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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7 / 주현절 셋째 주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 2

이사야 43:18-21 에베소 4:21-24

 

곽건용 목사

 

전통과 혁신 사이의 줄다리기

 

은퇴한 성공회 감독 존 셀비 스퐁(John Shelby Spong)은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진보적 기독교 저술가일 터인데 그는 한 책에서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썼습니다. 노쓰 캐롤라이나 주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평생 살았던 어머니는 학교공부는 9학년을 채 마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가 여자는 요리하고 바느질하고 집안일이나 하면 됐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태어난 곳 25마일 안에서 평생 살다가 1999년에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녀의 생활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1백마일 이상 여행해본 것이 평생 딱 두 번, 신혼여행 때와 스퐁의 감독 취임식에 참석했을 때가 전부랍니다. 20세기 미국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데 놀란 분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랍니다. 지금도 미국 시골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평생 자기가 거주하는 주 바깥에 나가보지 않고 죽는 사람들이 많다니 말입니다.

 

스퐁이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벌였던 때가 있습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는 동성애 그 자체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반대하지도 않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인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니 말입니다. 이때 그를 비난하고 욕하는 편지들이 어머니에게도 많이 왔다고 합니다. 이런 편지를 어머니에게까지 보내는 사람들 심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좌우간 그녀는 아들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아들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들아, 너는 참으로 좋은 아이였다. 나는 왜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고 욕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들이 무엇을 이해할 수 없냐고 묻자 어머니는 “글쎄, 아들아, 이성애(異性愛, heterosexual)가 뭐니?”라고 묻더랍니다.

 

스퐁 감독이 어머니의 무식을 폭로해서 누를 끼치려고 이런 글을 쓴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말과 마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20세기 초에 태어나서 우주여행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로 진부해진 20세기 말에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생활세계의 범위가 이 정도로 좁았다는 것 말입니다. 세계가 아무리 넓고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생활세계의 범위가 좁으면 생각의 범위도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퐁의 어머니는 왜 ‘이성애’를 몰랐을까요? 저는 그녀의 생활세계에는 동성애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애를 몰랐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오로지 이성애뿐이었던 것이지요. 뭔가를 두고 ‘이것은 갑이다.’라는 인식이 생기려면 ‘갑이 아닌 것’의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갑과 갑이 아닌 것을 분별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스퐁의 어머니에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은 모두 이성애였습니다. 그러니 동성애가 뭔지 할 턱이 없고 따라서 이성애가 뭔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사랑’은 알지만 ‘이성애’는 몰랐던 거지요.

 

인류의 역사는 전통과 혁신 사이의 줄다리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전통 쪽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혁신 쪽으로 끌려가면서 인류역사는 한 걸음씩 진보해왔습니다. 천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졌을 때 지동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전통에 어긋난다고 해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졌을 때 그것이 둥글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종교재판을 받아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고 그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입증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믿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은 전통에 반하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은 앞서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진리가 아닙니까.

 

 

예수님은 영성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 같은 분

 

예수님은 영성의 분야(‘종교’라고 불러도 좋고 ‘신앙’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에 있어서 전통을 뛰어넘는 엄청난 혁신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분은 영성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였고 케플러였으며 갈릴레오였고 다윈, 프로이드,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꿰뚫고 나온 분이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버린 분입니다. 한 마디로 너무 앞서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박해를 받았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의 고통을 혹독하게 치르셨지요.

 

안타깝게도 예수님 이후 2천 년이 지났지만 예수님이 이루신 일들이 아직도 낯선 형편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이방인이고 예수님의 믿음은 아직도 ‘이단’ 취급을 받는 형편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수님은 이방인입니다. 2천 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등등 영성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낡은 사고방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신 분입니다. 그 많고 다양한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요약해본다면 저는 다음의 세 가지로 말씀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믿으셨고 세상에 보여주신 하나님은 ‘사람을 신뢰하는 신’입니다. 예수님 이전(이후에도 마찬가지지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때론 협박하고 벌주고 때론 칭찬하고 상도 주면서 어린아이 다루듯 해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당신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바라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서 떠는 모습을 즐기는 신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믿었고 세상에 보여주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은 사람이 성장이 멈춘 어린아이이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사람을 믿지 못해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사람을 다스리는 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사람을 신뢰하는 분입니다. 그럼 당장 떠오르는 물음이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신뢰를 받을 만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이지요. 여기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부족하고 신뢰할만하지 않은 존재임을 모르시지 않겠지요. 사람은 하나님의 기대에 턱없이 모자라고 하나님의 신뢰를 받을 만큼 성숙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신뢰하신다는 겁니다.

 

사람이 믿을 만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믿어줌으로써 그가 믿을 만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뒤통수 맞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믿는 사람에게 뒤통수 맞아본 적이 있을 테니 하나님이 믿는 사람에게 뒤통수 맞았을 때 기분이 어떨지 짐작하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신뢰하시는 이유는 그것만이 사람을 영적인 성장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채찍과 당근을 갖고는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음을 아십니다. 그 방법은 공포와 의존심만 키운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배신당할 수도 있는 길을 스스로 택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우리를 무작정 신뢰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탕자의 비유’를 잘 아실 겁니다. 거기서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유산을 다 나눠주면 그가 어떻게 살지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재산을 다 허비할지를 잘 알았지만 그래도 나눠줬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처절하게 뉘우치고 영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룩한 영적 혁명

 

둘째로, 예수님이 믿으셨고 세상에 보여주신 하나님은 저 높은 하늘 보좌에 앉아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원격조종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네 삶 속에 계시면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나와는 동떨어져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나와 동행하시고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순간순간 경험되는 하나님, 예수님이 믿었고 세상에 보여주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저기에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고 달리 믿겠지만 모두 동의할 진실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란 점일 겁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 안 계시면 어디 계실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게 어떻게 하나님 나라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예수님 말씀의 뜻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얘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말입니다.

 

이 하나님은 따스한 봄날의 햇살에서 경험되는 분입니다. 타오르는 저녁노을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이고 작고 소박한 나눔의 손길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입니다. 누군가의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에 떨 때 그 사람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는 손의 온기에서 경험되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은 “여기 사람이 있어요. 죽이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맨땅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사람의 애절한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분입니다. 두세 사람이 모여서 공동체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리에서 고백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 믿었고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하나님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 동안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까요? 그 까닭은 엉뚱한 데서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찾아보겠다고 저 하늘 위만 올려다봤기 때문입니다. 내 눈을 낮춰서 전후좌우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나란히, 또 우리보다 낮은 자리에 계시는데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로등 아래서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딱해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뭘 하시오?” “동전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소.” 그는 불쌍하게 여긴 행인이 그와 함께 한참동안 열심히 동전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찾다가 행인이 물었습니다. “동전을 어디서 잃었소?” 그러자 그는 멀찍이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저기서 잃었소.”라고 대답하는 게 아닙니까. 화가 난 행인이 “아니 동전은 저기서 잃었는데 왜 왜 여기서 찾는 거요?”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그는 “저기는 어두워서 보이질 않지 않소.”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어처구니없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나님께 대해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엉뚱한 데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열어주신 영적 혁신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을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고 자유인이 종보다 월등하며 부모가 자녀보다 우월하고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뛰어나다는 선입견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신약성서 곳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딱 하나만 얘기하겠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크거나 작거나 한 공동체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유대인 남자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드렸다는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도 않고 여자로 태어나지도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중심적인 제자들 가운데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들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여자들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체제에 의해 내쫓긴 사람들, 곧 병자들과 죄인들과 세리들, 심지어 창기들까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모든 장벽들을 다 헐어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룩하신 영적 혁명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얘기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이와 같은 영적 혁신은 혼자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을 모아들였던 것입니다. 공동체를 만드셨지요. 처음에는 열두 명으로 제자단을 만들었고 그것을 더 확대하려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짝을 지어 전도하라고 내보내신 것도 복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사람들을 모으려 하신 게 아니라 영적인 혁명을 같이 수행할 사람들을 모으려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공동체를 만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을까요? 사람들은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합니다. 예배가 우선이다, 선교가 우선이다, 교육이 우선이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은 ‘친교’ 곧 희랍어를 모르는 기독교인도 잘 알고 있는 ‘코이노니아’였습니다. 코이노니아라는 말의 가장 좋은 우리말 번역은 ‘사귐’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단순하고 소박한 우정과 환대를 가리킵니다. 매일의 삶에서 영적인 혁명을 수행해나가는 예수 따르미들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한 밥솥의 밥을 나눠먹는 식구로서 사귀는 사귐, 이것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여서 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더 이상 남도 아니고 낯선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닌 친구가 되고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혈통으로 연결된 식구요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눠 먹고 나눠 마시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2013년 우리 향린교회는 이와 같은 식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단절되지 않고 계속 재생산되는(언어가 좀 삭막하지만) 구조를 정착시켜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2013년 향린교회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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