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것을 포함한 모든 죽음
부패, 기생충, 해충
동물들의 먹이 사슬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죄의 결과라고 했다.
심지어
계절의 변화, 극심한 추위와 더위,
화산, 태풍, 해일과 같은 거대한 '파괴적(violent 혹은 폭력적)' 자연현상
이것도
인간의 죄의 결과라고 했다.
에덴동산은
낙엽도 떨어지지 않는
비도 오지 않는
언덕은 완만하고 깎아지른 절벽도 거대한 폭포도 없는
기후는 사시사철 온화한...
그래서 낙원이었다고 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낙엽이 지고
어린양의 가죽은 벗겨지고
동물들은 서로 잡아먹게 되고
또 계속되는 인간들의 죄악으로
홍수가나고 지층이 충돌하며
오늘날 보는 드라마틱한 지형과
계절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성경에는 밝히 나와있지 않지만
그렇게 우리 생각을 짜 넣어 가르치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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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Before the Fall 의 저자
Ronald Osborn 은
안식일교회 선교사의 아들이다.
태국, 대만, 짐바브웨에서 자랐다.
(지금 대총회장 테드 윌슨목사의 조카다)
짐바브웨 마나 풀스 국립공원(밑의 사진) 에서 본 사자는
영양과 물소를 잡아 먹었다.
천연계 속에서 그 광경은
무섭거나, 저주받았다거나, 끔찍했다기 보다는
아름다웠다.
"All around us was a world that was deeply mysterious, untamed, dangerous, beautiful and good, waiting to be explored.
And the danger was part of its goodness and its beauty.
우리 주위의 세계는 온통 지극히 신비롭고, 길들여지지 않았고, 위험하고, 아름답고 좋은 모습으로 우리의 탐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성은 그 세계의 선함과 아름다움의 일부였다. "
이것이 이 책의 중심되는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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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 2 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창세기 창조기록의 문자"주의" 적 읽기의 문제를 다룬다.
문자주의적 해석을 도그마로 삼아
과학의 모든 연구와 관측을 재단하거나
아예 과학 자체를 악이라고 보는 태도는
그 해석자들이 그토록 죄악시하는
과학 지상주의가 범하는 똑같은 범주의 오류에 빠져 있다.
창세기 1장의 '날' 을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24 시간의 날"
이라고 덧붙여 읽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계시록에 경고한 대로
'이 말씀에 더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되는' 범주의 죄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설득력 있게 하고 있다.
문자적 7일, 6000 년 (요즘은 '1만년 정도' 라고 완화되었지만^^) 신앙을
지상과제로 삼아 가르치는 태도는
영지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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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동물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사람의 죄로 모든 동물계가 다 저주를 받아 서로 잡아 먹고 먹히게 되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원래 뜻이 아니었다는 가르침의 맹점들을 여러 각도에서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창조 이야기로서
창세기 1장보다 먼저 기록되었다고 우리가 믿는
욥기의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의 말씀에 주목하게 한다.
욥기 38-41 장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천연계와 당신의 이야기다.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부터
바닷물이 해일을 이루었고
구름과 흑암이 있었다.
사망의 문이 있었다.
눈 곳간과 우박 창고도 그분의 통제 아래 있다.
폭우에도 길이 있고
사람 없는 광야에도 비를 내리시는 분은
천연계의 모든 동 식물을 아끼신다.
사자의 먹이를 주시고
독수리 새끼들이 피를 빠는 것을 아름답다 하신다.
일찌기 거짓 신학을 가르치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사자의 이를 꺾어 흩는 (4:19) 하나님을 말했으나
욥에게 직접 말씀하는 하나님은 사자의 사냥을 도와 먹을 것을 주는 하나님이다 (38:39)
심지어 욥기의 창조주 하나님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자랑하는 분이다.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폭력적 파워를 가진 괴물적 동물들을
마치 창조의 압권인 것처럼
그렇게 보이신다.
그 하나님의 세상은
아기자기하고 sweet 하고 포근한 것 뿐 아니라
신비스럽고, 길들여지지 않았고, 휘몰아치며, 위험하기까지 한
그런 아름답고 좋은 세상이다.
욥기의 창조주 하나님의 선언은
창세기 1장을 편협하게 읽고
각종 신학으로 여러 생각을 주입하여
과학의 발견과 관측에 반대되게
이리 비틀고 저리 꼬는
그런 잘못된 읽기를 능히 상쇄해 주는
능력있는 말씀이라고 믿는다
창세기 1장에서
보시고 "좋았다, 심히 좋았다" 하신 세상은
욥기 38-41장의
장엄하고 거칠고 다스려지지 않은
휘몰아치고 부서뜨리고 엎어버리는 힘이 가득한
그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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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독론적 창조를 이야기한다.
자신을 비우시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처럼
하나님도
자신을 비우시고
피조물들도
창조에 참여하게 하신다.
잡아먹음과 재난등이 배제되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니다.
선악과 이야기가
구속사의 근원이 아니다.
창세기는 십자가에서 뒤로 돌아보는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하나님의 아들이 달리신 나무의 빛으로 비로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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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경제와 윤리라는 이야기를 한다.
산염소 까마귀 사자 독수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치지 말라 하시고
안식년에는 추수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 나그네들과 동물들이 먹게 하라 하신 하나님의 경제와 윤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가축을 구조하지 않겠느냐' 하시며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님의 삶 속에 드러났다.
이런 류의 책들이
삐딱한 것들로서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은
그 마지막 챕터라도 읽어 보시기 바란다.
오늘날 안식일에 관한 이야기를
IVP 같은 개신교 출판사에서 이렇게 출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저자의 열린 사고와 따뜻한 눈 때문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 ...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젊은 사자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다 돋으면 물러가서 그 굴혈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 ...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나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 것을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 ...
저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신즉 연기가 발하도다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104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