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은 더 무섭다
새벽 닭 울 때
베드로가 그랬다
그 고요함을 깨뜨리는 닭울음소리가
그를 무섭게 했다
몇 십 년을 듣던 그 닭 울음이
그리도 괴로울 줄 몰랐을 거다
이 놈 저 놈 돌아가면서 떠들 적에
그 떠듦이 주는 장돌뱅이 기질을 미워했었다
그러나 정작 모두 떠난 텅 빈 정거장에서
나 홀로 남았다는 고통은 무서움 자체였다
소리를 질러도 응답이 없는 산속에서
나 혼자 남았다는 고독을 경험한 후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나는 알았다
겁 없이 살던 세상이 나를 원망할 때
나는 그 원망의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었다
사냥꾼의 총알 설맞은 맷돼지처럼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산속에서의 으르렁거림은
내 고독의 산물이었다
그렇다 고독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던 키엘케고르가 아니라도
고독은 앓는 만큼 성숙하지도 않고
더 깊은 병 속으로 들어간다.
옛날 사업을 망해 죽음만 생각하고 살 때가 있었다
혹시 차비라도 도와 달랄까봐 사람들은 나를 피하고 있었다
나는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를 혹시 하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마 저 친구 죽었다는 부고조차도 거절할 자유까지도 가지고 있었는지
아무도 연락 한 장 주는 이 없었다
그 당시 느꼈던 고독 고통을 나는 안다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살았다
그러면서 미워하는 것도 배웠고
사랑이 뭔지도 알았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뭔지를 배웠다
그래서 중국에서 탈북자들과 그 고통의 시간을 즐겁게 보낸 것 같다
고요함이 주는 평안함보다
고요함이 주는 고통을 나는 먼저 배웠다
그래서 그 고요함의 양극에서 서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예수?
그것 믿어서 뭐할 건데?
그리 믿어서 뭐할 건데?
천국?
그런 이들의 천국은 없다
나는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 미래 끝에 뭐가 있는지 가 본 사람도 없고 다녀온 사람도 없다만
난 그 끝에 있는 고독의 결정체가 뭔지를 가르쳐 줄 것을 믿는다
재림이야기라고?
아니다 그런 소리 할 만큼 나는 여유롭지도 않고
그런 소리에 귀기우릴 마음조차 없다
인생은 쓰레기다
귀한 이름이라고 남겨봤자 사람들은 난도질 할 건데
사돈의 팔촌까지 들먹이면서 아는 척 할 건데
나를 불태우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고요함보다 엉성함을
엉성함보다 거들먹거림을
거들먹거림보다 무서운 고요함을 멀리하고 싶다
쓰레기를 사랑하신 그분은
내 인생의 조각퍼즐을 문자화하실 것을 믿는다
너 같은 자를 구원하는데 다른 이들 간섭하지 말라 하실 것 같다
아직도 상거는 멀다
그러나 도구화된 신앙은 싫다
겟세마네에서
마음보다 더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늦어져서 고민했던 일
다 털어버리고
피곤과 유월절 잔치에 거하게 마신 포도주에도 취해서 자고 있을 때
먼발치서 혼자 기도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기가 찼을까?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나를 잡을 자가 왔다 가자 할 때쯤 일어난 베드로
가막힌 현장에서 칼을 뺀 거다
나처럼 칼을 뺀 거다
그런 베드로도 사랑하신 주
난 그가 그립다
혼자서 외로울 때 그리웠던 그 주가
다시금 그립다
고요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그게 바로 절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구화된 신앙은 싫다
나도 싫어
세번씩이나 사랑하는 이의 면전에서
주저앉았던 자아
철저히 버려지고
또 버릴 수 밖에 없던 자아를
끌어안고 밤새껏 마지막 그물질을
하던 그에게
닥아와 이제는 당신의 자아를
심어주시던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에 메달려
새로 태어나던 그 사람을 닮은
삼포 영감님의 간증시가
새벽 세시에 제 기침소리에 놀라 깨어난
나를 울립니다.
마귀는 당신이 뱉아내는
소음들을 기억하고 말하려 하지만
사랑하는 이는 당신이 쏟아내는
도구화되지 않은 기도의 신음소리를
들으실 것입니다
혼자서 외로울 때 그리웠던 그 주가
다시금 그립다
나도 그립소 그 주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