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량환주(偸梁換柱)
대들보와 기둥이 없어지거나 손상이 가면 집은 무너지거나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병법(兵法)에서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투량환주(偸梁換柱)의 전술이지만
그 본뜻은 몰래 어떤 사물의 본질이나 내용을 바꿔 쳐서 상대를 속인다는 뜻이다.
민초마당과 카스다를 들락거리며 올라온 글들을 보면 오늘날 재림교회가 가진 문제들이
한 두개가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 무엇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까를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단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이해하는것이
어찌 똑 같을수 있으랴만, 재림교회와 교인들은 적어도 우리의 믿음의 대들보이고 기둥이며,
우리교회의 주인되신 예수가 가르치는 복음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예수재림을 기다리며 그 좋은,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개념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참으로 한심하고 신기한 모순을 보는듯 하여 씁쓸한 기분이 든다.
행함이 있는 믿음과 행함이 없는 믿음을 마치 재판장과 같이 정죄의 판단을 서슴치 않는
형제들에게 1888년도에 있었던 우리의 경험을 상기시키고 싶지만 그 후 13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들이 지켜야 할 대들보와 기둥을 아직도 혼돈하는 우를 우리는 계속해서 저지르고 있다.
지난해 교과정리를 하면서 謂鹿止馬 (위록지마)라는 성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문자 그대로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일컷는 것을 말한다.
위록지마는 진시황이 죽자, 태자 호해(胡亥)가 등극했을 때의 일화에서 성어(成語)되었다.
당시 승상 조고(趙高)가 왕위찬탈을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그는 대신들의 성향을 떠보기 위해 어느 날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헌상하면서 “이것은 말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때 황제가 웃으면서 “아니 올시다. 이것은 말이 아니고 사슴입니다” 라고 말한 후 주위의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승상 조고의 세력이 하늘을 찌를 때였던 지라 여러 대신들이 조고의 말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일부 대신들은 입을 다문자들도 있었고, “이건 사슴입니다” 라고 직언한 대신도 있었다.
이렇게 진실을 말한 대신들은 지동설을 주장하던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처럼 하나 둘 제거되었다.
즉, 사람을 속여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억지를 쓰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러한 참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기에 우리모두에게 누가복음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아마 그 당시에도 예수와 그의 복음에 대해 아는척 하는 인간들이 꽤 있었으리라 짐작할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오직 예수와 성령의 행하심을 강조했나보다.
오래전 여호와 증인교회에 다닌적이 있다. 그들의 성경해석은 개인적이 아니라 단체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성경해석을 위에서 내려오는 대로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버린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해석은 일편단심이다.
그런데, 오늘날 재림교회는 어떠한가? 내가 보기엔 목사, 장로, 집사, 정말 다양한 신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오직예수라는 복음이야기만 나오면 또라이 취급을 받나보다. 어리석고 유아적이고 단순함의 극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도 누가와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의 사활이 달려있는 복음의 대들보를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지도자를 보고싶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아니하고 듣는것을 말하시며"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말씀을 펴고 그 내용을 연구할때에 그 내용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읽는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깨닫게 하시는것은 그분의 권능 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때 오직 말씀이 곧 오직 예수 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구체적 지식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이 커도 "지식을 좇지 않은 신앙"을 하게 됩니다. (롬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