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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의 힐링클래식]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친구 강용주 얘기를 하려니 나도 뻘쭘하고, 강용주는 더 뻘쭘해 할 것 같다. 80년 5월, 대학 3학년이던 나는 매일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때 강용주는 고등학교 3학년, 전남도청 앞에서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집에 가라는 어른들의 명령에 넋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살아남았는데, 이 때문에 오랜 세월 죄책감에 시달렸다. 84년, 나는 땡전뉴스가 뭔지도 모른 채 MBC에 입사했다. 용주는 학살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현실을 참을 수 없어서 시위에 앞장서다가 85년,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 끝에 구미유학생 간첩으로 조작되고 말았다. 나는 98년 MBC의 <화제집중>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으로 양심수 어머니들의 아픔을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뒤늦은 방송이었다. 그때 용주의 어머니 조순선 여사를 만났다.

용주는 14년째 꽃다운 나이를 감옥에서 보내고 있었다. 조순선 여사는 아들을 면회 가서 “전향만 하면 금새 나올 수 있다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간첩도 아니고 북한 추종자도 아닌 용주는 전향할 이유가 없었다. 목숨을 내놓을 수는 있어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향공작에 협력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그런 말씀 하려면 오지 마세요.”

98년, 김대중 정부는 억울한 양심수들을 사면해 주면서 ‘준법서약’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법을 지키며 살겠다”고 맹세하면 풀어준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한 국가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반성문을 요구하는 격이었으니, 용주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을 하루빨리 품에 안고 싶었지만 준법서약 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슬쩍 물어 보았다.

 “준법서약이란 게 뭐냐?”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챈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 오래오래만 살아주세요.” 감옥 생활을 더 할테니 어머니도 힘내서 아들이 당당히 석방되는 날을 기다려 달라는 뜻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 용주는 드디어 석방됐고, 늦깍이 의대생으로 공부를 계속하게 됐다. 당시 용주의 모습을 김환균 PD(언론노조 위원장)이 취재해서 방송한 적이 있다. 김 PD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밤중이라도 병원 문 두드리는 사람 있으면 꼭 열어주어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라. 아무리 돈 없는 사람이라도 아프다면 꼭 치료해 주어라.” 용주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면목동에서 가정의학 전문의로 일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공간인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 조순선 여사는 올해 90살 되셨는데, 옥중의 아들이 건넨 덕담(?) 때문인지 지금도 건강하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참 다른 길을 걸었다. 50중반에 접어든 지금, 늦깍이 친구가 된 용주는 내게 과분할 정도로 잘 해 준다. 내가 MBC에서 해고된 뒤 용주는 언제나 곁에서 위로해 주었다.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차디찬 감옥에 있는 동안 아들 대신 잠시 어머니 곁에 있어 드렸기 때문일까.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신 나로서는 용주 어머니 곁에 있는 게 그냥 푸근했을 뿐인데….


지난주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5·18 희생자 어머니들을 만났다. 김점례 어머니, 김길자 어머니, 임금단 어머니….

5월이 오면 자식 생각에 상처가 덧난다고 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기념일 증후군’을 앓는 것이다. 어머니들의 아픈 마음을 클래식 음악으로 위로해 드린다는 게 가당찮게 느껴졌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세상에 어머니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사악한 인간이라도 그 또한 어머니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도 어머니가 있었다. 따라서, 어느 작곡가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작곡한 음악이 반드시 있다. 그래, ‘어머니를 위한 클래식’이니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음악을 들려드리자!  

가장 힘들 때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은 어머니의 추억이다. 쇼팽, 드보르작, 페르골레지가 그러했고, 베토벤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 하필 가장 뛰어난 음악가에게 청각 상실의 비극이 찾아왔을까. 그는 운명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삶을 긍정했다. 1802년에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상처입은 치유자’ 베토벤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불행한 사람들이여! 한낱 그대와 같이 불행한 사람이, 온갖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름에 값닿는 사람이 되고자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123132_147587_1526.jpg    

베토벤은 어려서부터 고생이 많았다.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다. 베토벤을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려고 혹독한 연습을 강요했다. 밤늦게 취해서 들어와 어린 베토벤을 닦달했다. 베토벤은 10대부터 가장 노릇을 하며 두 동생을 키워야 했다. 베토벤은 22살 때인 1792년 빈에 데뷔했는데, 57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번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성에게 번번히 버림받고 외로웠던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발트슈타인> 소나타의 악보 표지에는 ‘대소나타’라고 써 있었다. 빈에 처음 도착한 22살 베토벤에게 “하이든을 통해 모차르트의 정신을 배우라”고 말해 준 후원자가 발트슈타인 백작이었는데, 바로 그에게 헌정했다. <에로이카> 교향곡이 교향곡의 역사에 혁명을 일으킨 대작이었다면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소나타의 역사에서 커다란 도약을 이룬 곡이다.

이 소나타의 3악장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분산화음으로 펼펴지는 반주는 고향 마을 앞에 흐르던 라인강의 반짝이는 물살이다. 이 물살은 잔잔히 빛나다가 거세게 물결치기도 한다. 추억에 잠겨 노래하는 선율은 어릴 적 들은 라인 강변의 민요다.

 

 

 

 

클래식을 거의 처음 듣는 어머니들이지만 이 소나타에 아주 깊이 공감해 주셨다. 어머니들의 열렬한 박수에 연주자 바렌보임 대신 내가 답례를 했다. 어머니들의 손을 잡으며 작별인사를 할 때 울컥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출처:    이채훈님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전 MBC PD ) 의 힐링클래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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