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화려한 승리였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참패는 예상된 것이었다. 이제 전검찰총장이 된 채동욱에게 친자확인 소송, 정정보도 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검찰조직의 총수직에서 ‘옷을 벗긴다’는 것이 조선의 분명한 목표였기 때문에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 조선은 매우 유동적으로 때로는 우호적으로 그러나 작게 다뤄줄 것이다.

지난 9월10일자 이 코너에서 “‘채동욱 게임’, 조선일보가 이기는 5가지 이유”라는 제목에서 이런 표현을 한 바 있다. “(…)사실여부를 떠나 ‘물의’(?)를 일으킨 채총장에 대해 여권내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악화된 여론, 검찰조직을 이끌기에는 도덕성이 문제 등의 밑도끝도없는 주장으로 대통령 비서실장, 법무부 장관 등은 이미 차기 검찰총장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전망한지 불과 사흘만인 9월 13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보도'와 관련해 감찰을 지시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이례적인 감찰 지시. 그것은 ‘그만 두라’는 간접적 메시지다. 물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과 무관하게 자신이 혼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지난 3일 동안, 조선일보와 채 총장은 치열한 공격과 반격을 주고 받았다. 조선일보는 연일 지면을 동원하여 혼외자식 관련 내용과 그 어머니의 편지 등을 내세워 의혹을 키웠다. 압권은 9월 11일자 사설 ‘검찰총장의 처신과 판단’이라는 제목이었다. 의혹단계에 머물고 진실밝히기는 이제 시작이었지만 조선일보는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을 꾸짖고 사실상 ‘검찰총장 그만 두라’며 더욱 그를 코너로 몰아붙였다. 채 총장도 정정보도 요청 거부에 따른 소송의지, DNA 검사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결기를 내보였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듯 했다.

여기서 갑자기 등장한 곳이 법무부다. 법무부는 소란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논란을 잠재우며 일방적으로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것도 참으로 이례적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착수는 채동욱을 바꾸겠다는 권력의 의지표명인 셈이다. 채총장은 시작부터 단호하게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에 굳건히 대처하겠다. 직무 수행에 끝까지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전격 사퇴결정을 내린 것은 법무부 장관과 독대를 했든, 대통령 비서실장의 메시지를 받았든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채동욱의 중도하차는 그의 의지가 아니다. 보이지않는 권력의 손이 조선일보라는 언론을 이용해서 ‘법과 원칙’을 내세운 순진한 검찰총장을 찍어낸 사건일 뿐이다.

앞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새겨야 할 교훈내지 과제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언론의 국가인사권에 개입하는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언론은 권력기관이나 고위공직자에 대한 견제, 감시를 해야 하고 때로는 인사청문회와 별도로 언론은 검증도 하는 역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특별한 시점에 표적으로 삼아 의혹만으로 집중포화를 퍼부어 결국 진실도 모르는 상태에서 낙마시킨 사례에 한정해서 봐야 한다. 권력기관이 된 언론의 횡포냐 정당한 감시견 역할이냐에 대한 정리가 쉽지않다. 권력간의 갈등에서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는 없는가 등도 검토대상이다.

두 번째, 권력과 언론의 결탁 의혹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전격 사퇴했다. 사진은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채 총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iframe src="http://p.lumieyes.com/frm2s.asp?domain=mediatoday.co.kr&amp;url=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035" noresize="" scrolling="No" frameborder="0" marginheight="0" marginwidth="0" style="height: 60px; width: 620px;"> 
조선일보는 취재기자가 합법적으로 입수할 수 없는 내밀한 사적정보들을 이용하여 검찰총장을 압박했다. 법무부나 교육청, 국정원 등의 협조없이는 확인할 수 없는 사생활 영역의 정보를 이용하여 단독보도할 수 있었다. 저널리즘에서는 검찰총장이 아닌 혼외자식으로 보도된 어린이나 그 어머니에 대한 사생활보호는 철저하게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언론보도를 활용하여 권력이 정적을 제거했다면...특히 법무부가 진실의지를 천명한 검찰총장에게 감찰을 통보하고 사실상 사퇴시킨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언론의 보도가 순수했는지에 대한 감찰과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 번째, 의혹이 진실을 이겨도 좋은가.

조선일보는 의혹만을 내세웠다. 관련당사자들은 명시적으로 부인했고 정정보도 청구 소송은 물론 조속한 시일내에 DNA를 받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진실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무엇이 급하여 그렇게 채총장을 내몰았을까. 국정원에서 검찰로 이송된 이석기 국회의원 재판 등 향후 공안사건을 두고 법무부와 검찰총장의 대립과 갈등을 차단하기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일각의 의혹은 어떻게 봐야 할까. 어느 사회든 진실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 어려운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고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의혹보도 하나만으로 사퇴시킨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겠는가. 이 사건은 역시 권력말기나 정권이 바뀌어야 진실이 나오게 될 것 같다. 왜 우리는 항상 그 당시에 진실은 알 수 없고 세월이 가야만 변색된 진실에 접하게 되는가.

네 번째, 오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이대로 좋은가.

국내 언론사에 대한 오보의 법적 책임은 논란거리다. 서양에서는 ‘악의적 오보’로 판명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punitive damage;돈으로 오보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라는 제도)를 적용하여 엄청난 금액을 내놓아야 한다. 언론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그럴 염려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마음놓고 오보를 해도 된다. 물론 외국과 달리 형사처벌 등이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도한 징계라고 엄살을 부리지만 한국은 언론에 관한한 ‘탈세, 불법을 저질러도 웬만하면 넘어간다’고 인식한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사는 권력의 하수가 아니라 권력기관 그 자체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양사회에서는 ‘언론자유를 보장하지만 그 자유를 훼손했을 때는 엄청난 액수의 돈으로 부담하라’는 제도적 압박을 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관련 판결을 보면, 패소해도 푼돈으로 떼울 수 있다. 물론 대통령 아들이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판사들이 제법 고액을 물리기는 하지만 거의 예외로 보면 된다. 언론자유를 존중받기 위해서는 오보에 대한 자율규제가 작동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공직자들의 자기관리에 대한 물음이다.

공직자들 치고 한국만큼 술 많이 마시는 나라가 있을까. 내가 기자시절 가장 어려웠던 일은 한국의 너도나도 폭탄주 문화였다. 공직자와 기자, 교수와 학생...너나 구분없이 한국사회는 폭탄주 문화가 횡행한다. 내가 만났던 4명의 공보관은 하나같이 술고래였다. 검사도 인간이라 술을 마실 수 있지만 공직을 택했다면 사정이 다르다고 나는 믿는다. 채총장이 부장검사 시절 술집을 출입하면서 알게된 여자문제로 결국은 검찰총장직을 물러나게 될 줄은 당시에는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