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히틀러는 독일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패전한 첫 번째 이유를 전쟁
선전술(프로파간다)에서 영·미에 크게 뒤쳐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집권하자,
대중선동 심리학의 천재, 괴벨스를 방통위원장겸 문공장관에 임명하여 전권을 맡긴다.
2차대전 중 1940년 8월 독일 공군은 영국본토 대공습을 단행한다.
당시 전투기 보유대수는 영국은 1,475 기이나, 독일은 약 2배에 가까운 2,670 기였다.
영국수상 체임벌린은 2년 전 독일의 체코 침공 시에 히틀러와 뭰헨에서
“독일해군의 전력보유는 영국해군의 80% 이내로 제한한다”는 비밀협정을 맺었다.
그래서 전군비상령을 내리며 즉각 보복응징을 내세우는 프랑스를 주저앉힌다.
히틀러는 ‘거함,거포 시대’가 가고, ‘전투기,전폭기 시대’가 오고 있음을 간파했다.
독일공군은 영국 공군을 궤멸상태로 몰아넣고, 영국 내 비행장 대부분을 파괴시켰다.
영국공군의 전투력이 상실되자,
독일 공군은 '대공습(The blitz)'으로 알려진 무시무시한 폭격을 퍼부었다.
<프로파간다의 한 사진-“오늘 아침 우유배달부가 잔해를 헤치며 배달하는 모습이다.”>
영국하늘에서 매일 200대 이상의 폭격기가 무려 5만톤 이상의 폭탄을
밤낮으로 쏟아 부었다. 런던과 주요도시들이 불바다가 되고 숯검댕이가 되어버린다.
집은 불타고 전기와 가스가 끊어지고, 시민들은 지하철 역사의 방공호에서
숙식을 해결하여야만 했다. 당시 영국수상 '쳐칠'은 “인류 전쟁의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단시간에 잃어 버렸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슬퍼했다.
히틀러의 ‘아들러 안 그라프’(Adler an Graf) 작전, 영국의 우세한 해군력 때문에
상륙작전은 기피하고 공중폭격과 초토화 작전을 통하여 영국의 항복 내지 휴전제의를
이끌어내려 하였던 전략은 실패한다.방공망의 붕괴로 독일군의 무지막지한 공중폭격에
무차별적으로 직접 노출된 민간인들이 공식발표 상 4만3천명 사망하고
(60만명이라는 설도 있음),가옥이 1백만채이상 파괴되었다. 히틀러의 예상과는 다르게
영국국민들은 평화를 애원하며 울부짖지 않았다. 런던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잘 참고 잘 버티어냈다. 군인들의 전쟁수행의지와 사기도 크게 꺽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히틀러는 대공습을 일단 접어두고, 바르바로사 작전
(영국 상륙작전 이전에 소련을 먼저 분쇄한다)에 매달린다.
역사란 참으로 묘하게도, 19C 나포레온 침략전쟁과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히틀러는 영국작전의 실패원인이,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왔던 전쟁 ‘프로파간다’에서
처칠의 영국이 단연 몇수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는 결론에 경악하였다고 한다.
(혹자는 영국군의 레이다 신기술 때문이라고 하나, 이 또한 프로파간다 이다)
상품광고와 기업홍보 등 '마켓팅 기법'은 국가 등에 의하여 정치적 군사적 프로파간다
기술로 막바로 전용된다. 광고·홍보산업 분야에서, 독일과 같은 계획경제 국가는
영·미와 같은 시장경제 국가를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1차 대전시에도 대다수 미국 국민들은 독일과의 전쟁을 무조건 절대반대 하였다.
또 독일 측에서도 어떡해서라도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하여 무척이나 노심초사하였고
무진 노력하였다. 허나 미디어를 통한 여론정치의 창시자, 윌슨 대통령은
‘독일 U보트에 의한 미국상선 격침사건’이라는 교묘한 프로파간다를 통하여
평화주의자 미 국민들을 독일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는 전쟁광으로 바꿔놓았다.
결국 미국이 참전하고 독일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런 일화들은 전쟁에서 무기와 병력도 중요한 것이지만,
‘심리전’과 그 수단이 되는 ‘프로파간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나타낸다.
판문점 남북 고위급 접촉이 무박4일, 무려 54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타결됐다.
"선전포고는 노인이 하지만, 싸우다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또 선전포고를 막고 젊은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도 바로 노인들의 몫이다.
언뜻 보면, 남북 합의사항 6개 중에서 우리가 5개를 얻고 1개를 내주었으므로,
대한민국의 완승이다. 허나 상대방은 소기 목적을 달성하였고, 우린 장기 Vision을
얻었다. 그래도 뭐, 괜찮다. 우린 평화를 지켰다. 그녀로써도 고심한 흔적이 역역하다!
아무리 절대 권력이라 할지라도, 지배 권력층 내에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전쟁을 원하는 장군들과 평화를 원하는 민간인들의 이해충돌, 진보와 보수의 남남 갈등,
미국의 압력과 중국의 기대치 또 자신의 정치적 셈법 등이 어지럽게 얽히고 설킨
상황 하에서, 이 정도로 봉합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참에 북과 한판 붙어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어보자는 강경
네오콘 세력들의 불만과 야망을 누르고, 온건파의 손을 잡아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 진짜 ‘유감’스러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정부당국이 보여준
철통같은 정보 차단과 언론 통제의 모습이다. 이런 비상사건 하에서 언론통제와
프로파간다의 필요성은 다소 인정된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여기가 정말 민주국가 맞나?’하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길 없었다.
행여 혹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하여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에서 전 언론매체들을
다 뒤져 보았다. 관련 정보는 완벽하게 차단되었으며, 언론인들도 팩트 접근이 금지된
듯했다. 가장 빠른 보도인 TV 자막 뉴스는 당국 발표의 짧은 서술형 Ment 몇 마디만
‘특보’라고 시뻘겋게 자막 처리되어 기계적으로 무한정 반복되었다.
취재,탐사 뉴스도 금지됐고, 연합뉴스 홈피의 외신보도도 발이 쳐진 듯했다.
종편은 마치 예전 반공 교육장의 안보교육처럼, 구닥따리 자료화면과 천편일률적인
평론만을 끝없이 틀어댔다. 허위사실과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엄정단속이 발표됐다.
전쟁이냐? 평화냐?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위해를 미칠 수 있는 위험 앞에서,
정작 당사자인 국민들은 철통같은 보안과 통제 때문에 어떤 Fact나 정보에도
접근하지 못한 채, 그저 칠흑같이 깜깜한 암흑 속에서 오직 당국의 발표만을
학수고대하며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이게 민주국가 맞나??
그 어떤 비판이나 쪼금의 의심도 허용되지 않는 듯했다.
국가라는 거대 집단의 말도 안되는 횡포와 폭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무기력과 무력감을 진짜로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TV 등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당국의 ‘프로파간다’도 넘 직설적이고 노골적여서
그 속셈이 빤하게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또 단순, 획일적 내용의 기계적 반복과
거칠고 위협적인 태도는 심리적 세뇌는커녕 오히려 짜증만 자아냈다.
정말 아마추어 수준 이였다. 수십년 동안을 반공 프로파간다에 매달려 살아왔으면서도,
이런 것 하나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는 당국의 무능력이 넘 한심스러웠다.
1949년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미래사회를 예측하며,
전자기계와 감시인에 의하여 철저하게 통제된 전제주의 공포사회를 인류의 미래로써
‘1984년’이라는 책에서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그의 예측대로, 지금 우린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나 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통제 사회에서 살아야 하나?
이제 그만 헤어나자! 어서 벗어나자!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그날을 위하여, 종을 울리자!!
다음-아고라 희망의 나라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