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38평화 (제7회) (3:30-3:55): 삼육교육의 역사와 철학 V: 크리슈나무르티(J. Krishnamurti)와 화잇(E. G. White)의 교육사상 비교 - 크리슈나무르티의 『교육과 인생의 의미』와 화잇의『교육』을 바탕으로/ 명지원
제2부 평화의 연찬 (제146회) (4:00-6:00): 크리슈나무르티의 『교육과 인생의 의미』중 제4장 '교육과 세계평화'를 읽고/ 서만진
프로그램명은 '38평화'입니다. 38은 민족 분단의 상징인 38선(線)을 의미합니다.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우리의 마음을 갈라놓은 38선.
이 분열의 상징에 대하여 우리 (사)평화교류협의회는 더 깊이 해석하고 이를 남북 분단의 차원을 넘어
일제가 패망하던 시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제안으로 위도 38선을 군사작전분계선으로
그 불침례의 결과 우리는 누천년 역사의,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잇는 21세기 신동방일기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보릿고개를 넘어 민주화를 이룩하였고 마지막 분단국가의 통일 염원을 실현키 위한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고자 주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고 해석하고자 합니다.
2014년 12월 27일(토) 현재 147회를 맞았습니다.
또는 20분 강의 5분 질문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시대적 맥락에서 구현하는 작업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우리 사단법인 평화교류협의회는 부단히 전진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을 위하여 우리의 설립 이념을 구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참여를 바랍
'열리면 찾아가고, 닫히면 연구하고!'

사단법인 평화교류협의회
평화의 연찬 II부 제146회
크리슈나무르티의 『교육과 인생의 의미』
- 제4장 '교육과 세계평화'를 읽고
서만진
1. 지구 인류는 바야흐로 GLOBAL CRISIS에 직면하고 있다.
2. 그 위기는 정치적 위기도 경제적 위기도 군사적 위기도 아니다.
3. 그것은 인간성의 변질이라는 위기이다. 인간 정신의 변질로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필연이다.
4. 인간 정신(인간성 자체)의 변질은 삶의 참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생명을 탐욕과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가치관이 사회화되어가기 때문이다.
5. 평화가 깨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해결해야 평화를 만들 수 있다. 쾌락과 탐욕을 진화적(과학기술적) 문화(문명)적 예술적 종교적으로 추구하면서 재앙을 예방할 수는 없다. 탐욕추구정신의 방향과 재앙예방정신의 방향은 본질적으로 반대방향이기 때문이다.
6. 탐욕과 쾌락 추구 정신은 동물의 속성이다. 인류는 전체적으로 지금 인격화 신격화 되어가고 있지 못하고 동물화(동물격화) 되어가고 있다. 국가민족주의 교파신앙주의 정신은 동물성의 탐욕의 다른 이름이다.
7. 그러므로 인류가 평화를 이루려면 인간정신의 동물화(짐승화)를 해결해야 한다.
8. 그 인간의 동물화는 탐욕과 쾌락 추구의 결과이므로 인간의 더 깊이 진화되는 탐욕의 정신에서 나오는 정치적 방법, 경제적 방법, 사회적 집단적 방법, 문화 활동 같은 과학적 제도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본질적 방법이 아니다. 본질적 방법이 아닌 것으로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9. 인류가 재앙을 예방하고 살아남으려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0. 할 수 있는가? 무엇으로? 어떻게? 정치로? 경제로? 시민활동이나 문화 활동으로? 교육제도로? 탐욕과 경쟁 투쟁의 방식으로? 핵무기로 평화를? 보복으로 평화를? 돈으로 평화를?
11. 그런 표피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정신병을 수술로 해결하려고 시도? 암을 머큐롬이나 최신 연고로 해결하려는 시도와 같다.
11-1. 그러나 그런 표피적 외과적 방법의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가 절망할 필요는 없다.
12. 인간성의 본질 회복, 인간의 삶의 의미, 목적, 가치관의 회복은 교육적, 종교적 문제, 신적 문제이다. 종교적 문제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과학적, 물리적 방법 도구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3. 마지막 남은 것은 교육적 방법과 종교적 방법이다. 그 본질적 실현성을 확인할 수 있는가?
14. 교육적 방법은 인간적 기술적 합리적 방법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것이 정치적 경제적 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중 그럴듯한 방법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가 본질적 방법이 아니고, 또 거기에 정치 경제의 정신과 방법이 개입하는 것이므로, 역시 비본질방법으로 본질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되어 실현성이 없다. 성공을 숭배하고 부추기는 교육 정신의 사회는 그 자체가 남의 패배를 전제하는 탐욕에 기반한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사회구성원 개개인들과 소속사회집단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긍휼 없는 반평화적 무한경쟁투쟁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교육의 사회정신 개선에 걸리는 시간은 탐욕개선에 걸리는 시간과 같을 것이다.
14-1. 그리고 교육적 방법을 찾으려면 참된 교사들이 나와야 하는데 심장과 혈액이 탐욕으로 병든 인간들 중에서 참된 교사는 나올 수 없다. 참교사가 있었다면 그는 진즉 이미 자아를 희생했을 것이다. 참교사가 출현하면 세상의 모든 개인들이 동시에 깨달음을 얻고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분열 분리 경쟁 투쟁의 반평화 사회에서 평화적 사회통합의 방법을 알고 있는 그 참교사가 참교육으로 불평화의 사회구조를 평화의 구조로 변혁할 수 있을까?
14-2. 반평화적 비평화적 방법으로 생존 생활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인류가 참교사의 지도로 단시일 동시에 깨달음에 도달하여 평화를 만들거나, 국가주의 민족주의 이념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평화정부(탐욕기구)를 세우고 새로운 생존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14-3. 교육적 방법이 성공하려면 예수가 유일한 참교사라는 의미에서 그 예수가 그냥 최후 심판자로 재림해버리실 것이 아니고, 한 번 더 “참교사”로 재림하셔서 다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래서 다시 자기의 제자들을 모두 다 순교장으로 인도하셔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은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예수 믿는 제자들이 다 모조리 순교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 예언은 성경에 없으므로(성경기자 중에 왜 한 사람도 그 예언을 기록한 사람이 없을까?) 참된 교사가 없는 교육적 방법은 탐욕적 반평화적 정부가 반평화적 제도로 주관 시행하게 될 것이다.
15. 남은 것은 종교적 방법이다. 그런데 인간은(사탄은?) 종교 자체를 탐욕추구의 방법으로 변질시켜 놓아버렸다. 사탄은 그런 교묘한 말로 예수도 종교적(?)으로 타락시키려고 하였다. “종교적으로 돌로 떡을 만들어 네가 종교적 방식으로 먹고 네가 살아라” 사탄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종교들이 추구한다고 하는 축복이나 구원이라는 아름다운(?) 원자적 이름들이 그 속에 더 무서운 탐욕(개인적 이기적 탐욕과 그리고 회개의 주체도 귀신화 되어버린 더 무서운 교파 집단적 탐욕)의 원자핵을 지니고 있다. 교회들이 구원축복이라는 빛나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야 산다고 떠든다. 종교라는 원자 핵 속에 사탄이 침입한 것이다. 기독교를 믿으면 축복과 구원을 주겠다는 말은 교회 나오면 100억 주겠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16.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찾고 있는 그 자체가 마지막 희망의 씨앗이 되어 살아남게 된다고. 우리에게 예수가 다시 오셔야 한다. 그 말은 우리가 예수의 정신과 방법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7. 구원과 축복이라는 이득을 얻을 탐욕을 확실하게 품고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파적 선교활동(홍보 선전활동)은 다단계로 휴대폰을 팔고 다니는 것과 유사한 종교적 상업활동일 뿐이다. 교회들이 예수를 다단계회(교회)의 회장으로 만들고 똑똑한 목사들은 그 지점장이 되어 이득을 챙기고 있다. 경제적 탐욕을 경제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듯이 종교적(종교화된) 탐욕을 경제적 종교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고급자아기만이 된다
18. 지구인류에 종교적 방법 정신으로 평화가 회복 건설되려면 예수의 제자들이 빠른 시일 내에 모조리 탐욕의 순교장에 가서 죽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라는 나무는 희생의 피를 마실 때만 잉태 출산 성장한다는 현실적 진리 앞에서 하나님의 비장의 계획과 성령의 방법은 1%헌납의 정신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는 기도인가?
성경을 한 번 여니 에스겔 9장이 열린다. “여호와께서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들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통곡하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촞아 그들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 젊은 자 처녀 어린아이와 부녀들을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 지니라”
이마에 표는 무엇인가? 이마 속에 1%정신? 그것을 내속에다? 내 교회 속에다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