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말을 김주영 님이 나보다 더 잘 해주셔서
나는 토나 달려 한다.
토종닭 님은
이 세상이
우리가 플루트를 불어도 그만, 안 불어도 그만인 곳으로 착각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이 세상, 이 역사는
이미 플루트 협주곡으로 작곡된 세상이다.
(나는 피리, 플루트 중 어느 한 악기를 특별히 선호하지 않지만, 플루트를 고집스레 불다가 아이를 흡혈귀에게 잃었다는 불운의 사나이 이야기가 토종닭 님의 비유이니, 이를 가지고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젊은 아버지에게는 세상이 그런 곳이었다.
플루트 없는 플루트 협주곡을 상상할 수 없듯
플루트 없는 이 세상은 허상이었다.
그 젊은 아버지에게는
플루트 연주자로서
협주곡 (이 세상) 안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든가
아니면 협주곡 자체를 포기하든가
둘 중 하나였다.
어느 쪽을 포기하든 그것은 곧,
세상을, 역사를, 역사의 일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숨쉬기를, 밥 먹기를, 물 마시기를,
사랑하기를,
살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포기하면,
포기한 그 세상, 그 역사와 함께
자신과 자식을 비롯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음이
그의 운명이었다.
같잖은 취미생활 하나 고집하다가,
쓸데없는 집착 하나 때문에,
비극을 맞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실체는 무엇인가.
어릴 때
나병 환자가 (우리는 문둥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을 훔쳐다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어쩌다 마을이나 길에서 나병 환자를 보면
혼비백산하여 도망갔었다.
그들이 정말 아이들을 잡아다 간을 빼먹었는가.
말 그대로
소문이었다.
나인 시인 한하운이
아이들 간을 양념에 찍어 먹으며
한 서린 그 명작들을 남겼는가.
실체를 흐리며 사람 혼을 빼는 것이 소문이고
터무니없이 극악무도한 것이 소문이다.
그러면 흡혈귀는 없는가.
흡혈귀라는 개념 자체가 기만인가.
아니,
흡혈귀는 있다.
흡혈귀의 실체를 잘못 짚은 것이 소문일 뿐,
흡혈귀는 분명히 있다.
누가 흡혈귀인가.
플루트 부는 가슴 뜨거운 사람의 아이를 잡아다
간을 빼먹는 흡혈귀는 누구인가.
알 수 없는 저 미지의 암흑 세상 어떤 음침한 동굴로부터
달밤에 머리 풀고 기어 나와
플루트 소리 나는 곳을 엄습하여
아이를 잡아다 피 빨아먹는 흡혈귀는
없다.
바로 여기, 이 세상에서
역사를 쥐락펴락하며
땀 흘려 먹고사는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들은
있다.
김씨 삼대와 그에 빌붙어 폭정하며 기득권 챙기는
북조선 국가자본주의의 스탈리니스트 지배층,
소위 "자유 민주주의" 자본가 재벌들
삼성, 현대, 기아, 그 아류,
"황금의 제국" 날파리들,
그리고 그 숲에 서식하며 민중에게 포악질하는 권력층,
이승만부터 박근혜에 이르는 정치 거간꾼 따라지들
저들이 바로
우리 간 도려서 토막 내고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다.
플루트를 가슴으로 연주하는 사람을 탓하고 모함할 것이 아니라
피리 소리 플루트 소리, 똥 된장 분간 못 하는 흡혈귀를 직시할 일이다.
흡혈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냉철한 머리로, 뜨거운 가슴으로
흡혈귀를 직시하며 외칠 일이다.
귀신아, 물러가라!
오리든, 거위든, 기러기든, 백조든
토종닭 아닌 새는 다 잡아먹거나 우리에 가두어라?
떠들려면 딴 데 가서 떠들어라?
다른 동네?
거기가 어딘데?
"사랑하는 우리 딸"이 없는 "다른 동네"는 없다.
모든 동네에는 우리 딸이 살고
우리 딸이 사는 모든 곳이 바로 "다른 동네"이다.
다른 동네가 우리 동네이고
우리 동네가 다른 동네이다.
이념과 가슴을 맘대로 따로 떼어내어
나의 가슴 없음을 토종닭 님 그대는 말하려는가.
그대가 말하는 흡혈귀가 내 가슴까지 먹어치운 것처럼 보이는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대 자유다.
그러나 알기 바란다.
그대와 그대 부류의 종북 몰이꾼 모두 또한
이념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을.
그대의 이념은 가슴 있는 이념이고
플루트 부는 사람 이념은 가슴 없는 이념인가.
나는 나의 가슴으로 나의 이념을 말한다.
소름 끼치는 그대 가슴에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피리든 플루트든 다 갖다 버리고 조용히 해라?
안 그러면
에비, 귀신 나온다?
헐, 귀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
애들 데리고 장난하시는가, 그대.
나인 시인 한하운은
보리 피리 불며 왔다가
보리 피리 불며 갔다.
사람들은 그를 귀신 보듯 했어도
사람들은 그를 아이들 간 빼먹는 흡혈귀 보듯 했어도
그는
보리 피리 불며 왔다가
보리 피리 불며 갔다.
그것이 그에게는
삶 그 자체였으므로.
그에게
너 가슴 없다 하려는가.
역사를 일그러진 몸으로 살고
일그러진 몸을 역사로 살며
보리 피리 불다가 간 저 시인을 그대는 아는가.
슬픈 역사가 새겨진 문신(文身)의 시인,
그래서 ‘역사적 신체’라고 불리는 저 시인을
그대는 아는가.
한 때
그 당시 종북 몰이의 희생양이었던
저 시인을 그대는 아는가.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고
저 시인에게 묻기 바란다.
당신이 보리 피리 불 수 있는
"다른 동네"가 따로 있느냐고.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닐리리.
====================
아래는 토종닭 님의 글이다.
닭 대가리만도 못한 논리를 가진 자칭 빨갱이 김원일 님아!
한 마을에
젊은 부부가 살았다.
세살난 딸 아이의 재롱은
세월가는 것이 아깝기만 하다.
아빠는 늘 딸아이 앞에서
풀룻을 불어주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동네 산에 피리소리를 좋아하는 흡혈귀가 살고 있는 데
특히 달밤에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을로 내려와
어린아이의 간을 빼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였다.
이 소리를 들은 아내가
"여보 달밤이 아니라 밤에는 아예 풀룻을 불지 마세요"
평소 피리는 악기도 아니라고 피리부는 사람들을
은근히 멸시하던 이 음악가는
"아냐, 나는 풀룻을 불지, 피리 하고는 소리가 다르지,
그러나 조심은 할게요."
한 참 세월이 지난후,
참으로 좋은 저녁날 밤에
달이 떠 있는 것도 잊은 체
이 음악가는 풀룻을 열심히 불면서
풀룻 소리를 좋아하는 딸아이의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밤을 지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랑하는 딸 아이는
헤쳐진 가슴에,
피 투성이로
죽어있지 않은가!
작고 아름다운 무덤에
왠 젊은 남자가
엎드려서 울고 있다.
"풀룻인 데"
"풀룻인 데"
지나가던 중이
이 소리를 듣고는
"아니 젊은이
이 무슨 곡이요?"
자총지종을 다 듣은 중이
"에이 젊은이!"
제대로 곡을 하시요!
"아가야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 라고
김원일 님:
간장/콜라, 똥/된장, 막걸리/식혜, 보리차/맥주, 소주/보드카 (또 뭐 없나?^^) 구별 못 하는 종북 몰이꾼 모임 즐기시되,
의미 있는 대화 원하시면 좌파사상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공부 좀 하고 다시 오시기를.
라고 했는가?
간장과 콜라가 다르다는 것은
님도 알고 토종닭도 안다.
오리와 백조가 다르다는 것은
님도 알고 토종닭도 안다.
그러나
북쪽 산에 2천5백만의 인민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흡혈귀만 모른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천안함의 어린 생명들의 간을 흡혈귀에
바치고도,
아직 님은
"풀룻인 데"
"풀룻인 데"
울고 있는가!
좌파사상을 통달했다고,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자칭 빨갱이라고 떠들어 대는 김원일님!
이념으로 만
"풀룻인 데"
"풀룻인 데"
울지 말고,
가슴으로
"아가야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 라고
울어 볼 마음은 없는가!
그리고
다른 동네에서는 그 풀룻을 마음 껏 불어도
사랑하는 딸이 사는
이 동네 에서 만은,
흡혈귀가 사는
이 동네 에서 만은,
제발 그 풀룻을 불지 않을 수 없겠는가!
논리, 이념만 떠들어 대지말고
제발 가슴을 가지고 살자, 님아!
친구야 반갑다 잘있제