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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9 18:43수정 : 2015.01.09 21:48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는 ‘두 번의 낮, 한 번의 밤’이다. 복직을 앞둔 노동자 산드라에게 해고를 알리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 해고는 동료들의 투표 결과였다. 그들은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양자택일하라는 사장의 제안에 보너스를 택한다. 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듣고 사장은 월요일 아침 재투표를 결정하고, 산드라는 이제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 동안, 곧 주말 동안 동료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선다.

영화는 산드라가 동료 노동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산드라의 복직에 투표한다는 이들과 동시에 그녀의 복직을 원치 않는 이들도 나타난다. 이 롤러코스터 앞에서 산드라는 무너지기 직전이며, 그때마다 항우울제를 찾고 잠으로 빠져든다. 이 영화에서 ‘잠’과 ‘우울’은 묶여 있다. 잠은 죽음의 은유이며, 실제로 산드라는 항우울제 한 통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녀는 동정을 구걸하는 거지처럼 동료에게 나서기가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니체는 힘든 친구에게는 뭐든 베풀되, 거지에게는 한 푼도 주지 말라고 가르친 적이 있다. 친구는 우정을 요청하지만, 거지는 동정을 구걸하기 때문이다. ‘동료’에게 ‘우정’을 버림받은 산드라가 자신을 ‘거지’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로 산드라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상황은 바뀌어간다. 그녀는 동료들의 집을 찾고, 그들의 처지를 알게 되고, 그들의 감정변화를 목격한다. 이 직접적 만남과 체험의 과정을 거치며 산드라는 더 강해지고, 더 자주 웃는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거지’로 여기지 않으며, 자신 역시 이들의 ‘동료’이자 ‘친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드라가 동료를 만나며 시시각각 바뀌듯이, 동료들 역시 산드라를 겪으며 지속적으로 바뀐다. 똑같은 질문의 반복 속에서 차이가 생겨나는 이 과정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연대의 구호보다는, 각자가 서로를 마주보는 경험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일상적 삶이 바뀌는 이런 감각적 경험은 정치적 연대에 우선한다. 자신을 복직시키는 대신 한 노동자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사장에게 산드라는 그건 또 다른 해고일 뿐이라 쏘아붙이고 나와 버린다. 얌전하고 수동적이던 그녀는 사장의 기만에 맞설 정도로 변한 것이다. 동료들과의 만남이 그녀를 잠 혹은 죽음충동에서 깨웠고, 이제 그녀는 삶을 열망한다. 만남은 그저 만남이 아니며, 인생을 바꾸는 ‘투쟁’이다.(“여보, 우리 잘 싸웠지?”)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낙관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남은 동료들은 이후 또 다른 ‘산드라’가 될 공산이 크다. 사장은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형식인 투표를 제안함으로써 복직도, 해고도 노동자의 선택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실은 사장이야말로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다. 민주주의는 ‘형식’이지만, 사장은 ‘내용’이다. 하지만 최종심급은 사장 너머에 있으니, 곧 ‘아시아와의 가격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시장 자체다. 누구에게도 선택권은 없으며, 고용의 문제를 풀 ‘최종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자 가혹한 실재의 이미지다. 싸움을 끝내고 웃음짓는 산드라의 뒷모습 이후로 까만 화면에 엔딩 크레딧이 떠오르면, 그녀가 걷는 거리의 사운드는 크레딧 너머로 계속 이어진다. 즉 영화가 끝나도 현실은 이어진다. 현실은 녹록지 않으며, 한 번의 싸움으로 극복할 수도 없다. 이 막막함 속에 과연 ‘내일을 위한 시간’은 존재하는가? 감동의 신파 대신 비켜갈 수 없는 냉혹한 질문을 던지며, 그렇게 영화는 현실 속으로, 우리의 현실 속으로 침잠해 들어온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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