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혁 형제여 그대의 애절한 외침이
왜!
허공에 공염불처럼 떠돌다 사라지며,
왜!
사람들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지 못하는지 아는가?
자네가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삶에 relevant 하지 않기 때문일세.
자네의 메시지가
내 자녀가 혹 메르스에 걸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마음을 위로할수 있나?
몇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취준생들의 고민을 들어줄수 있나?
세월호에 갖혀 고기밥이된 아이들의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할수 있나?
정치인들의 악행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에 오아시스가 될수 있나?
살기위해 바둥대는 대부분의 시민의 마음에 용기를 줄수 있나?
앞날을 걱정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할수 있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고민하는 부모에게 조언을 해줄수 있나?
가정폭력, 잃어버린 건강, 중독으로 깨어진 가정에서 괴로워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수 있나?
자네의 바램과는 다르게,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당장 현실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삶이 매우 버겁다.
그런 현실을 탓할텐가? 아니면 사람들이 그것밖에 안됀다고 우리들의 신앙없음을 탓할텐가?
그래서 좁은문이라고 말하고 말텐가?
예수님은 무얼 하셨나? 그리고 자네는 무얼했나?
병자를 고치시고, 눌린자를 해방시키시고, 배척당한자를 품어주시고, 소외된 자에게 손을 내미셨다.
사람들의 잠깐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을뿐 아니라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주셨다.
그러나 잊지 말게 예수님은 먼저 그들의 현실적인 목마름을 돌아보셨다네. 그리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네.
자네는 나를 따르라만 외치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가?
구원이 무언가?
더이상 생활비가 없어 동반자살한 가족에게는 몇십만원이 구원일세.
외로운 사람에게는 그들의 구차한 이야기를 들어주는것만도 구원일세.
억눌린 자들에게 소외된 자들에게 당신들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구원일세.
토요일 안식일을 아는 사람은 세계 인구 0.3%도 안됀다네.
그게 자네가 말하는 구원의 기준이 될거라고 생각하나?
월요일 유월절을 아는 사람은 어떤가? 자네의 말이 맞다고 치면 말일세.
그것이 구원의 기준이 될거라고 생각하나?
자네가 몇년을 외쳐도 자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걸 보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거나, 전달 방식이나 메시지 자체에 문제가 있을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노아의 때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게.
노아의 말을 비웃었던 사람들보다는
삶의 무게에 눌려 오늘을 살아가는 각 개인의 현대인의 삶은 훨씬 더 치열하다네.
열심히 없어서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생각이 없어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종교심이 없어, 믿음이 없어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그럴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네가 생각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거부하는것은 아니라네.
자네의 기별은 내 삶에 relavant 하지 않다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듣는이의 입장에선 자네의 기별은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일세.
아무리 좋은것도 받는 사람이 필요없고, 상관없다면
주는 사람의 쪽에서도 받는 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네.
그것이 주는 사람쪽에서 생각하기에 올바른 결정이 아니라도 말일세.
그것이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일세.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니
그리고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 적당히 하게.
난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일세.
똑같은 광고를 해도 사람들이 필요한걸 해야 장사가 된다네.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걸 팔게.
위로와 용기의 복음이 좋은 아이템이라고 보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