 그렇다면
그 호리까지 우리가 갚을 수 있다고?
여자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품는 음욕?
아마도 심리학자들은 이말이 무슨뜻인지를 금방 알게될것이다.
남자의 의식은 무의식을 포함해서 90 프로가 세엑스 이다.
반면에 여자의 의식은 무의식을 포함해서 90 프로가 감정 (emotion) 이다.
부부간의 사랑은 이 90프로의 세엑스와 90프로의 감정간에
주고 받는 거래일 뿐.
다시말해서 남자는 세엑스를 얻기 위하여 여자의 감정을 채워주고
여자는 감정을 얻기 위하여 세엑스를 채워준다는 말이다.
남자란 동물은 눈으로 여자를 보면 의식이던 무의식이던
눈으로 본것을 품게된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여자의 얼굴을 가리는 얼굴 가리개를 착용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음욕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속절없음과 희망없음과 근접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속성 내지는 품성을 소개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을 하신이가 이 말의 능력이 되시고 대답이 되신다.
만약 우리에게 내 개인적인 야곱의 환난인지 뭔지가 닥칠 때가 된다면
난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오직 예수로 옷 입고 견딜힘을 달라고 어거지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