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humanity ( 3 ) - 나의 참된 친구 되신 구주 예수
오늘은 마태복음 11 장에 19 절에 나타난
참 좋으신 우리 주님의 사람 냄새를 맡아 보고자한다.
인자(예수)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
그가 주님께 대한 평판을 기록하면서 그가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를 말이다.
주님에 대한 악평을 그대로 그들 말을 옮긴 이유가 무엇일까 ?
마태가 느끼고 체험하고 감격한 예수님에 대하여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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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애호가들의 나라 프랑스에서 가장 인정받는 식당이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 최고의 권위인 미슐랭 가이드 (Michelin Guide) 로부터
"별 3 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프랑스 전체를 통틀어서 별 3개 평가를 받은
식당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2014 년판 프랑스 미슐랭 가이드 보고서를 보면
별 세 개 최고급 음식점은 총 27 개,
별 두 개 음식점은 79 개,
별 한 개 음식점은 504 개였다고 한다.
( 한국에는 블루리본이라고 미슐랭 가이드를 bench marking 한 곳이 있다. )
그만큼 최고의 식당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베르나르 루아조(Bermard Loigeau)가 운영하는 코트 로르(Cote Lor)
식당은 쉽지 않은 그 명성을 얻어냈다.
루아조는 완벽한 식당을 만들어서 미슐랭으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겠다는
일념으로 수 십 년 간 쉬지도 않고 일했는데,
1981 년에 드디어 별 두 개의 평가를 받았다.
그 뒤에도 루아조는 별 3개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메뉴판의 모든 음식 하나 하나에 완벽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이고,
식당 서비스도 개선해 나갔으며, 식당 시설을 개량하고 공간을 넓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500만 달러의 빚까지 지면서 루아조는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10 년 후 1991 년에 그는 마침내 별 4개를 받았다.
이제 그의 식당은 프랑스 최고의 식당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오직 소수의 몇 명만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해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최고라는 인정을 받은 식당을 만들어냈지만,
왠일인지 행복하지 않았다.
수 십 년 간 최고의 식당을 만들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왔는데
막상 그 꿈을 이루고 나니,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2003 년 봄에 그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최고의 인정을 받았고,
돈도 많이 만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인정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람의 인정은 영혼의 만족을 결코 주지 못한다.
돈과 명예 건강 학력 - 이 모두 다 인생에게 만족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지 못한다
그러나 마태는 주님에게서 친구라는 지극한 호칭을 받았음을
간접적인 화법으로 고백한다.
마태는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예수님에게 친구라는 호칭으로 사귈 수 있고 제자로 부름 받았다.
이 놀라운 사실을 마태는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인자(예수)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이 말씀은 마태의 자신의 진솔한 고백이다.
주님께로부터 제자로 친구로 인정을 받은 감격에 대한 고백이고 간증이다
그 자신이 죄인 이였고 세리 이였기 때문이다.
인자는 와서 -
인자란 칭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에서 스스로 사람의 아들로 격하시키신 것이다
사람의 아들 - 얼마나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지 모른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사람의 아들
신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 이 호칭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지 않는가 !
먹고 마시매 -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처럼 금욕적이고 야생의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상의 생활을 하신 것을 말한다.
어울리어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과 소통하시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과는 달리 죄인들과 함께 자리하여
세리들과 식사하기도 하였으며 천한 무리와 어울려 다니기도 하였다
이는 예수의 관점에서 바리새인을 위시한 위선적 종교가들의 가식적
종교 형태를 온몸으로 비난하신 것이다.
바리새인의 관점에서는 파행적 행동을 한 예수야말로 율법의 파괴자로
간주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그들과 다른 관점으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기득권자의 갑질에 의해 주님은 돌아가신 것이다.
이 모습 또한 주님의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먹기를 탐하고 -
헬라어로는 파고스라고 한다
이 뜻은 폭식가 대식가라는 말이다.
사실은 주님이 폭식가이고 대식가라는 말은 아니다
주님의 사역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그리 말한 것 뿐이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먹기를 탐하는 대식가요,
포도주를 즐기는 술꾼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
헬라어로는 오이노포테스 라고 한다
( 이 단어는 신약에서 단 2 곳 이곳과 눅 7 : 34 에만 등장한다. )
이 단어에 대한 원어적인 뜻은
술고래 혹은 포도주에 푹 빠진 자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술꾼이란 뜻이다.
마태가 이 단어를 기술할 때는 이러한 그들의 그릇된 현상보다는
죄인을 친구로 삼으시는 주님에게 방점을 찍었다고 본다.
비록 그들은 예수님을 모함하고 갑질을 하지만
자신은 세리라는 직업에서 부름을 받았고 또한 친구로 인정을 받은
이 놀라운 사실을 더 부각시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정말 예수님께서 이리 하신 것은 절대 아니다
오해를 말라.
반대자들이 예수님을 모함하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술꾼이거나 술 중독자는 아니다.
암튼 주위의 당시 주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았다는 것이다.
해가지고 주막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어 음식을 나누는
주님을 그들은 흔히 목격하였다는 말일 것이다
이 모습이 이 장면이 주님의 사람 냄새를 더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다 들으시고
구수한 갈릴리 사투리로 위로하시는 주님의 이 모습
반대자들로부터 핀잔과 욕을 당하면서도 초지일관 그 뜻을 굽히지 않으시는 주님
얼마나 사람 냄새가
얼마나 인간미가 넘치는가 말이다.
형식과 격식 관습과 체면을 그냥 깡그리 무시하신 우리 주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시는 우리 주님
예수님의 품에서는 풋풋한 땀 냄새가 진동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물씬 물씬 풍기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인자라고 사람의 아들이라고 호칭하신 것이리라
예수께서는 요한처럼 특이한 옷차림을 하였던 것도 아니며
나실 인으로서 자신을 성별 시키신 것도 아니었다.
마태는 찬미 140 장을 힘차게 부르고 있다
나의 참된 친구 되신 구주 예수
너는 그의 사랑 알고 있느냐
그가 나를 바른 길로 이끄시네
다른 친구 할 수 없었던 그 일
주님 외에 다른 친구 없네
주와 같은 친구 또 없네
나를 죄악에서 구원하셨으니
그의 사랑 크셔라
마태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목청이 터지도록 이 찬미를 부르고 싶었다
죄인의 친구로다 -
죄인이라는 헬라어는 하마르톨로스 이다
그 뜻은 죄 있는. 죄인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두 가지의 영역에서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1 ) 지적인 열등과 부족 ( 불충분한 교육 ) 을 나타냄
2 ) 도덕적 결점과 실수 실패를 나타냄
즉 열등한 사람 실수나 실패한 사람을 일칭하였다.
그 당시 사회적 약자를 일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마태 자신이 이런 자였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런 자였다
요즈음 유행되는 미생이 바로 이런 자들이다.
완생이 아닌 미생말이다.
사회적 약자
버림 받은 자
죄인으로 인정되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자 ( 세리 창녀 등등 )
이런 마태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친구로 영접을 받은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운 것이다.
예수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는
죄인의 친구, 곧 죄인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한 통속이라고 비난한다.
중요한 사실은 주님께서 사회적 약자들과
당시의 미생들과 함께 어울리어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들과 정겹게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시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신 것이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되시는 나의 주님이 너무 멋지시다.
사람 냄새가 그야말로 풀풀 나지 않는가 ?
말로만 인자가 아니라 삶으로 인자되심을 나타내심이 아니겠는가
친구는 한국식 한자 표현이며 "가깝게 오래 지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두 가지의 의미가 함축된 단어이다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강한 단어이다.
1 ) 가까운 사이 - 공간적 개념
2 ) 오래도록 교제한 사이 라는 것이다. - 시간적 개념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 2 명만 있으면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겉으로만 친구가 아니라 기쁘면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슬프면 진심으로 같이 슬퍼해주며 나를 위해 정말로 충고해 주거나
힘들 때 같이 있어주는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임마누엘 예수님이 몸소 친구가 되신 이 모습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실제로 그런 친구를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자신이 스스로 이런 친구가 되어 주신 것이다
주식형제(酒食兄弟) 천개유(千個有)
급난지붕(急難之朋) 일개무(一個無),
(명심보감 교우 편)
밥 먹고 술 먹을 때 친구는 천이 넘으나
진정으로 힘들 때 도와줄 친구는 한사람도 없다.
이것이 오늘 날 우리의 삶의 현실이다
각박하고 몰인정한 이 세상에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복음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마태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Friendship (우정) 이라는 단어의 해설이 아름답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둘이서 탈 수 있지만,
날씨가 나쁜 날에는 한 명만 탈 수 있는 배(ship).
평소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에 관한 명언을 좋아한다
A 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
What is a friend? A single soul dwelling in two bodies.
친구란 무엇인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A friend is a second self.
친구는 제 2의 자신이다.
마태는 분명히 이런 친구의 정의가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마태가 주님께 맡은 냄새는 신의 아들 냄새가 아니라
언제나 사람의 아들 훈훈하기 그지없는 사람 냄새였을 것이다
내가 즐겨 읽는 친구에 관한 시 몇 편을 소개하고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이 시를 감상하시면서 주님의 사람 냄새를 더 맡으시기를 바란다.
친구란 / 윤보영
신던 신발처럼 편안한 것
때로는 새로 산 구두처럼
견딜 만큼 아픔도 있어야 하는 것
작은 공원처럼 휴식을 주는 것
메마른 나무에 단비가 내려주듯
보고 싶었다고 말 해 주어야 하는 것
별로 보이다가 달로 보이고
어두운 하늘에 꽃으로 보이는 것
하지만 그 하늘, 내 가슴에 있는 것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질 뻔해도
주위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오히려 생각 끊은 것이 더 미안해지는 것
보고 싶어 찾아 왔으면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연극해야 하는 것
하지만 알면서도 속아 주는 것
우동 한 그릇을 같이 먹어도 배가 부른 것
일어서면 마음은 허기져 있는 것
친구에게 / 이 해인
부를 때 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 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 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 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 말을 감추어 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 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옹졸함을
나의 이기심과 허영심과 약점들을
비난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감싸 안는 친구야
하지만 꼭 필요할 땐
눈물 나도록 아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실한 친구야
내가 아플 때엔
제일 먼저 달려오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엔
함께 울어 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엔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고마운 친구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너는 또 하나의 나임을 알게 된다
너를 통해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
참을성 많고 한결같은 우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본다
늘 기도해 주는 너를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나는 너에게 끝까지
성실한 벗이 되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해 본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못해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며
오랜 세월 함께 견뎌 온 우리의 우정을
감사하고 자축하며
오늘은 한 잔의 차를 나누자
우리를 벗이라 불러 주신 주님께
정답게 손잡고 함께 갈 때까지
우리의 우정을 소중하게 가꾸어 가자
아름답고 튼튼한 사랑의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춤추며 지나가게 하자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좋은 벗이 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행복한 이웃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벗이 되자
이름을 부르면 어느새 내 안에서
푸른 가을 하늘로 열리는
그리운 친구야.
친 구 / 홍 수 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