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1년, 걸어온 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9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 신도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외치며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적극 맞설 것을 주문한 교황 프란치스코가 13일로 선출 1년을 맞는다. 프란치스코는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빈자들의 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택하며 가난과 차별, 불평등의 문제를 교회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교황은 “가난은 우리를 우상에서 멀어지게 하고 신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면서 가난의 복음적 가치를 강조하며 부의 불평등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의 난민수용소를 찾아 “불평등에 무감각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빈부 격차를 키울 뿐”이라며 억압받는 자 스스로 현실에 맞서 싸울 것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는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면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세상과 대화하고 만날 것을 주문했다.
‘낮은 곳으로’ 파격 행보… “가난한 교회” 외치며 현실 참여 촉구
교황이 가난과 불평등을 비판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유럽에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던 1891년 당시 교황 레오 13세는 “대다수 노동계급은 너무나 불공평하게 곤궁함과 비참함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지난해 신년 미사에서 “날로 커져 가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이 긴장과 분쟁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불평등을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는 데는 인색했던 이전 교황들과 달랐다. 그는 교황궁 대신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지내는 바티칸의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했다. 고립 대신 ‘만남’을 중시하는 그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검소함을 실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난 3월 9일 로마 교외로 피정을 떠날 때도 다른 교황청 직원들과 함께 버스로 이동했다. 지난달에는 모국인 아르헨티나 여권을 갱신해 교황청 국가원수라는 의전 특권을 거부했다.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로, 세계화의 중심에 인간이 아닌 돈이 있다고 비판한 교황을 보수 교계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공격했다. 교황은 이를 부정하면서도 “내 인생에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만나 왔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라 불려도) 화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의 부는 사회에서 빌린 것으로, 모든 경제는 빈자와 최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한다는 반론도 했다.
구호시설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교황(왼쪽 사진). 요르단 국왕 부인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교황(오른쪽 사진).
가난과 함께 사랑은 교황의 주요 주제였다. 그는 “하느님이 보실 때 나는 죄인”이라며 교회의 가르침을 자비롭게 적용할 것을 강조했다. “무신론자는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거나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로 신을 찾는다면 심판할 수 없다.”는 발언에서 이런 교황의 관용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교회는 “야전병원”이라면서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 수치 따위를 묻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원칙보다 상황을 먼저 고려할 것을 강조했다.
검소하고 낮은 행보,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 소수자에 대한 관용적 태도로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주제가 ‘교황 프란치스코’였을 정도로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클라우디오 셀리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대주교는 지난 3일 바티칸 라디오에서 교황에 대해 “똑같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면서도 마음을 두드리는 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과제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출은 교회 내부의 개혁 열망을 반영한 결과였다. 프란시스 조지 미국 시카고 대주교는 “그의 뒤에 놓인 ‘쓰레기’로부터 주관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자유’의 원칙이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회의)에 있었다.”며 “논의가 계속되면서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세속에선 무명이었지만 교황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한 콘클라베 1차 투표에서도 40표를 획득해 72표를 얻은 당시 라칭거 추기경에 이어 2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 부패 해결을 위해 관료조직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전부터 높았다는 뜻이다. 교황청 개혁을 위해 8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금융감독기구인 경제사무국을 창설한 데는 이런 밑바탕의 지지가 있었다.
교황청 개혁은 첫발을 내디뎠지만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문제에는 미온적 대처로 반발을 샀다. 교황은 지난 5일 “교회는 이 문제에 투명성과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 온 아마도 유일한 공적 기관”이며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거의 대부분이 가정이나 그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해 비판을 받았다.
교황 취임 후 세계 각지에서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수가 늘 정도로 교황 개인은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가톨릭 교리와 일반 신자들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가 날로 커지는 점은 고민거리다. 지난 2월 스페인어 방송국인 유니비전의 여론조사 결과 ‘낙태를 전부 혹은 일정 상황에서 허용할 수 있다.’는 의견은 전체의 66%나 됐다. 고해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는 거의 사라져 사제의 면죄권이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교황은 교리와 인식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가톨릭 가치를 고수하면서도 상황을 고려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황은 지난해 8월 성 이그나티우스를 인용해 “위대한 원칙은 반드시 장소와 시간, 사람이라는 상황 안에서 구현돼야 한다.”며 “기독교인이 복고주의자, 법률주의자이거나 모든 것이 분명하고 안전하길 원한다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리와 현실 간의 불일치를 좁히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로 교황은 오는 10월 추기경 회의(시노드)를 소집해 ‘가족’에 관한 문제를 논의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전 세계 신자들을 상대로 성과 가족의 문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교황이 이전 교황들이 피해 왔던 가족과 성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건 이유는 실상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인 ‘사회적 죄’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교황은 지난해 9월 “(동성애와 미혼모, 낙태 등) 성에 관한 문제가 사회적 죄로 관심을 돌리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장기적 관심이 차별과 불평등 해소에 있다는 뜻이다. [경향신문 주명재 기자 ㅣ 2014.03.12]
교황 방한, 한반도 화해 분위기 높일 것
김근수 | 평신도 신학자. <행동하는 예수> 저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참 평범한 보통사람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신체가 마비된 어머니를 대신해 요리를 하고 공장에서 청소를 했다. 추기경이 되어서도 혼자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요리를 해서 먹었다. 주말 저녁마다 버스를 타고 혼자서 빈민가를 방문했다. 조그만 집무실에 스파게티 봉지를 쌓아 두고 방문객에게 손수 스파게티를 요리해 대접했다. 11살 연하의 66살 누이동생이 오빠의 교황 취임식에 오려고 했다. 신임 교황은 전화를 걸어 로마에 오지 못하게 설득했다. 그 여행 경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는 뜻이었다.
그가 교황이 됐다는 사실이 우리 시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그 교황이 한국에 온다. 교황 방한은 이 땅에 무엇을 가져올까. 교황은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선 가난한 사람들에게 온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민족의 운명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교황 방한을 환영하지만 방한 일정에는 약간의 불만이 있다. 작년 브라질 성체대회에서 교황은 브라질의 빈민가를 흔쾌히 찾았다. 그러나 이번 방한 때 교황이 가난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꽃동네를 찾는다지만 한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곳이다. 꽃동네보다는 한국 사회의 고통이 생생한 제주 강정마을 등 갈등 현장을 찾아가면 좋겠다. 그곳에서 교황의 ‘진정한’ 사제들인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길거리 미사를 올렸으면 한다. 북한을 위한 미사를 명동성당보다는 판문점 근처에서 하면 더 뜻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황이 북한까지 방문하려는 노력을 보였으면 참 좋겠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부 일정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교황 방한은 우선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를 높일 것이다. 시복식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린 선조들을 복권시키는 계기이다. 그분들은 대부분 제사를 지내는 문제와 관련돼 희생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사 문제에 대해 일관된 의견을 유지하지 못한 당시 교황청의 실수를 언급했으면 좋겠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신사참배를 격려하고, 해방 정국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지지한 한국 천주교의 잘못에 대해서도 한 말씀이 있으면 한다.
교황 방한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높아질 절호의 기회다.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행동은 그리스도교의 임무 중 하나다. 가난의 원인에 대한 교황의 비판이 중요하게 들린다. 가난의 원인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아주 중요하다. 규제받지 않는 자본권력을 새로운 독재로 규정한 교황의 가르침이 주목된다.
가난한 교회를 바라는 교황 방문을 계기로 한국천주교도 변화의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천주교가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거나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추기경, 주교, 사제들도 교황처럼 가난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들의 손을 잡는 모습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교황 방한은 한국의 종교들에 희망의 근원이 되기를 재촉할 것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 종교이지만, 한국의 종교처럼 희망이 없는 곳도 별로 없다. 교황 방한은 불교, 개신교 등 이웃 종교뿐 아니라 언론, 법조계 등 각 분야에 반성을 촉구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여 독재자 비델라를 대통령궁에서 만났다. 1976~83년 군사정권 시절 집권자였던 비델라는 지금 77살 나이에 50년 징역형을 살고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두환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교황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세속적으로 우리는 주교요, 사제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진정한 제자는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맙시다. 아주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사제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새길 말이다.
교황 방한은 한국인에게 큰 기쁨이다. 부자나 권력자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사는 교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기쁨은 크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지도자가 지금 세상 어디에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훌륭한 분이지만, 우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깨어 있어서 그분을 맞이하고 보내 드려야 한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위대한 메시아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모두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
뛰어난 교황 한 사람으로는 세상도 교회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교황보다 더 뛰어난 또 다른 예수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깨달음이 아마도 교황 방한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긍정적 효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