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님:
화잇의 말기의 저작들
정로의계단, 시대의 소망, 사도행적, 치료봉사...
이런 글들은 소위 말하는 대로 복음적이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많은 다른 기독교 저자들을 참조, 인용한 것들이다.
말하자면 에큐메니칼적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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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식으로 말하자면
재림교회는 처음부터 에큐메니칼 적이였다.
여러다른 교파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교리들을
집합시켜 만든교회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상식이며,
이 사실을 숨기려하지도 않고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들 잘 알고 있다.
재차 거론 할 필요가 있겠는가?
2.
"시대의소망이 복음적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시대의 소망은 각시대의 대쟁투보다 더 대쟁투적이다.
예수님은 초림부터가 살벌한 2살짜리 살륙 과
도망의 이야기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악의 세력인 기득권과의 끊임 없는 쟁투의 이야기와
결국 그 기득권 세력에게 잡혀 죽는 것이 십자가이다.
우리는 이 대쟁투의 결과물인 십자가를 "복음"이라고 한다.
머리를 부수느냐 발 뒤금치를 부수느냐의 이야기가
바로 "시대의 소망"이다.
시대의 소망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이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87장 에서
"공의가 충족되었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사단은 정복되었다."
정복사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한편,
그 여인과 그 용의 후손인 짐승,
즉 그 부하들의 싸움의 이야기가 바로 "각시대의 대쟁투"이다.
도대체가 대쟁투 와 복음을 이분법으로 보려고 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반드시 투쟁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사단이라면 참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방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쟁투가 없는 복음은 다른 복음일 가능성이 많다.
도대체 복음과 대쟁투을 가르려는 저의가 어디있는가?
복음 에서 대쟁투를 떼어내려는 것이 가당치나 한 일인가?
도대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인가?
복음의 역사가 바로 대쟁투의 역사이다!
복음이 전해지는 순간 대쟁투의 시작이다!
호두 속을 먹으려면 호두 껍질을 까야한다.
껍질을 까지않고 호두 속을 먹을 수 있다는
부드러운 말은 다 거짖이다!!!
제발 바로 읽고 바로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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