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에 이 누리에
'대총회장의 조카님이 쓴 책' 이라고 소개한
Ronald Osborn 이라는 젊은 학자가 쓴
Death Before the Fall (타락 전의 죽음) 이라는 책을
요즘에 마저 읽고 있다.
창세기 창조 기록의 문자주의적 해석의 문제와
동물들의 고통/죽음 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중에 마무리하는 내 나름의 '서평' 을 쓰겠지만
참으로 좋은 책이다.
1, 2 편으로 되어 있는데
2편은 정말 아름답다.
거기 이런 얘기가 나온다.
교회/교리 를 어떤 그림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교회와 교리를
건물/성전/탑 으로 이해했다.
근간이 되는 기둥들이라는 것들이 있고
빈틈 없이 쌓아 올린 단단한 구조물이라는 개념이다.
이런 그림에서
기초석이 빠지거나 기둥을 하나 빼면
건물은 무너진다고 한다.
심지어 뭣 하나 고치려고 해도
그것은 저 단단한 벽 속이나 바닥 속에 들어가 있어서
벽돌이나 바닥을 깨야 한다.
교회/교리를 그물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거미줄, 고기잡는 그물
어떤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가는 단어일 수도 있지만
요즘 세상의 8할을 구성하고 있는,
지금도 여러분과 내가 신세를 지고 있는
웹(WEB), 혹은 넷 (NET) 이라는 단어는
수천년전의 '성전' 보다 더 절실하고 피부에 와 닿는 그림일 수 있다.
그물의 특성은 유연성이다.
그것에 담기는 물건에 따라 자유롭게 모양이 바뀐다.
그러나 그 외형이 어떻게 바뀌든 그물 자체는 변함이 없다.
무질서한것 같지만 정연하고
서지도 못하고 비실거리는 것 같지만 강력하다
세워져 높아지기 보다는
엮임으로 감싸주고 품어주는 것이 그 본래의 job 이다.
그물을 이루고 있는 씨줄과 날줄들은
아마 여러 전통, 사상, 해석, 철학, 문화, 관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이런 것일 수 있다.
이것들이 엮여서 교회와 그 가르침을 이룬다.
때로 이 매듭이 풀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물 자체가 다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신학자, 목사들은 그 그물을 깁는 사람들이다.
위에 말한 그 줄들을 다시 엮고 매듭을 짓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날줄과 씨줄들을 새롭게 엮어
무한히 그물을 넓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물의 생명은
그 줄들 뿐 아니라
그 줄들 사이의 공간/여백이다.
이것이 교회의 근본이고 힘이다.
이렇게 보면
뭐 하나 바뀐다고
마치 교회가 무너지는 것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좋은 메타포라 생각된다.
교회 그림
다시 그려 보자.
그림이 바뀌면 개념도 바뀐다 .

구멍난 자리를 매우는 짓은 안 합니다
구멍이 나지 않게 단단히 안카짓만 합니다
구멍이 나면 밥줄 끊어질까 지레 겁부터 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