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기도 서러운데
지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 지나고 나면 나도 나일 하나 더 먹습니다.
어릴 때는 빨리 나일 먹어서 어른이 되면 했는데
이젠 가는 세월이 아깝습니다.
그게 늙음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을 하다가 이번 주에 죽을 뻔 했습니다
조침령에서 한계령을 걷는데 지름길로 가다가 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무릎까지 차는 낙엽을 뚫고 계곡으로 내려갔는데
해는 져 가고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삼각 김밥 한 개 뿐이고
계곡을 여러 번 건너다가 빠져서 한쪽 다리는 물에 젖고
날씨는 아랫도리부터 추워지고 길은 도무지 보이질 않고
아하 이래서 겨울 산에서 얼어 죽는구나 생각을 하니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 했습니다
그런데요
얼마나 편한 마음이 드는지 이대로 죽을 수 있다는데 더 없는 고마움이 엄습하는데
참 이상하지요?
그래도 죽을 때까지 걸어보자 하고서 골짜기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두어시간을 헤매고 나니 길이 희미하게 보이고 요즘 아무도 다니지 않았기에
낙엽으로 막하고 산돼지가 파놓고 해서 정말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30여분만 더 걸렸으면 완전히 어두워서 렌턴을 켜도 길을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지난 달 보니 겨울 산 어둠 오는 것 순식간이더군요
그렇게 내려왔는데
10여분 지났다고 사람 차별하는 겁니다
그것도 양양으로 택시까지 대절해 놨는데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어렵게 살아왔는데 몇 몇이 궁시렁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두 번을 참석하지 않겠다고 양보(?)를 했는데도 더 쉬라는 겁니다
그래서 동호회 카페에 가서 기분 풀리도록 잔소리 좀 했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젊은이들 그렇게 잘 걷거든 잘 걷는데 가라
왜 자연감상하고 다니는 곳에서 시간 내에 걸어라 하고 야단이냐?
완전 똥배짱입니다
나일 먹으면 그런 것만 늡니다.
미안 하다 하는 소리도 한 두 번이지 그 다음은 배짱만 늡니다
이게 바로 늙는다는 말입니다
집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했는데
하룻밤을 못 견디어 이실직고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을 쉰다는 말에만 힘을 주었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애가 하는 말
“아버지 이젠 ‘가까운 곳에만 갈 거다’ 라고 하시려고 그러시지요?” 한다
저들 내 속을 깨뚫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이젠 함부로 말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누가 늙으면 섧다고 했더라?
눈은 내리고 날씨는 을씨년스러운데
내 마음 갈 곳을 잃은 기분입니다
안식일이 다가오니 이런 마음들 정리하고 기쁜 것만 생각해야겠습니다
해피 사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