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생명력 넘쳐야 교회가 살아난다.
따끈따끈한 밥과 뜨끈뜨끈한 국이 그립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끈따끈한 밥과 뜨끈뜨끈한 국이 그립고
따끈따끈한 아랫목이 더욱 그립다. 옛날이야기다
지금이야 이밥이 따돌림 받고
윗목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절이니
세월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요사이는 잡곡이 훨신 더 비싸다고 한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씀이 그립고
말씀이 허공에 날아가 버리는 김빠진 말씀이 아니라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말씀이 너무나 그립다.
일반적으로 주석식 설교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밥이 환영 받지 못하듯
주석식 설교도 교인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듯하다.
나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아니한다.
웬만한 주제로 설교를 시작하여 서론을 열면
나는 본론과 결론을 거의 꿰고 있다. 어디 나 뿐이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 같은 사람이야 머리가 둔해서
50여년이야 다녀서 겨우 알 정도지만
보통의 머리만 된다면 2,30년만 다니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찬기도 가시지 않는
음식이 아니라 따끈따끈한 말씀이란 어떤 말씀일까?
꿀벌이 설탕을 먹어 토해놓으면 꿀이 되듯이
(벌의 소화 효소가 섞여)
설교자가 말씀을 먹고 말씀과 설교자의 경험이 섞여서
나오는 설교는 이 세상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의 말씀이 되고 듣는 사람은 생전 처음 듣는 말씀이니
새롭게 가슴에 와 닿고 아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생긴 모습만큼이나
경험의 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냉동고에 넣어둔 음식일지라도
미리 꺼내어 녹이고 데워서 맛있게 요리하는
요리사의 정성과 기술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듯이......
설령 경험이 미천하여 말씀만으로 할지라도
말씀을 준비하는 자가 기도의 밀실에서
주님과 함께 장시간 머물면서 그 말씀으로 해서
먼저 본인의 마음이 뜨거워진 다음에 단상에 서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청중의 마음을 뜨겁게 하실 것이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격식에 잘 맞추어
서론은 시중에 크게 회자되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제로 도입을 한다면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데 좋을 것이고
본론은 중요한 몇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하고
결론은 중요한 줄거리를 요약해서 말하고
마무리 지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때로 이러한 격식을 갖추지 못한 시골의
장로님들의 설교도 은혜가 충만한 것은
그들의 삶 속에 신앙이 녹아있고
성령이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격식에 맞고 이치에 맞게 설교를 해도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허사가 아닐까 싶다
설교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오랜 신앙을 통해서 느낀 것을 그저 올렸으니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를 바랍니다.
마치면서 본인의 경험 한 토막 올립니다.
오래 전 동해삼육초 교감으로 재직할 때
그 때는 차배현교장님이 초 중 고 교장을 겸임하고 계실 때다.
한번은 교장선생님께서 중등학교 화요 채풀 시간을 부탁하셨다.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하였다.
특별히 학생들이 떠들지 않고 잘 듣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사실 내 경험으로 볼 때
가장 힘든 설교가 어린이들에게 하는 설교다
예들은 재미없으면 떠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른들은 재미가 없어도 예의상 떠들지는 않고
듣는 척이라도 해 주기 때문이다.
중등학생 역시 애들 수준에 가까우니
넓은 강당에 모인 청소년들이
떠들기 시작하면 설교는 끝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기도한 덕분인지
말씀을 처음 시작할 때 요소요소에 지시봉을 들고
서 계시든 선생님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자리에 앉게 되고 채플 시간은 은혜롭게
잘 마쳤다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들이 마치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는 듯 내게 하는 말
“아빠, 오늘 참 신기했어요.”
“뭐가”
“채플시간에 다른 때는 애들이 마구 떠들어서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조용히 시켰는데
오늘은 아주 조용했걸랑요“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아주 신기한 일을 당한 것처럼 말했다
칠푼이의 자기 자랑이 될까 심히 두려운 마음으로
두서없이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라나다. -->
따끈따끈한 밥과 뜨끈뜨끈한 국이 그립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끈따끈한 밥과 뜨끈뜨끈한 국이 그립고
따끈따끈한 아랫목이 더욱 그립다. 옛날이야기다
지금이야 이밥이 따돌림 받고
윗목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절이니
세월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요사이는 잡곡이 훨신 더 비싸다고 한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씀이 그립고
말씀이 허공에 날아가 버리는 김빠진 말씀이 아니라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말씀이 너무나 그립다.
일반적으로 주석식 설교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밥이 환영 받지 못하듯
주석식 설교도 교인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듯하다.
나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아니한다.
웬만한 주제로 설교를 시작하여 서론을 열면
나는 본론과 결론을 거의 꿰고 있다. 어디 나 뿐이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 같은 사람이야 머리가 둔해서
50여년이야 다녀서 겨우 알 정도지만
보통의 머리만 된다면 2,30년만 다니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찬기도 가시지 않는
음식이 아니라 따끈따끈한 말씀이란 어떤 말씀일까?
꿀벌이 설탕을 먹어 토해놓으면 꿀이 되듯이
(벌의 소화 효소가 섞여)
설교자가 말씀을 먹고 말씀과 설교자의 경험이 섞여서
나오는 설교는 이 세상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의 말씀이 되고 듣는 사람은 생전 처음 듣는 말씀이니
새롭게 가슴에 와 닿고 아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생긴 모습만큼이나
경험의 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냉동고에 넣어둔 음식일지라도
미리 꺼내어 녹이고 데워서 맛있게 요리하는
요리사의 정성과 기술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듯이......
설령 경험이 미천하여 말씀만으로 할지라도
말씀을 준비하는 자가 기도의 밀실에서
주님과 함께 장시간 머물면서 그 말씀으로 해서
먼저 본인의 마음이 뜨거워진 다음에 단상에 서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청중의 마음을 뜨겁게 하실 것이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격식에 잘 맞추어
서론은 시중에 크게 회자되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제로 도입을 한다면
시선을 집중하게 하는데 좋을 것이고
본론은 중요한 몇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하고
결론은 중요한 줄거리를 요약해서 말하고
마무리 지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때로 이러한 격식을 갖추지 못한 시골의
장로님들의 설교도 은혜가 충만한 것은
그들의 삶 속에 신앙이 녹아있고
성령이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격식에 맞고 이치에 맞게 설교를 해도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허사가 아닐까 싶다
설교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오랜 신앙을 통해서 느낀 것을 그저 올렸으니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를 바랍니다.
마치면서 본인의 경험 한 토막 올립니다.
오래 전 동해삼육초 교감으로 재직할 때
그 때는 차배현교장님이 초 중 고 교장을 겸임하고 계실 때다.
한번은 교장선생님께서 중등학교 화요 채풀 시간을 부탁하셨다.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하였다.
특별히 학생들이 떠들지 않고 잘 듣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사실 내 경험으로 볼 때
가장 힘든 설교가 어린이들에게 하는 설교다
예들은 재미없으면 떠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른들은 재미가 없어도 예의상 떠들지는 않고
듣는 척이라도 해 주기 때문이다.
중등학생 역시 애들 수준에 가까우니
넓은 강당에 모인 청소년들이
떠들기 시작하면 설교는 끝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기도한 덕분인지
말씀을 처음 시작할 때 요소요소에 지시봉을 들고
서 계시든 선생님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 자리에 앉게 되고 채플 시간은 은혜롭게
잘 마쳤다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들이 마치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는 듯 내게 하는 말
“아빠, 오늘 참 신기했어요.”
“뭐가”
“채플시간에 다른 때는 애들이 마구 떠들어서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조용히 시켰는데
오늘은 아주 조용했걸랑요“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아주 신기한 일을 당한 것처럼 말했다
칠푼이의 자기 자랑이 될까 심히 두려운 마음으로
두서없이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라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