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뵈는 하늘집 날마다 가까와

by 김주영 posted May 28, 2011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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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사님의 시 "이름을 지우며" 를 읽으며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 위 세대를 생각한다. 


임박한 재림

세천사의 기별

이런 것 때문에 안식일교인 된 분들이다. 


지금은 노인이 되고

한 주가 멀다 하고 친구/동역자들의 부음을 접하는 분들에게

야곱의 환난이니 일요일 휴업령이니 하는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분들에게 종말은 정말 가깝다. 

젊었을 때 생각하시던 방식으로 오는 종말이 아니라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왔던 그 종말이다. 


만일 그분들이 젊었을 때

내 생전에 세상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면 

아니 

내 생전에 재림이오느냐 안오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삶의 모습, 꿈, 걸었던 길이 달랐을까?

그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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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스다에 천국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이전에 부르던 찬미들이 떠오른다. 


'저 뵈는 하늘집 날마다 가까와'는

지금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젊은 시절에  부를 찬미가 아니었다^^

(나는 그게 재림의 날이 하루 하루 더 가까워서

지금 하룻길 남았다고 생각하고 불렀었다)


아마 '소망' 편에 있었을 이 찬미는

문자 그대로 삶을 정리해야 하는 노년의 찬미다. 


구글 검색해보니 

재림마을에 있는 가사가 제 일번으로 뜬다. 



<meta charset="utf-8">1. 저 뵈는 하늘 집 날마다 가까워 내 갈길 멀지 않으니 전보다 가깝다 

2. 내 주의 집에는 거할 곳 많도다 그 보좌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갑니다 

3. 이 세상 끝날에 십자가 벗고서 내 면류관을 쓸 날이 가깝게 되었네 

4. 내 일생 남은 길 분명히 모르니 내 주여 길 다가도록 날 인도 합소서 

후렴.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왜 이런 찬미를 

분별 없이 젊은이들에게도 부르게 했는지 모르겠다

파란 교복 입은 싱싱한 아이들이

이 찬미를 부르는 건  

청승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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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겹도록 진부한 말이지만

'세상의 끝' 보다  '나의 끝' 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한다. 


어떤 분은

'내 생전에 내 생전에' 라 한다는데


내 예언은

그와 나의 생의 끝이

이 세상 끝보다 먼저 온다!


돈 걸라면 건다. 


그리고


저 절대 고독을 느끼는 justbecause 님과

그분에게 마음을 터 놓은 모든 분들에게


또 무슨 야곱의 환난이 더 필요한가?


안식일교회가 

지금 야곱의 환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저 미래에 있을 야곱의 환난과 같은 생뚱맞은 이야기만 계속 하는 한 

이 교회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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