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복지의 배신
송제숙 지음, 추선영 옮김/이후·1만8000원

<복지의 배신>이라는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인데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복지를 복음처럼 합창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복지의 배신이라니.

마침 책을 쓴 송제숙 교수(캐나다 토론토대·인류학)가 3년 만에 귀국했다.

- 책 제목이 도발적이다.

“제목에는 두 개 버전이 포괄돼 있다. 우선 1987년 민주화 이후 기대를 모았던 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건 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것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뒷걸음질치는 상황에서 더 의미가 있어졌고. 두번째는 복지가 있으면 민주주의라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는 항상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 복지는 복병이다. 그걸 믿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냥 넘겨서는 곤란하다.”

97년 ‘환란’ 극복과정 분석 통해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이행분석

복지 본질은 자본주의 연명 수단
부 위해 존재하는 방편에 불과해

“북유럽 복지·‘기본소득’도 한계
자본주의 전복 꿈꿀 상상력 필요”

송 교수의 방점은 두 번째에 찍혀 있다. 그가 보기에 복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건,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서 기능하고 살아남기 위한 기제이며 방책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컨대 복지는 자본주의의 연명수단일 뿐이다. 책에선 그런 입장을 더 강경하고 분명하게 적고 있다. “복지는 부를 위해 존재하고, 부는 복지의 전제조건이다.” 또한 복지는 “자본주의적 국부 축적 과정에 노동을 관장하고, 계급갈등의 적대 세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이 된 것이다.”

책에서 송 교수는 19년 전 졸지에 한국을 덮친 외환위기, 그 와중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권 교체, 그 결과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이른바 ‘생산적 복지’가 어떻게 “민주화 이후 복지에 걸었던 (한국민들의) 기대와 염원을 저버렸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원래 책 제목이 <외환위기 속 한국 사람들>(South Koreans in The Debt Crisis)이라고 달려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송 교수의 2003년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미국 듀크대 출판부가 2009년에 냈다.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이론에 영향을 받은 김대중은 집권과 동시에 환란 극복이라는 미증유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때 채택한 것이 ‘생산적 복지’ 노선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제3의 길’로 가고 있다고 믿었는지 모르지만, 나타난 결과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그랬듯 “신자유주의 복지국가의 성립”이었다.

당시 복지정책의 초점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재편될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와 재생산에 맞춰졌다. 취업 가능성이 있고, 가정으로 복귀해 ‘재활’할 여지가 있는 남성 노숙인에겐 복지 혜택이 돌아갔지만, 여성 노숙인과 장기 남성 노숙인은 ‘유령’처럼 취급됐다. 청년실업 대책도 정보통신기술, 이른바 아이티(IT) 적응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에겐 ‘신지식인’이란 호칭과 함께 기회를 부여했지만, ‘백수’에 대한 대접은 달랐다.

이 과정을 송 교수는 ‘현장’에서 경험하고 지켜봤다. 1998년 5월 다른 주제를 연구하러 한국을 찾았다 외환위기의 현실을 접하고는 아예 방향을 바꿨다. 서울시 실업대책위원회 모니터링팀에서 팀원으로 근무한 1년을 포함해 29개월 동안 단속적으로 이뤄진 체험과 조사, 연구는 박사논문에 담겼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노동력을 증진하고 착취함으로써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통치전략으로 삼았던 개발 국가의 연장선에 서 있었다”.

그 국면에서 그래도 노사정위원회 구성과 같은, 예전 같으면 기대난망했을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시민운동 지도자, 유력 시민단체가 의외로 ‘수용’과 ‘협조’를 했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김대중이 반독재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구축한 위상과 신뢰 말고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왜 진보 진영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협조했을까?

“1987년 민주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계기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고나 할까.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협조하는 것 이외에 다른 그림을 그릴 에너지가 없었다. 그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거리를 두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딜레마를 경험한 진보 진영은 2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보수와 다른 차원의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고, 자본주의를 돕는 일이라며 발을 빼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한국 진보 진영에선 스웨덴, 핀란드 등을 이상적 복지국가로 간주하고 답사를 다녀와 책 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심은 외국 학계에서도 높다. 특히 미국을 공격하면서 다른 선택지로 많이들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부의 축적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려는 선택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최근엔 ‘기본소득’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스위스의 기본소득보다 남아공 사례를 더 많이 얘기한다. 그 자체로 의미는 있지만, 이 또한 가장 자본주의적인 해결 방식이고 미봉책일 뿐이다.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 축적 과정을 문제삼지 않고 분배에서의 정의만을 따로 떼어놓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송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이뤄지는 복지에 대한 부정과 회의를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 복지가 고작해야 자본주의의 기만책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나?

“복지의 근원적 한계를 지적한다고 해서 좀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복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지에 대한 상상이 달라져야 한다. (서구사회에서) 복지가 생성, 변형된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상상을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크 동즐로의 <사회보장의 발명> 같은 책을 통해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이후 1세기에 걸쳐 천천히 사회보장이 진전됐다. 혁명 이후 큰 성취였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전복적 성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로따로 출발했던 사회보장과 복지가 나중에 어떻게 합쳐졌는지도 중요하다.”

- 그래도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느낌이 있다.

“이럴 때 모범적인 답변은, 프레임을 제기하는 것이 (학자로서) 내 몫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 (자본주의) 전복의 가능성은 기존 서구가 아닌 데서, 한국 같은 신흥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사회주의자들조차 자본주의 전복을 공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우리는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이뤄낸 경험이 있지 않나.”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29 김원일 2014.11.30 12141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6 38531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5373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7299
895 법무부 "조중동에 국정과제 적극 홍보하라" 지시 - '조중동에 기고, 기획기사 추진', '공중파 3사 교양프로그램 활용' 방침 세워 reverse 2016.05.31 91
894 철수 해라. 그만... 기가막혀 2016.05.31 151
893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1 file 최종오 2016.05.31 291
892 재림교회 재평가 신학포럼 필립스 2016.05.31 115
891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2016년 05월 08일) 1 복음 2016.05.31 154
890 이정도는 되야지.. 이놈들아 ! 4 오는 바람에 2016.05.31 248
889 시바타 도요(일본 할머니 시인)의 시.....바다님과 소리없이님께 드립니다^^ 3 대나무숲 2016.05.31 146
888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5월 30일) 1 좋은사람 2016.05.31 94
887 그것이 알고싶다 E771 고도비만은 가난을 먹고 자란다 100925 생활 2016.06.01 102
886 손석희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외면 2016.06.01 134
885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들이시여 ! file 구미자 2016.06.01 95
884 노무현 첫 다큐 만드는 전인환 감독-김원명 작가 소통 2016.06.01 112
883 기름장어보다 더 미끄러운 신문기자 1 지하철 2016.06.01 112
882 이번 금요일 저녁 자기 교회 가지 말고 여기 가기 김원일 2016.06.01 255
881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 ooo 2016.06.02 167
880 아이들도. file :( 2016.06.02 90
879 밤샘토론 36회 - 국정화 블랙홀에 빠진 대한민국 밤샘토론 2016.06.02 96
878 대추 한 알. 대나무숲 2016.06.02 120
877 시키는 대로 .... 1 19살의 촛불 2016.06.02 118
876 SBS [그것이알고싶다] - 김상중, 눈물의 클로징 "지켜주지 못해 미안" 슬픔을넘어 2016.06.02 84
875 [그것이 알고싶다] 희망은 왜 가라앉았나? - '세월호 침몰'의 불편한 진실 (2014.4.26) 슬픔을넘어 2016.06.02 88
874 다이빙벨 해외판(감독판) 무료 공개 슬픔을넘어 2016.06.02 104
873 노동자가 노동자를 죽이는 나라 하청 2016.06.03 85
872 “두 남자 사이에 있는 제가 부러우시지요? 따듯한 손 2016.06.03 135
871 군대에 안가기 위하여 자신을 불구로 만든 교인 아자씨 2016.06.03 173
870 김제동 봉하특강 1 봉하마을 2016.06.04 125
869 세월호 사건에 대한 표창원, 함익병의 생각 오네시모 2016.06.04 117
868 유월에 나리는 비가 되세요 2 빗물 2016.06.04 118
867 "가습기 살균제 참사, 파헤칠수록 정말 섬뜩하다" 우리 2016.06.04 84
866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시익는마을 2016.06.05 116
865 태양마져도 눈물을 흘린다. 4 아자디 2016.06.05 170
864 Who are you? 넌뭐냐 2016.06.05 245
863 '참 민주와 참 통일의 그날까지...'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제 file 추모제 2016.06.05 87
862 뉴스타파 - 전두환 시대 비밀문서로 본 오늘의 초상(2014.3.26) 2 탄식교 2016.06.05 108
861 안녕하세요 내용생각 안나서 문의 하고싶어요 1 김사랑 2016.06.05 137
860 박근혜대통령님! 사랑합니다.❤ 19 무궁확 2016.06.05 236
859 꽃중의 꽃 근혜님 꽃..이런 미친 교수라니....동 영상. 1 나라가미치다 2016.06.05 111
858 왜 박근혜는 성남시를 괴롭히나? 거민 2016.06.05 154
857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할 때 아저씨 2016.06.06 139
856 [팩트체크] 또 공개된 대통령 건강상태…국가기밀 맞나? 팩트체크 2016.06.06 112
855 Bernie Sanders 지지자들께 3 김원일 2016.06.06 179
854 [속보]세월호특조위 ‘박근혜 대통령 7시간’ 본격 조사···서울중앙지검 실지조사 돌입 수사방해 2016.06.06 93
853 윤창중 "나에게 죄 없었다는 법적 결론 내려져" 2 나원 참 2016.06.06 141
852 나는 요즘.. 1 백의 2016.06.06 117
851 법피아와 유전무죄 친일청산 2016.06.06 81
850 성남-화성-수원 시장, 지방재정개편안 반대 단식농성 거민 2016.06.07 69
849 잠시 그를 기억하겠습니다(2006,5,22일 제너바에서 중년의 한국인 남자가 숨을 거둔다) 1 행동 2016.06.07 134
848 이명박 정부 평가 - 진중권 전원책 유시민 DDR 2016.06.07 85
847 [그래픽뉴스] 비행기 탈 때마다 하필…박 대통령 순방 ‘문제의 8장면’ 오비이락 2016.06.07 120
846 죽는 것보다 더욱 더 엄숙한 일 7 아줌마 2016.06.07 189
845 이재명 성남시장, "보수의 탈을 쓴 쓰레기들에게". 이재명 명언 편집 모음 선구자 2016.06.07 95
844 글로벌리더-세계무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알아야할 아홉 가지 원칙. 빗물 2016.06.07 85
843 윤창중 "노무현에 동병상련 나원 참 2016.06.07 96
842 [김상래 교수와 함께 하는 구약 다시 읽기] 제1편 죄가 용납된 이유 푸르름 2016.06.07 96
841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들이시여 ! file 구미자 2016.06.07 77
840 [TBC 단독] '1980년 5월 광주' 미공개 영상 1 jtbc.co.kr 2016.06.08 112
839 [광주MBC뉴스] 33년 전 오늘 3편, "잔인한 계엄군 공포의 금남로" 쿠크다스 2016.06.08 76
838 전남 신안 섬마을 보건소 공보의 자살도 수상하다… 페북지기 초이스 3 초이 2016.06.08 163
837 존경하옵는ᆢ 진실 2016.06.08 133
836 짬뽕 좋아하는 사람들 하주민 2016.06.08 136
835 Good night,a little star. 대나무숲 2016.06.08 194
834 뉴스타파 - 방송불가...박정희-기시 친서(2015.11.12) 1 다카키마사오 2016.06.08 111
833 [경건한 열망] 경건한 열망 1 마음 2016.06.09 113
832 "진리가 테러리즘이 될 수 있다" 누수 2016.06.09 159
831 여기는 엘렌이 게릴라전을 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예언 님의 아이피를 차단하며 2 김원일 2016.06.09 258
830 '놀라운' 구미시(2016.06.08)‏ 니가종북 2016.06.09 133
829 '마당 기도회' 설교 중 대북 정책 비판, 일부 교인 자리 떠‏ 속좁은개독교 2016.06.09 101
828 몬산토, 국제법정에 서다 1 민의 2016.06.09 104
» 복지의 배신. 과연 옳은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 다 거기서 거기였다. 샌더스도 마찬가지. 그래도 그를 찍었지만. 김원일 2016.06.09 117
826 [2016년 6월 11일(토)] ■ 평화의 연찬 (3:00-5:00)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의 평화교육 file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6.06.10 79
Board Pagination Prev 1 ...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216 217 ... 225 Next
/ 225

Copyright @ 2010 - 2016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