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배경으로한 내 소년시절의 이야기가 올라오니
민초와 카스다에서 그곳 출신의 선배님들의 손가락들이
쏙쏙 바쁘게 올라오는것을 보고 앞으로 있을이야기와 또 그분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기위해서 충무의 예술인들 이야기
꺼내고 지나가려 한다
육이오 당시에 전쟁을 피해서 내려간 피난길에서 그냥 통영에 주저 앉은 분들과 제주도 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ㅊ통영에 주저앉은 예술인들이 부산 다음으로 많은 숫자가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두사람 화가 이 중섬과 시인 이영도가 있었다.
화가 이중섭은 아버님이 다녔던 일본의 태평양 미대의 2년 선배였고
시인이 영도는 어머니가 교편을 잡았던 통영여고의 국어 선생이었고
어머니 하고는 같은 연배이었고 절친이셨다.
일본인 아내가 친정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 이중섭은 거의 식음을 잘하지 못하고
심함 우울중에 걸려서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할 때 친구들이
한달씩 데리고 돌보는 일을 했고 우리 집에는 더 자주 와서
지냈ㅇ는데 아이들이 보고싶어서 그는껌종이에 낙서가 아닌
낙화(?) 를 많이 그렸었다
그 껌종이 그림값도 상당한 돈인데 우린 쓰레기 통에 버리는 실수를 하고.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의 주인공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불륜도 주로 우리집에서 시작한일이고 한때 시골생활을 하기 위해서
죽령의 심심산골에 지었던 우리 오두막에서 그 부ㄹ륜의 사랑도
꽃을 피우고 시가 만들어지고.
안식교인 되어서
이 난리야?
인생 이상하게들
꼬였잖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